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먹는 치료제가 바이러스 변이 일으켰다

이정아 기자 입력 2023. 9. 26. 00:00 수정 2023. 9. 2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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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크 치료제 라게브리오 변이 유발 증거 발견
신종 변이, 전파력 증가에 대한 증거는 못 찾아
코로나19 먹는 치료제인 ‘라게브리오(사진·성분명 몰누피라비르)’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자체에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으며, 이 변이가 다른 사람에게 확산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뉴스1

미국 머크사(MSD)가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먹는 치료제인 ‘라게브리오(Lagevrio)’가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으며, 이 변이가 다른 사람에게 확산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약은 이전에도 코로나19 변이를 일으킨다는 논란이 있었는데, 여기에 힘을 싣는 과학적인 근거가 하나 더 더해진 셈이다.

테오 샌더슨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연구원팀은 25일(현지 시각) “국제인플루엔자정보공유기구(GISAID)가 전세계에서 수집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염기서열 1500만여 개의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 라게브리오가 유도한 것으로 보이는 돌연변이 패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라게브리오를 복용한 사람에게서 이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은 미복용자에 비해 8배나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됐다.

라게브리오에서 약효를 내는 성분은 몰누피라비르(molnupiravir)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람 세포 안에서 증식하는 동안 바이러스의 유전체(RNA)에 껴 들어 방해한다. 이 때문에 개발 초기부터 라게브리오가 사람의 DNA에도 영향을 미쳐 암이나 기형을 유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글로벌 코로나19 염기서열 분석 데이터베이스에 나타난 코로나19 돌연변이 발생 빈도(왼쪽)과, 라게브리오(성분명 몰누피라비르)를 복용한 환자군에서 나타난 코로나19 돌연변이 발생 빈도(오른쪽)이 유사하게 나타났다./Theo Sanderson, Nature (2023)

유전물질은 네 가지 종류의 염기로 구성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인 RNA(리보핵산)는 이 염기들이 배열된 순서에 따라 생명현상을 좌우하고 몸을 만드는 단백질을 합성한다. 몰누피라비르는 코로나19 바이러스 RNA를 이루는 염기 중 시토신(C) 자리에 몰래 들어갈 수 있다. 시토신과 분자 구조가 닮았기 때문이다. 또 인체 세포의 영향을 받으면 우라실(U)과 비슷한 구조로 바뀔 수 있다. 시토신은 원래 구아닌(G)과 결합하는데, 몰누리파비르가 시토신 자리에 들어가면 아데닌(A)과도 결합한다. 이 과정에서 염기 서열이 뒤죽박죽 바뀌면서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연구진은 라게브리오를 도입한 2022년 이후 전 세계에서 이런 돌연변이 패턴을 가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라게브리오를 복용한 환자군에서 나온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비교했을 때에도 돌연변이 패턴이 유사했다.

특히 영국과 호주, 미국, 일본 등 그 해부터 라게브리오를 사용한 국가, 특히 노년층에서 이러한 돌연변이가 많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팍스브리드와 라게브리오를 둘 다 승인한 국가에서는 노년층에게 병용금기약물이 많은 팍스브리드보다는 라게브리오를 처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캐나다, 프랑스처럼 라게브리오를 승인하지 않은 국가에서는 이런 돌연변이가 적게 나타났다.

물론 바이러스는 늘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진화한다. 면역계를 속여 더 많은 숙주를 감염시키고 번식하기 위해서다. 또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자연적으로 C가 U로 바뀌는 현상이 비교적 잦다. 그런데 라게브리오를 복용하면 이런 변이가 일어나는 빈도가 6배 가량 증가했다. 자연적으로는 거의 잘 나타나지 않는 G에서 A, U에서 C, A에서 G로 바뀌는 변이도 5~20배 가량 증가했다.

샌더슨 연구원은 “몰누피라비르가 새로운 돌연변이를 일으켜, 약물 치료에도 살아남은 바이러스가 유전적 다양성을 갖게 한다”며 “비슷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할 때 이 연구 결과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몰누피라비르가 코로나19 새로운 변이를 만들거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경로와 속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앞서 지난 1월과 8월에도 몰누피라비르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를 의학 분야 사전 논문 공개 사이트 ‘메드 아카이브(medRxiv)’에 실었다. 이번에는 당시보다 더 많은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라게브리오를 복용할 경우 각 돌연변이가 얼마나 많이 생길지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여전히 엇갈린 의견을 내놓고 있다. 조내선 리 미국 하버드대 의대 바이러스학전문연구소장은 “돌연변이를 일으켜 바이러스를 막는다는 작용원리 때문에 근본적으로 우려가 들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제시 블룸 미국 프레드허친슨 암연구센터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원래 변이가 잦다”며 “항바이러스제가 바이러스 진화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 추가 연구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6649-6

medRxiv(2023) Doi: https://doi.org/10.1101/2023.01.26.23284998

medRxiv(2023) Doi: https://doi.org/10.1101/2023.01.26.23284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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