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과학자들의 소통방식
“왜 입장 바꿔서 생각을 해요, 내 입장이 훨씬 좋은데.” 어느 드라마에서 나온 말인데, 대립하는 듯하지만 서로 티키타카하는 모습이 유쾌한 데다 대화 내용이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그렇다.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한다. 그러면서도 소통하려 노력한다.
물리학에서도 현상을 표현하는 기준을 정한다. 흔히 지구 표면에 정지한 관측자를 기준으로, 지표면에서 하늘로 던져진 물체의 위치나, 동쪽으로 움직이는 자동차의 속력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경우 누구든 관측자가 될 수 있는데, 자동차에 카메라를 달아서 녹화된 영상을 보면 다른 주변 사물들이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운동하던 대상이 관측자가 되면,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대상들에게 자신의 운동과 반대의 효과를 더하면 된다. 동쪽으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면 서쪽으로 그만큼의 속도를 더하고, 아래로 가속도 운동을 했다면 위로 가속도를 더하는 것이다. 그러면 관측자의 속도와 가속도는 0이 되어 관측자가 되고, 주변 대상들은 새로운 관측자가 보는 운동을 나타내게 된다.
도로 위에 서 있는 A에서, A가 볼 때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던 B로 관측자가 바뀌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A가 관측하는 힘을 B도 동일하게 관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A가 볼 때 가속운동하던 C가 관측자가 되는 경우는 다르다. C가 관측자가 되면 A가 가속운동을 한다고 관측하게 되고, 가속운동을 하려면 힘이 작용해야 하는데, 힘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운동하는 인공위성이나 속도를 높이는 자동차처럼 가속운동하는 내부에서는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가상의 힘을 도입해야만 하는데, 이를 관성력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지구주변을 원운동하는 인공위성 안에 있는 우주인이 볼펜을 허공에 놓으면 무중력상태처럼 제자리에 떠 있게 되는데, 인공위성 창 너머 보이는 지구의 중력이 볼펜에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볼펜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중력과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A와 원운동하는 인공위성 속의 C가 만나서 볼펜의 운동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C는 비록 발견하지 못했지만 중력과 반대방향으로 볼펜에 작용하는 힘이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A는 그런 힘은 없으며, 볼펜과 함께 인공위성 전체가 원운동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다양한 증거들을 제시할 것이다. 소통과 논의를 통해 현상을 이해하고 합의에 도달하려 노력하고, 남들과 다른 견해를 갖는 것이 나로 인한 것인지 돌이켜 봐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얼마 전 과학계는 상온 초전도체 개발 논문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발표되고, 전 세계적으로 검증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부 방송이나 증권가에서는 과학적 내용이나 검증 자체보다 성공가능성 여부와 기대 주식 종목에만 매달리는 듯하여 염려의 목소리도 컸다. 당시는 일본이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국내에서 여야 정치인들이 서로 과학적이라며 상반된 주장을 하고, 일부 과학자들조차도 엇갈린 주장을 하던 터라, 상온 초전도체에 관한 과학계의 반응이 어떨지 매우 흥미롭게, 약간의 염려를 갖고 지켜보았다. 그런데 과학계의 반응은 평범했다. 상온 초전도체 개발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논문으로 발표했고, 나머지 과학자들은 검증과정을 기다렸다. 검증이란 동일한 현상을 재현하는 것으로,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물질의 초전도 현상을 다른 과학자 집단이 그대로 따라 해서 같은 현상이 나오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 결과 어떤 검증집단에서는 일부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다른 집단에서는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네이처가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연구결과와 앞서 진행된 많은 사례를 종합하여 초전도체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그렇지만 과학자들 중 누구도, 초전도체 연구를 발표한 연구진이 실패했다고 하지 않으며, 초전도체가 아닐 줄 알았다고 비아냥거리지도 않았다. 과학은 서로 소통하고 검증하며 같이 발전시켜 나가는 것임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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