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돌아온 3고 위협...한국경제 '상저하고' 누른다

변태섭 2023. 9. 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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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행진 국제유가, 물가상승 부담 키워
고환율에 미국의 장기 긴축 고금리 기조도 부담
U자형 회복세 기대 대신 L자형 불황 우려
게티이미지뱅크

수출 부진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 앞에 ‘3고(고환율·고금리·고물가)’ 먹구름이 또다시 몰려오고 있다. 지난해 경제 성장을 끌어내린 3고 위협이 재차 부상하면서 경기회복 불씨가 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달갑지 않은 ‘3고의 귀환’을 소환한 건 치솟는 유가다. 25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전국에서 거래된 휘발유 평균가격(L당 1,788원)은 1,800원 돌파를 코앞에 뒀다. 7월만 해도 L당 평균 1,585.5원이던 휘발윳값이 13% 가까이 뛴 건 국내 석유제품 가격의 바탕이 되는 국제유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어서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다 올해 초 70달러 안팎까지 떨어졌던 국제유가는 최근 고공비행 중이다. 수입 원유 가격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의 지난주 평균 가격은 배럴당 94.4달러를 기록했다. 투자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와 골드만삭스는 올해 안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길 것으로 내다봤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대외협력실장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러시아의 감산 연장 결정으로 공급부족 우려가 커지고 있어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도 국제유가 오름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널뛰는 유가는 물가상승으로 직결될 공산이 크다. 지난달 물가상승폭(1.1%포인트‧7월 2.3%→8월 3.4%)의 절반 이상이 급등한 유가가 원인이었다. 최근 국제유가 오름세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고금리 기조 유지로 잡힐 듯했던 물가는 최대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

물가가 오르면 부담을 느낀 가구는 지갑을 닫고, 소비 부진은 민간 기업의 생산‧투자 감축으로 이어진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 생산과 투자, 소비가 한꺼번에 줄어드는 트리플 부진이 이미 7월에 나타났다”며 “국제유가에 따른 물가상승압력은 향후 내수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고환율도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330원대로 1,400원을 훌쩍 넘겼던 지난해보단 낮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행의 경제통계시스템을 보면 2000년 1월 이후 지난달까지 284개월 중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긴 건 23개월에 불과하다. 그중 8개월이 최근 1년에 쏠려 있다. 고환율은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를 차례로 자극해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린다. 고유가와 고환율이 맞물리며 경기 부진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은 여기에 기름을 붓는 요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가 내년까지 연 5%의 기준금리 유지 방침을 시사하면서 불거진 ‘고금리 장기화’는 강달러 현상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을 자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한국은행이 연준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기 어려워진 만큼 취약 차주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에 대한 대응 여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과 미국 간 기준금리 역전 격차는 역대 최대 폭인 2.0%포인트다.

중국경제 침체 우려로 수출 역시 부진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3고 위협 재부상으로 정부의 ‘상저하고(상반기 저조했다가 하반기에 회복)' 기대처럼 U자형 회복이 나타날 가능성은 사그라들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건 ‘L자형 불황’ 우려다.

일각에선 저성장이 한국경제의 ‘뉴노멀(새로운 기준)’로 굳어지고 있다는 잿빛 평가까지 내놓고 있다. 실제 바클레이즈·씨티·골드만삭스·JP모건 등 8개 주요 외국계 투자은행(IB)은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을 1.1%, 내년엔 1.9%로 내다봤다. 2% 안팎인 잠재성장률을 밑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021‧2022년에 이어 3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하회할 거란 우울한 전망도 덧붙는다.

경제의 두 축인 재정·통화 정책은 진퇴양난이다. 재정을 풀거나 금리를 인하해 성장동력을 마련하기엔 물가와 외화유출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긴축 정책 역시 1,400조 원에 달하는 부채를 가진 가계 부담을 더욱 키우고 산업 전반을 위축시킨다는 것이 중론이다.

성 교수는 “정부 통제 밖에 있는 에너지 비용 상승이 위기를 불러온 만큼 노동‧규제 등 다른 쪽에서 기업 부담을 줄여야 하고, 물가상승압력을 잡기 위해선 점진적인 금리인상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정부의 상저하고 달성 목표는 어려워진 게 사실”이라며 “추경 등 확장재정은 오히려 물가 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긴축 기조를 가져가되, 취약계층 위주로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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