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유인촌 장관’ 귀환과 BIFF
영화제 예산 삭감 보다는 실태 점검·사후 평가 절실
그룹 자우림 멤버 김윤아 씨는 지난달 24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RIP 地球(지구)’라고 적힌 사진을 올리며 “며칠 전부터 나는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오늘 같은 날 지옥에 대해 생각한다”고 썼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개시에 공개적으로 비판 발언을 한 것이다. 이를 놓고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이후 연예인의 정치적 발언이 공정한가를 놓고 정계가 떠들썩하다.
정치인과 연예인의 공통점은 대중적 인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예인이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지면 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로 최무룡 이순재 이주일 최불암 강부자 신성일 김을동 등 금배지를 단 연예인이 부지기수다. 또한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보니 정권마다 정치 성향이 맞는 연예인이나 문화계 인사를 장관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유인촌(72) 대통령 문화체육특별보좌관(문화특보)을 2기 내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지명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이명박(MB) 정부 시절 문체부 장관을 지낸 유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같은 장관직을 두 번 수행하게 된다.
두 명의 대통령 신임을 받게 된 유 후보자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업무 능력은 둘째치고 그가 장관 시절 공개석상에서 보여준 ‘막말’은 지금도 SNS에서 ‘짤’로 돌아다니고 있다. 유 후보자가 2008년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도중 기자들을 향해 “사진 찍지 마! XX 찍지 마”라고 말하며 삿대질을 하는 영상은 국민 뇌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례한 장면이다.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 ‘전원일기’ 속 따뜻하고 현명했던 양촌리 김 회장네 둘째 아들 용식은 그저 허상이었다는 탄식이 당시 나왔다. 물론 유 후보자가 문화예술 현장과 행정에서 경륜과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그가 재임 당시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우려스럽다. 그는 장관 내정 이후 “(문체부 장관 시절에) 대립적인 관계는 있었지만 블랙리스트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따라서 인사청문회에선 이 부분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유 후보자 등판으로 문화계가 둘로 쪼개져 벌이는 이념 전쟁이 볼썽사납다. 일부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유 후보자의 블랙리스트 관여 이력을 거론하며 대통령에게 지명 철회를 요구한다. 반면 보수 성향 예술인들은 그를 지지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하고 나섰다.
유 후보자가 MB시절 장관 재임 당시 문화·예술계에 지나치게 경쟁을 강조한 점도 문화·예술인의 반발을 사고 있다. 그의 신조는 여전히 변함없는 것 같다. 그가 지난 7월 대통령 문화특보로 임명됐을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한 발언을 보면 그렇다. 그는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하겠다는 영화들까지 왜 정부가 돈을 줘야 하나” “나랏돈으로 국가 이익에 반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말이 되나” 등의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국내외 영화제 육성지원사업’ 내년 예산이 절반 삭감된 데는 유 후보자의 의중이 담겼다고 보는 이유다. 2024년 영진위 예산안을 보면 지역 관련 영화 지원예산은 100%, 국내외영화제육성지원사업 예산은 50% 삭감되고, 영화제 지원 대상도 기존 40개에서 20여 개로 축소됐다. 이에 다음 달 4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비롯한 영화계는 갑작스러운 예산 삭감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BIFF는 2014년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으로 부산시와 갈등을 빚은 이후 ‘색깔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이용관 전 이사장이 업무상 횡령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바로 복귀한 후 BIFF 내부를 이 이사장 측근 인사로 채우며 사유화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영화제가 영화 창작의 동기와 목표가 되는 기초 사업으로 수많은 창작자를 길러냈다는 점에서 영화제 지원예산 삭감 조치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방만한 보조금 운영이나 낭비적 요소는 점검해 없애는 게 맞다. 하지만 영화 ‘기생충’이나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K-컬처’ 바탕에는 창작과정의 많은 실패와 문화적 다양성이 있다. 봉준호 감독도 여러 작품의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기생충’을 만들어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게 됐다. 상상을 초월하는 한국 웹툰의 다양성과 뛰어난 작품성을 보면서 뿌듯하다는 사람도 많다.
이처럼 문화·예술 분야 투자는 단시간에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문화 정책은 시민 삶의 질을 향상하고 사회적 창의성과 다양성 증진 등 긍정적 효과를 거두게 된다. 당장 이득이 나지 않고 쓸데없는 데 돈을 쓰는 것 같다고 예산 지원을 줄인다면 문화정책의 퇴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제 관련 예산 활용에 문제가 많다면 사후에 실태를 철저히 점검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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