일본인이 지갑 못여는 이유…5만6500가지 식료품값 올랐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外人·부유층·대기업은 뜨겁고 서민·中企는 차가운 경제
증시 급등은 외국인 효과…GDP의 절반, 소비는 감소
임금인상률 30년 최고여도 실질임금 15개월째 (-)
상반기 '반짝' 성장, 뒤늦은 '리오프닝 효과' 분석도
'다타키 경제' 일본①에서 계속 현재 일본 경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타키 경제’다. 외부의 열기로 겉은 뜨겁게 타는데 속은 여전히 차가운 다타키 요리와 같은 모습이다. 외국인과 부유층, 대기업이 뜨겁게 타는 껍질 부분이라면 서민과 중소기업은 차가운 속살이다.
부동산 뿐 아니라 증시를 급등시킨 주도세력도 외국인이다. 지난 6월 중순까지 외국인 투자가들은 12주 연속 일본 주식을 6조1757억엔(약 57조원)어치 순매수했다. ‘아베노믹스 장세’로 불리는 2013년 증시 호황기에 외국인이 18주 연속 일본 주식을 순매도한 이후 가장 오랜 매수 행진이다. 최근 닛케이225지수가 주춤한 것 또한 외국인 투자가들의 열기가 식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기업 실적 개선 또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2013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엔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인 이래 수출 대기업들의 실적은 줄곧 핑크빛이었다. 일본 경제의 문제는 기업들이 아베노믹스로 누린 이익을 임금 인상과 설비투자로 토해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임금이 3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지만 일회성에 그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지난 20여년 동안 일본 기업들은 '임금을 올려라'는 정부의 압박에 일시적으로 인상률을 높였다가 슬그머니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도 크다. 올해 대기업의 임금인상률이 3.99%에 달한 반면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인상률은 3.23%였다.
일본의 가장 큰 고민은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소비가 감소한다는 점이다. 지난 2분기 일본 경제가 6.0% 성장하는 동안 개인소비는 0.5% 감소했다. 3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임금이 3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지만 물가를 반영한 실질임금이 1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데이코쿠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식료품 2만5768가지의 가격이 올랐다. 올해도 3만710가지의 식료품 값이 올랐거나 오를 예정이다. 가격 인상률은 평균 15%에 달한다. 보통의 일본인들이 선뜻 지값을 열 수 없는 이유다.
소비는 부유층과 외국인 관광객의 특권이 돼 가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치 상승으로 소비 여력이 커지는 자산효과를 누리거나 엔저(低)를 만끽하는 계층이다.
지난 5월 일본 백화점 매출은 4111억엔으로 15개월 연속 증가했다. 단 외국인과 부유층이 많이 찾는 도쿄 등 10대 도시 백화점의 매출이 8.5% 증가한 반면 나머지 지역의 매출은 -0.1% 감소했다.
경제의 기초체력을 나타내는 환율도 기록적인 약세다. 148엔대에서 움직이는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24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 7월28일 일본은행이 장기금리를 사실상 1%로 인상했지만 엔화 가치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엔저는 엔화 약세라기보다 달러 등 주요국 통화가 강세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유지한 일본은행과 달리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작년 초부터 인플레를 잡으려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렸기 때문이다.
SMBC닛코증권에 따르면 6월말 현재 전 세계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는 평균 5.86%로 집계를 시작한 2008년 이후 최고치다. 기준금리가 –0.1%인 일본과의 차이가 6%포인트에 달한다. 하지만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금리인상 러시가 마무리 단계인데도 엔화 가치가 맥을 못추자 엔저의 진짜 원인은 일본 경제의 약화, 국력 저하라는 분석이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일본의 외환 정책을 책임지는 재무성의 재무관을 역임한 와타나베 히로시 국제통화연구소 이사장은 최근 아사히신문 기고문에서 "지난해 진행된 엔저의 절반 이상은 일본의 국력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떨어진 결과"라고 주장했다.
와타나베 이사장은 "엔저의 영향으로 외국 기업이 일본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비용이 1년새 20% 낮아졌는데도 성사되는 거래가 거의 없다"며 "일본 경제와 일본 기업이 쌓아올린 권위가 사라진 탓"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최근 일본 경제의 반짝 성장을 장기침체 탈출보다 뒤늦은 ‘리오프닝(경제활동재개)’효과로 보는 전문가도 늘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권을 진작에 벗어난 미국, EU와 달리 일본의 회복 속도가 가장 늦은데 따른 착시현상이란 것이다.
2분기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560조7000억엔.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3분기의 557조4000억엔을 회복했다. 코로나19의 충격을 극복하는데 4년이 걸린 셈이다. 미국과 EU, 영국 등 다른 나라들의 GDP는 이미 1~2년전에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2021년 미국과 EU의 경제성장률이 5.7%와 5.4%를 기록하는 동안 일본의 성장률은 1.7%에 그쳤다. 지난해 미국과 EU가 2.1%, 3.5%씩 성장할 때도 일본은 1.4%로 선진국 가운데 가장 부진했다.
2021~2022년 미국과 EU가 경험했던 경제회복이 2년 늦게 일본에서 나타난 결과가 6.0%란 성장률이라는 설명이다. '다타키 경제' 일본③으로 이어집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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