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마음PT] ‘BTS’ 한국이 ‘자살률’ 최고, ‘출산율’ 최저인 진짜 이유
# 지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힙(hip)한 나라로 떠오르고 있다. 문화의 도시 파리에 한국 식당만 200개가 넘고, 푸대접받던 사범대 국어교육과가 ‘한국어 열풍’으로 해외에서 구직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단군 이래 최고로 융성해진 나라에서 자살률이 20년 넘게 OECD국가 중 최고이고 출산율은 최저인 이유는 무엇일까. 새삼 30년전 미국에 살 때 기억이 떠오른다.
1994년은 김영삼 정부 2년차로 의욕과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1987년 군사독재가 종식되고 민주화가 되면서 백화제방(百花齊放)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그때 언론도 ‘선진한국’을 위한 취재에 바빴고 당시 워싱턴 D.C.에 있던 나는 미국사회를 움직이는 유대인 사회를 맡았다. 그때 놀란 것이 그들의 역사 가르치기와 인물관이었다.
3천여년간 나라 없이 떠돌던 신세로 지내다보니 그들에겐 일체감을 조성하는 역사가 중요했는데 자신들의 흠과 약점의 역사를 숨기거나 호도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를 안내한 유대인 마을 변호사는 그들 제1의 영웅이 다윗, 제2의 영웅이 모세라고 소개하면서 “다윗이 바람둥이(womanizer)이고, 모세가 살인자(murderer)인 사실을 아느냐”고 오히려 물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윗 왕은 부하 장군을 전쟁터에 보내 죽게 하고 그의 아내를 첩으로 삼았다. 그로 인한 죄는 결국 자식들에게로 이어져 근친상간과 살인, 패륜, 아버지 다윗왕에 대한 반역과 쿠데타, 그리고 다시 아버지 면전 앞에서 자식이 살해되는 비극으로 절정에 이른다.
이 패륜적 스토리만 보면 다윗은 대표적인 인생의 실패자여야 한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 역사상 제일의 영웅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유대인들의 생각은 이랬다.
“그가 비록 큰 죄를 지었지만 진심으로 참회했고,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도 받았다. 그의 일생을 놓고 볼 때 유대민족을 위해 잘한 일이 역사상 어느 누구보다 크기 때문이다.”
유대인 마을 원로 인사의 얘기다.
“성경(구약)은 인간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상에 선인과 악인은 없다. 우리 마음에 선과 악이 있을 뿐이다. 다윗왕이 지은 죄조차도 인간의 본성을 아는데 좋은 교훈이며, 우리가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있는 그대로 다 가르친다.”
공(功)과 죄(罪)를 함께 보여주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존경할 대상이 넘친다. 1센트 동전에 링컨 얼굴을 새긴 조각가, 청바지 리바이스 창업자, 영화사 워너브러더스 설립한 형제들, 도박과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가스를 만든 갱두목…. 모두 특정 분야에서 영웅이자 로울 모델(role model)이다.
#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로 돌아오니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시대 존경받는 사람도, 우리 역사에 추앙받는 영웅도 거의 없었다. 교보문고 ‘위인코너’를 가보니 충무공 이순신 장군, 백범 김구 선생,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 등이 고작이었다. ‘역사 파헤치기’, ‘용서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친일파 논쟁으로 이광수, 서정주, 김활란 등 수많은 문화예술교육인들이 퇴출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주역들 상당수도 같은 운명이었다. 이승만, 박정희는 물론 전두환, 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들도 마찬가지였다.
경제발전에 최선봉에 섰던 이병철, 정주영 등은 노동자를 착취한 재벌로 비하되고 있었으며, 이런 저런 범주에 속하지 않는 엘리트 인물들은 군부독재에 ‘부역’한 인물들로 멸시받고 있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다. 이후 대한민국의 영웅들의 자리를 5.18 민주화 운동 등 공권력으로 인해 희생된 민주화 인사들이 차지하기 시작했고, 일제 시대때 항일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영웅칭호를 받는 공산주의자들도 부각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을 일군 주역들 대부분은 ‘나쁜’ 사람이 됐고, 항거한 사람들이나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날을 세웠던 사람들이 ‘좋은 사람’으로 부상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더구나 그것은 다시 상대 진영으로부터 부메랑을 만들게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이미 중・장년이 되었고 자녀들을 키우고 있다. 그들이 장기간 겪어온 규범의 붕괴와 가치관의 혼란, 아노미(anomie, 無規範狀態) 현상은 본인 자신의 자긍심의 저하는 물론 타인이나 이웃・사회에 대한 불신, 절망감으로 누적됐고,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와 수치심・죄책감으로 치환(置換)된 뒤 다시 자식들에게로 대물림되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해 먹고 살만해진 2002년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자살률 세계 1위가 되고, 더 이상 아기를 낳고 싶어하지 않고, 우울증, 정신질환이 난무하게 된 사회가 된 근본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우리 모두 겪을 수밖에 없었던 굴곡진 역사에서 오로지 상대방의 과(過)만 찾고 자기네 잘못은 철저히 옹호하는 ‘내로남불’ 당파성 세태에선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데서 생기는 정신적 피폐와 질환은 약으로, 돈으로, 시스템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사라진 희망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과거의 역사・인물,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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