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치질이 가른 나폴레옹과 유럽의 운명

황성환 부산제2항운병원장 2023. 9.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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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환 부산제2항운병원장

워털루 결전은 영국 연합군과 프로이센군이 나폴레옹의 군대를 물리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의 결과로 프랑스의 20년 지배를 종식시켰으며 19세기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프로이센과 러시아가 강대국으로 부상했고 영국은 ‘팍스 브리태니커’시대를 열었다. 전광석화의 군사적 천재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웰링턴 장군은 우직하고 끈질긴 지휘관이었고 영웅이 됐다.

그림= 서상균 기자


나폴레옹은 잠이 적다고 알려졌으나 기록은 다르다. 통상 하루 8시간씩 충분히 수면을 취한 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하들의 보고를 받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구술(口述)로 하루 평균 15통의 명령을 내렸다. 그는 아침에 집중적으로 일을 했다. 운명의 그날, 나폴레옹은 벨기에 브뤼셀 근교의 작은 마을 워털루에 차려진 지휘소에서 5시경 일어났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먹을 때까지 4시간 동안 그는 평소와 달랐다. 여러 증언과 기록을 통해 그는 치질과 방광염으로 인한 통증과 고열로 고생했다고 전해졌다. 고통을 호소한 나폴레옹에게 의사는 아편을 처방했고 약 기운에서 덜 깬 영향으로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전투 지휘를 하는 동안에 수차례 멍한 모습을 보였다.

참모장이 프로이센 군대를 추적하기 위해 엉뚱한 방향으로 진군하던 글로시 원수의 3만3000명 병력을 돌아오게 하자 건의했지만 나폴레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른 참모가 영국 보병을 측면이나 후방으로 공격하는 우회 전술을 건의했을 때도 비웃는 듯 엉뚱한 표정을 짓기만 했다. 또한 그의 동생 제롬이 웰링턴의 영국군과 블뤼훼의 프로이센 군대가 합류하기로 약속했다는 정보를 전했지만 그것도 듣지 않았다.

지리적 위치, 날씨 탓도 있었으나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패한 것이 치질 영향이 있었다는 역사적 기록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패전의 원인을 부하 탓으로 돌렸다. 프로이센군의 합류와 반격을 예상치 못했고 그의 주력 부대를 엉뚱한 방향으로 진군시켜 전열을 가다듬지 못했다. 전투 지휘를 하는 동안 거동이 불편해 말을 탈 수도 없었다. 여러 불리한 전황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그는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탁월한 군사적 전략과 정치적 역량으로 위세를 떨치던 나폴레옹이 치질의 숨은 고통으로 전투 패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과거 기록에 근거해 기정사실로 인지된다. 나폴레옹의 무리한 전투 지휘와 글로시 원수의 바보 같은 판단이 겹쳐져 전세는 미궁에 빠졌고 이때 프로이센군의 주력이 웰링턴 군대에 합류하면서 결국 프랑스군은 크게 패전했다. 살아남은 소수의 황제근위대는 다급히 그를 호위해 파리로 달아났다.

연구에 따르면 인구의 약 13%가 치질로 고생한다고 알려졌만 통상 전체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치질 증상을 경험한다. 치질 발생의 위해요소는 변비와 과체중이다. 치핵은 발생 위치에 따라 내치핵과 외치핵으로 구분한다. 내치핵은 대개 증상이 없지만 2기 이상이 되면 과다 출혈이 발생하고 정도가 심해지면 붓기, 뒤 무직함, 불편함, 통증은 물론이고 작렬감이나 가려움 증상을 동반한다. 치질조직의 혈관이 터져 핏덩이를 만드는 것을 혈전이라 하고 이는 통증이나 염증을 수반한다. 치핵이 항문 밖으로 탈출해 원위치로 들어가지 않는 상황을 감돈(嵌頓)이라 한다. 이를 방치하면 조직 괴사가 진행되고 염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나쁜 세균이 번식해서 근육과 근육을 싸고 있는 막까지 썩는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마취의 발달과 함께 수술을 통해 인간이 치질의 고통에서 해방 가능한 시기가 1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합병증이 동반된 심한 치질은 인간에 큰 고통을 준다. 나폴레옹의 치질이 얼마나 심했는지 기록이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염증과 통증을 동반한 복잡 치질로 인해 일상 행동에 큰 지장이 있었다고 기록됐다. 워털루전쟁 때 그에게 치질이 악화되지 않았다면 말을 타고 종횡무진 전장을 누비면서 천재적 전투 지휘를 통해 큰 승리를 이루었을 나폴레옹과 프랑스, 웰링턴과 영국의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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