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골프 선수들은 왜 상금 없는 단체전에 나서나

최수현 스포츠부 차장 2023. 9. 2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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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컵·솔하임컵 등 대항전
출전 자체가 영광이자 자부심
고독한 개인전 벗어나 동료 얻고
‘나보다 더 큰 것’ 경험하는 기회
24일(현지 시각) 스페인에서 열린 솔하임컵 골프대회 마지막날 싱글매치에서 유럽팀 시간다가 미국팀 넬리 코다를 이기며 유럽팀 승리를 확정짓자 유럽팀 선수들이 환호하며 뛰어 나가고 있다./AP 연합뉴스

미국과 유럽의 여자 프로골프 대항전 솔하임컵이 25일 사상 첫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동점인 경우 규정에 따라 기록상으로는 직전 대회 우승팀 유럽의 승리로 인정됐다. 이번 주말엔 이탈리아에서 남자 골프 대항전 라이더컵도 열린다. 미국이 유럽을 제외한 나라들과 맞붙는 프레지던츠컵은 내년에 예정돼 있다.

각각 2년마다 개최되는 단체 대항전은 대단한 위상과 인기를 누린다. 점잖은 일반 골프 대회와 달리, 선수 12명이 한 팀을 이루고 대규모 응원단이 열광적인 함성을 쏟아낸다. 수십 년 대회 역사에 숱한 명승부가 펼쳐졌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신생 골프 리그 LIV는 단체전 형식과 파티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는데 이는 라이더컵을 본뜬 것이다. PGA 투어에서 LIV로 이탈하는 선수가 나올 때마다 ‘이 선수가 PGA 투어 출전은 금지당해도 라이더컵에는 선발될 수 있을지’가 골프계 큰 이슈였다.

라이더컵이나 솔하임컵, 프레지던츠컵에는 상금이 없다. 그런데도 선수들은 대표팀에 뽑히는 것을 최고의 영광이자 골프 인생 하이라이트로 여긴다. 출전했던 선수들은 팀 이름이 큼지막하게 새겨진 골프백을 개인 우승 트로피만큼이나 애지중지하며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 둔다. 라이더컵에 다시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 나머지 미 PGA 투어 출전권을 포기해버린 영국 선수도 있었다. 유럽 투어에서 활동하는 것이 다음 라이더컵 유럽 대표로 선발되는 데 더 유리할 거라고 계산했는데, 결국 실패하면서 미국 진출 기회만 날린 셈이 됐다.

라이더컵 출전 의미에 대해 덴마크 출신 토마스 비욘은 “나는 그 전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를 대표했다”고 설명했다. 타이거 우즈는 “개인보다 더 큰 것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나 특별하다. 선수들과 의지하며 한 팀을 이룬 경험을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하겠다”고 했다. 개인 종목인 골프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고독하다. 자기 이름을 걸고 자기 자신을 위해 경기하면서 홀로 모든 선택과 결과에 책임지는 것으로 실력을 증명한다. 그런 선수들에게 단체전은 공동체와 팀워크를 경험하고, 개인의 부와 명예보다 더 높은 차원의 가치를 추구하는 기회가 된다.

단체전에선 어제의 경쟁자가 오늘의 동료가 되어 서로 돕고 격려하며 함께 전략을 짠다. 내가 잘했을 때 팀 동료가 나보다 더 기뻐하고, 못하더라도 동료는 나를 믿어준다. 개인전에 익숙한 골퍼들에게는 신선하고 드문 경험이다. 김주형은 지난해 프레지던츠컵에서 그해 두 차례 PGA 투어 우승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홀까지 239야드 남겨두고 친 2번 아이언샷을 홀 3m에 붙였는데, 이 결정적 한 방으로 단숨에 PGA 투어 ‘인싸(인사이더)’가 됐다. 쟁쟁한 선배들 앞에서 나이 어린 신인이 놀라운 배포와 집중력을 발휘해 팀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단체전은 자기 안의 리더십을 발견할 기회도 준다. 냉혹한 승부사로 선수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타이거 우즈는 2019년 프레지던츠컵 미국팀 단장으로 나서 리더십을 인정받으며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 우즈는 자신보다 어린 팀원들을 “내 아이들(my boys)”이라고 불렀고, 팀원들은 “타이거를 위해, 타이거와 함께 경기한다는 것이 대단한 힘이 됐다”고 고백했다.

지금 한창 뜨거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자신보다 더 큰 것을 위해 싸우며 개인의 한계를 초월하는 각국 선수들을 목격하게 된다. 신선하다. 자신보다 더 큰 것에 인생을 바쳤다면서 실제로는 지독하게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들을 지난 몇 년간 뉴스에서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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