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된다" 반대 뚫고 길가 쓰레기통 치웠는데…伊 도시 '반전'[르포]
[편집자주] 신의 선물에서 인류 최악의 발명품으로 전락한 플라스틱. 우리나라의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2021년 기준 492만톤으로 추정된다. 매일 1만톤 이상 나오는 폐플라스틱은 재활용률은 50% 수준에 그친다. 정부와 산업계는 이같은 폐플라스틱의 환경위협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해 '탈(脫) 플라스틱과 순환경제 조성'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품생산에서 소비, 폐기,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 분야 순환경제 조성을 위한 노력을 점검하고 2027년 83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선점을 넘어 대한민국 수출 체력 강화에 이르는 길을 찾아본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피렌체까지 고속열차로, 피렌체에서 피사를 거쳐 루카까지 일반 열차로 달린다. 끝이 아니라 버스로 갈아타고 마지막 도착지로 향한다. 도합 5시간 여정끝 찾은 '카판노리'(Capannori)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에 속한, 인구 4만6000여명의 소도시다. 버스는 한시간에 1~2대 정도 다닌다. 자전거나 오토바이·승용차같은 이동수단이 없으면 돌아다니기 힘든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카판노리의 또다른 이름은 '유럽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도시'다. 제로 웨이스트 운동의 본거지가 유럽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세계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부터 도시 차원에서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시작한 이 곳은 폐자원의 재활용률이 87%라고 한다. 2021년 기준 56.7%인 우리나라보다 30%P(포인트) 이상 높다.
콜라 한 캔으로 이탈리아의 9월 더위를 다소나마 잠재우고 나니 작은 난관에 부닥쳤다. 이탈리아 다른 지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던 길거리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는다. 2007년 제로 웨이스트 도시 선언을 한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거리 대형 쓰레기통을 없앤 것이라고 한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시청 근처 공원에서 작은 크기의 공공 쓰레기통을 찾아 캔을 버렸다.
쓰레기통을 없애면 거리가 엉망이 될 것이란 생각은 카판노리에선 예외다. 지오다노 델 치아로(Giordano Del Chiaro) 카판노리 환경담당 장관(우리나라의 부시장에 해당)은 "쓰레기가 섞여있어 분리수거가 안 되는 길거리 쓰레기통 대부분을 치웠다"며 "길거리에 쓰레기가 100% 없어졌다고 할 순 없지만 쓰레기통을 없애니 오히려 거리가 깨끗해졌다"고 설명했다. 쓰레기를 집으로 가져가서 버리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한다.
카판노리는 길가에 쓰레기통을 없앤 다음 단계로 폐기물 처리시스템 개선에 나섰다. 공동 폐기물 처리장을 운영하는 대신 수거 차량과 인력이 직접 각 가정을 찾아 폐기물을 수거하는 방식이다. 직접 수거 체계를 만드는데 2005년부터 3~4년가량이 걸렸다.
가정에선 △음식물 등 썩는 쓰레기(갈색) △플라스틱 등 폐합성수지(노란색) △종이(하얀색) △유리병(녹색) 등 4종류의 폐기물 수거함을 마련하고 요일마다 지정된 폐기물을 투명 비닐봉투에 담아 문 앞에 내놓는다. 봉투는 내용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투명한 재질이다. 폐기물 수거 공무원이 잘못 배출한 봉투를 보면 수거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폐기물 수거 거부 시에는 무슨 폐기물이 섞여 거부했는지 스티커를 붙여 표시한다.
대형 폐기물은 직접 폐기물 선별장에 버려야한다. 카판노리 시청에서 북쪽으로 15~20분여 떨어진 선별장 '아쉬트'(ASCIT, 모든 물건을 모은다는 이탈리아어 머리말을 따 만든 이름)를 찾으니 각자 차량에 목재와 가전 등을 실어와 버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곳 아쉬트는 카판노리를 포함해 12개시 15만명이 폐기물을 버린다.
