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경제 항산항심] 정책 실효성 담보하려면 현장 살피는 것부터

이정식 ㈔중소상공인살리기 협회장 2023. 9.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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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중소상공인살리기 협회장

올 추석(秋夕)은 가을 달빛이 유난히 밝다. 햅쌀로 빚은 송편과 햇과일 등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낸다. 두툼하게 넣은 용돈을 부모님께 드리니 “코로나로 힘들 텐데 가게에 보태쓰라”며 극구 사양한다. “나라에서 다 보살펴 줘서 괜찮아요”라며 겨우 어머님 호주머니에 넣어드렸다. 낑낑대며 들고 온 선물 보따리를 푸니 집안은 웃음 천국이다. 고향 순창 가는 길에 조잘거리는 손주들 애교로 부모님 얼굴엔 함빡 웃음꽃이 핀다.

“뭔 좋은 일 있다고 잠꼬대하며 피식 웃고 그러냐”라는 앞 가게 사장의 말에 잠이 깼다. 손정범 사장은 고단함에 잠시 잠들었던가 보다. 지난 7월부터 민락수변공원이 금주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주변 활어회센터에는 손님이 뚝 끊겼다. 설상가상으로 8월 24일부터 일본 오염수가 방류되면서 나날이 매출 ‘꽝’이다. 그나마 알바 자리 구했으니 천만다행인가. 자정부터 아침까지 회를 떠서 대형마트 등에 납품하는 업체라 잠은 손님 없는 가게에서 새우잠 자야 한다. 중소 자영업자들에겐 ‘최악의 추석’이 목전이다.

장기 불황 중 겪은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국제유가 인상 등에 따른 원자재가 상승, 전기료 및 가스비 등 공공요금 급등으로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8월 부산지역 소비자물가지수는 111.9(2020년=100)로 1년 전보다 3.4% 상승했다. 채소·과일류 등 성수품을 중심으로 물가가 가파르게 올라 추석을 앞둔 서민들엔 큰 부담이고 상인 입장에선 재고 등으로 이래저래 힘들다. 민족의 명절 추석이라지만 중소 자영업자들은 추석이 없었으면 좋겠다. 생필품을 파는 골목 가게는 가족여행은 고사하고 차례를 지내려고 문을 닫는 것조차 엄두도 낼 수 없다. 명절 상여금 지급, 대체공휴일로 인한 인건비 증가, 급등한 금융 비용과 공과금 청구서 등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수영팔도시장 근처에서 킹마트를 운영하는 이숙경 대표는 “지난해 7·8월에 낸 월평균 전기료는 220만 원 정도였지만, 올해 동기간 월평균 전기료는 280만 원이라 고지서 보기가 겁이 난다”고 토로했다. 자영업자들은 올 명절엔 수익은커녕 현상 유지도 어렵다.

정부는 올 추석 농축수산물 명절 선물가액 상한을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지만, 온라인쇼핑몰,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수요가 집중된 상태다. 추석 이후 판매하지 못한 재고 처분에 선물세트 상품을 꾸리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시장이나 골목상권을 찾는 소비자들이 감소하니 중소자영업자들의 표정은 어두울 수밖에. 경기 침체로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니 직원들에게 상여금은 줄 엄두도 못 낸다. 자영업 대책 없는 정부의 임시공휴일 지정에도 볼멘소리다. 황금연휴 기간이라지만 식당 편의점 슈퍼마켓 등은 문을 열기에 고정적인 인력이 상주해야 한다. 정부의 ‘내수 소비 활성화’ 설명엔 “엔데믹으로 해외여행이 늘어나 추석 연휴에는 도심이 텅텅 빌 테니 국내 자영업자들은 텅 빈 가게 지키며 전기료만 낭비할 판”이라며 상대적 박탈감에 속을 끓인다. 더욱 기가 찬 건 정부가 코로나19 유행 초기에 지급한 재난지원금 환수조치다. 대상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지급된 새희망자금과 버팀목자금이다. 각각 251만 명에 2조8000억 원, 301만 명에 4조 3000억 원 규모다. 두 재난지원금 모두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피해를 겪은 음식점, 카페 등의 소상공인이 지급받았다.


코로나19 빚을 메우기 위해 땡볕 한여름을 땀으로 온몸을 적셨다. 사지에 내몰린 많은 이들은 사채까지 끌어다 쓰고 근근이 버티며 지금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소비 위축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소상공인들에게 재난지원금 환수조치는 가혹하다. 나라의 빈 곳간을 소상공인의 빚으로 채우려 해선 안 된다. 민락수변공원 주변에서 남편과 함께 황금포차 가게를 운영하는 고예림 씨는 중국인이다. 한국이 좋아서 한국 국적으로 바꿨지만, 수변공원의 금주공원 지정과 관련해 현장을 살피지 않는 정책에 매우 실망했다고 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 사람이 되고 싶다며 현장의 마음을 살피는 정책이 마련돼 자신의 소망이 변치 않기를 추석 보름달 보며 빈다고 했다. 정책 실효성은 현장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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