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예금자보호법, 위헌 심판대 올랐다… 부산저축銀 사태 핵심인물이 제청 신청
채무불이행자, 일률적 형사처벌 위헌 소지
예보 “실효성 있는 조사 위해 법 조항 필요”
예금자보호법(예보법)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대에 올랐다. ‘부산저축은행 파산 사태’를 촉발한 캄코시티 사태의 핵심 인물이 예보법에 대해 헌법 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부실 금융기관의 채무불이행자가 예금보험공사(예보)의 조사에 불응할 때 책임의 정도를 따지지 않고 일률적으로 형사처벌을 하는 게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다.
예보는 이번 위헌 소원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해당 예보법 조항이 위헌으로 결정되면 불법·부실 경영으로 금융회사에 손실을 입힌 책임자에 대한 예보의 구속력 있는 조사가 어려워진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의 파산을 부른 캄코시티 사태의 핵심 인물인 월드시티 이모 대표는 예보법 제41조 제2호, 예금자보호법 제21조의2 제1항과 제7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뒤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위헌 소지가 있다고 제기된 이 예보법 조항들은 부실 관련자가 예보의 자료제출 및 출석 요구 등 조사를 거부·방해·기피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예보법 제21조의2 제1항은 공사가 부실 금융회사 또는 부실 우려 금융회사로 하여금 그 부실 또는 부실 우려에 책임이 있다고 인정되는 부실관련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같은 조 7항은 부실금융회사 등 부실 관련자 또는 이해관계인에 대해 업무 및 재산 상황에 대한 자료제출요구, 출석요구 등 조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제41조 2항에서는 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기피한 자에 대해 형사처벌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앞서 부산저축은행은 2000년대 캄보디아 프놈펜에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는 ‘캄코시티’ 사업의 부동산 시행사인 월드시티에 2369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캄코시티 사업은 금융위기 등으로 분양에 실패하면서 개발이 중단됐다. 이 여파로 캄코시티 등에 무리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를 했던 부산저축은행은 2012년 8월 파산했다. 파산관재인인 예보는 월드시티 대표인 이 대표에게 대출 원리금 상환을 요구했지만, 이 대표는 채무상환 및 담보 설정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6700억원 규모의 자금 회수가 늦어지며 3만8000명에 달하는 부산저축은행 예금 피해자들은 아직 구제를 받지 못했다.
예보의 수사 의뢰로 검찰은 이 대표를 조사해 횡령 등 혐의로 2020년 7월 재판에 넘겼다. 이 대표는 올해 2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및 예보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번 위헌 소원에서는 부실 관련자 중 채무자 관련 처벌조항이 입법 목적과 정책적 필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다툴 전망이다. 예보법 조항에 대한 위헌 심판을 청구한 측은 예보의 조사에 불응한 채무불이행자를 죄질과 책임의 정도에 따라 구체적으로 유형화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1년 이상의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한 것은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형사처벌할 정도의 비난 가능성이나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단순한 민사상 채무불이행자의 경우까지 형사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책임주의 원칙 등에 위배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예보법 조항은 16년 전에도 위헌 시비가 있었다. 대구지방법원은 2007년 예보법 조항이 명확성 원칙, 과잉 금지의 원칙, 또는 형벌과 책임 간의 비례성 원칙 등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위헌 여부의 심판을 제청했다. 헌재는 2년 뒤인 2009년 해당 예보법 조항에 대해 8대 1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법재판관 1인은 이번 위헌 소원 제청 이유와 동일하게 ‘형벌은 죄질의 책임과 정도에 상응하는 적절한 비례성을 지켜야 한다’는 비례의 원칙에 반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예보는 준법경영실을 통해 이번 위헌 심판에 대해 대응에 나섰다. 예보는 예보법 제41조 제2호에 대해 부실 관련자에 대한 조사 기능의 실효성을 확보해 국민 경제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목적으로, 입법 재량의 한계를 벗어난 자의적인 입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위헌 소원을 제기한 측의 주장처럼 채무불이행자를 책임의 정도에 따라 나눠 처벌을 하려면 선제적인 조사가 필요한데, 형사처벌의 단서 없이는 실질적인 채무불이행자 조사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보 관계자는 “채무불이행자를 나눠서 (책임의 정도에 따라) 과태료나 형사처벌을 하라는 내용인데, 조사를 해야 책임의 정도를 알 수 있다”라며 “아무런 형사처벌이 없으면 보통은 부실 책임자 조사에 응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또한, 예보는 예보법 제21조2의 7항에 따라 부실금융회사의 채무불이행자 등 부실관련자는 조사 대상에 포함되므로, 부실관련자 조사 대상도 명확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예보법 위헌 심판은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위헌 결정은 헌법재판관 9인 중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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