버려야할 폐기물마다 번호를 붙여 폐기 장소를 구분해놓은 뒤 선별장 입구에서 직원에게 버릴 폐기물을 보여주면 안내를 받아 해당 장소에 폐기물을 버리는 방식이다. 10㎏(킬로그램)까진 비용없이 버릴 수 있고 1㎏초과마다 1유로씩 비용을 낸다. 차량이 없거나 이사 등으로 대량 폐기물이 발생하면 예약을 통해 선별장 측에서 수거를 하기도 한다.
시청 남쪽으로 다시 20분여 차를 달려 코젤리에 지역에 가면 카판노리 제로 웨이스트 활동의 주요 거점인 다카포(Da Ccapo)가 나온다.
연주 용어인 '다카포(Da capo, 처음부터)에서 이름을 따온 이 곳은 카판노리의 중고물품이 새 주인을 찾는 장소다. 그릇과 주방용품, 전열기, 조명같은 생활용품부터 유아용 장난감, 각종 의류, 웨딩드레스까지 다양한 중고품이 각각 가격표를 붙인 채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경찰 단속으로 압류한 공매물품을 시중보다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중고매장을 지나면 중고가구를 수리하는 공방, 인근 공장에서 수거한 팔레트(받침대) 목재를 가공해 음식물 처리기를 만드는 작업장 등이 나온다. 인근 학생들의 견학은 물론 목공·수리 교육, 공연까지 이뤄져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게 특징이다.
다카포의 관리자 다니엘레 구이도띠(Daniele Guitotti)는 "처음 중고매장을 운영할 때는 버리는 물건이 많았다면 지금은 소유자가 사용하지 않을 뿐 아끼고 쓸모가 있는 물품이 들어온다"며 "최근 중고제품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젊은 사람들 위주로 매장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카포는 장애인이나 일부 청소년 등 사회 적응이 어려운 이들에게 직장 체험을 제공하기도 한다"며 "그들이 가정 등 고립된 환경에서 벗어나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시청에서 만난 루카 메네시니(Luca Menesini) 카판노리 시장은 "물건이 계속 재생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메네시니 시장은 "카판노리에 친환경적이지 않은 소각장을 짓는 대신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선택했다"며 "이전에 35%에 불과했던 재활용률이 가정마다 수거시스템을 갖추면셔 65%, 매립 폐기물에 대해 전자태그 관리를 시작하면서 87%로 올랐다"고 설명했다.
가정별 수거시스템 뿐만 아니라 재활용이 안되는 매립쓰레기의 경우 배출 봉투에 전자태그를 부착하고 매년 가정별 배출량을 기록해 일정 수준 이상 배출 시 처리단가를 올리는 일종의 '누진제'를 도입했다. 배출량이 줄어들수록 처리단가를 낮추는 유인책으로 재활용률을 끌어올렸다는 게 시장의 설명이다.
메네시니 시장은 "처음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시작하고 폐기물 배출방식을 변경했을 땐 '이상한 일을 한다'는 비판도 있었고 저항도 적잖았다"며 "폐기물 배출일정을 지키지 않거나 다른 사람의 집앞에 폐기물을 버리는 사람도 다수였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시민 각자 폐기물을 줄이면 이득이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며 "슈퍼마켓에서도 포장용기를 들고 가서 음식을 싸오는 사람이 늘고 지역행사에서도 플라스틱컵이 사라지는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메네시니 시장은 "초기에는 폐기물을 수거하고 매립하는데 비용이 들었지만 지금은 폐기물 처리비용이 줄어들어 늘어난 비용과 큰차이가 없다"며 "수년간 수거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용을 최소화하고 재활용품 판매를 늘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제로 웨이스트 운동은 개인 혼자 할 수 없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시키는 게 중요하다"며 "초기엔 정책이 인기가 없지만 우리가 하려는 건 포퓰리즘이 아니라 민주주주의"라고 말했다.
카판노리(이탈리아)=김훈남 기자 hoo13@mt.co.kr 이상봉 PD assio28@mt.co.kr 방진주 PD wlswn64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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