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장님, 월 38만원 받고 가사노동자로 일해보실래요?

박다해 기자 2023. 9. 2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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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뉴스]윤석열 대통령 지시한 뒤 시범 사업으로 100명 받아들여
가사 노동과 저출생에 고민 없이 비용 줄이는 데만 집중
이주 가사 돌봄 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이 28일 오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외국인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르면 2023년 올해 하반기부터 필리핀 등 동남아국가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명이 국내로 들어온다. 이들은 국내에 ‘비전문취업’(E-9) 비자로 들어와 6개월가량 서울에서 출퇴근 형태로 가사서비스를 제공한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는 9월15일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서비스 제공기관 모집공고’를 내고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기관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상임 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은 “10월 중에는 제공기관 선정 업무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 시범기간이 끝난 뒤 이들의 계속 고용 여부는 불투명하다.

2023년 안 동남아에서 가사노동자 받기로

노동부 ‘외국인력정책위원회’의 결정사항 공고문(9월7일)을 보면 정책의 윤곽이 좀더 분명해진다. 정부는 ‘만 24살 이상’ 외국인을 대상으로 관련 경력과 지식, 어학능력 평가, 범죄이력 등 신원 검증을 하고 마약류 검사까지 한 뒤 이를 모두 통과한 인력을 선발한다. 노동자 송출 국가는 “가사인력 관련 자격증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를 우선 검토”한다며 필리핀을 예로 든다. 가사·육아 서비스 대상자는 20∼40대 맞벌이 부부와 한부모로 종일제·시간제 이용 여부는 수요에 따라 다양하게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2023년 3월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조차 적용하지 말자는 법안을 발의해 ‘현대판 노예제’를 만든다는 비판을 받았던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과 달리, 정부는 그나마 ‘최저임금’은 적용하겠단 입장이다. 단, 서울에 머무는 동안 숙소비는 노동자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서울시가 추경을 통해 확보한 1억5천만원은 이들에게 한국 문화 등을 교육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이상임 담당관은 “한국어시험(TOPIK) 통과자를 뽑겠지만 (채용 과정에서) 통역 등 코디네이터 비용으로 쓰거나 한국 가정의 문화 등과 관련한 심화 교육에 쓰는 방향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정책은 속전속결로 구체화했다. 2023년 5월 윤석열 대통령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뒤 불과 두 달 만에 공청회가 열렸고, 다시 두 달 만에 시범기관 모집이 시작됐다. 7월31일 열린 공청회에선 패널로 참여한 육아 당사자가 “가장 좋은 건 내 아이를 내가 키울 수 있게 노동시간을 조율하는 것”이라며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부정적 의견을 내놨지만 이런 목소리는 사업계획이 구체화하는 9월까지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필리핀 정부가 국외에 파견하는 가사노동자 보호정책을 강화하고, 여성가족부가 제공하는 아이 돌보미 서비스가 엄격한 교육 이수를 요구하는 것과 달리 민간기관에 채용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교육과정에서 정부의 책임성이 담보되지 않는 점 등에 대한 의문도 공청회에서 제기됐지만 노동부는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했다.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가 열린 31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서울에서 `가사노예제도 시범사업\'에 반대하는 단체와 개인들이 기습적 공청회를 규탄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낮은 임금만 강조하는 오세훈 시장, 조정훈 의원

반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정책 논의를 주도해온 이들은 가사노동과 저출생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거나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대표주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그는 2022년 9월 페이스북에 “오늘 국무회의 토의 안건이 ‘인구구조 변화와 대응방안'이었다”라며 이 자리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비중 있게 논의해주실 것을 건의드렸다”고 처음 밝혔다. “한국 육아 도우미는 월 200만~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원 수준”이니 저출생 해결을 위해선 저임금 가사노동자를 외국에서 데려와야 한다는 얘기다.

가사노동은 ‘최저임금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오 시장은 2023년 7월3일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도 “우리나라는 (가사노동도) 최저임금 적용을 받는데 처음에 (정부에) 제안했던 형태는 그걸 뛰어넘는 변화가 없으면 실질적으로 저출생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제안한 것”이라며 “홍콩과 싱가포르가 이 제도를 이용할 때 (월급은) 우리 화폐가치로 100만원이 넘지 않는다. 그 정도는 돼야 저출생에 도움이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가사노동을 ‘싼값’으로 환원하는 것이 가사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일말의 고민도 보이지 않는 발언이다. 가사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가사근로자법’은 제정에만 69년이 걸렸다. 이 법은 2022년 6월 시행돼 갓 1년을 넘겼을 뿐이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한정한다 해도 이를 다시 ‘최저임금 적용 예외’ 일자리로 돌리려는 시도는 “결국 가사노동의 가치를 하향 평준화하는”(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효과를 낸다.

배 대표는 “통상 가사노동자는 하루 평균 4시간 일하고 평균 100만원을 받는다. 이는 ‘풀타임’으로 일하기에는 노동강도가 세기 때문”이라며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이 월급으로 서울의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도 지적했다. 그는 또 “이들이 하루 8시간 근무를 한다면 이동 및 휴식시간을 보장받아야 하는데 이를 민간기관이 제대로 조율할지도 문제”라며 “장시간·저임금·고강도 노동에 시달린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결국 (가사노동이 아닌) 다른 사업장으로 옮기려 할 것”이라고 짚었다.

무엇보다 오 시장은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쓰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 대신 그는 8월24일 페이스북에 “제가 외국인 도우미 도입을 제안한 건 저출생을 단번에 뒤집을 만한 카드를 찾았으니 그걸 써보자는 의미가 아니었다”라며 말을 슬쩍 바꿨다.

외국인 노동자 고용 현실에 대한 얄팍한 이해를 드러내는 데도 부끄럼이 없다. 오 시장은 8월1일 페이스북에 “(필리핀 가사노동자인) 이분들에게 월급 100만원은 자국에서 받을 수 있는 임금의 몇 배 수준일 텐데 이를 두고 노예, 인권 침해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국내 가사노동자는 물론이고 기존 ‘E-9 비자’로 일하는 이주 여성노동자도 성희롱·성추행, 폭력과 착취에 노출된 현실에 무지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무시한 발언으로 읽힌다.”

가사도우미 비용 줄이려고 외국인 희생시키나?

필리핀에서 온 박세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는 타국으로 이주한 필리핀 가사노동자 친구들의 사례를 이렇게 전한다. “이들은 병가도 휴가도 없고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일하는 곳의 출퇴근 시간과 언제 연장 근무를 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일하는 동안 집안일과 아이를 돌보는 일 등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므로 매우 힘들다고도 말했습니다.”(8월28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 기자회견)

현실은 이런데 여전히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최저임금법을 적용받는 데 안타까움을 표하는 이들은 어쩌면 가사·돌봄노동을 제대로 해본 적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우연찮게 이들은 모두 `중년 남성’이다. 오세훈 시장과 조정훈 의원에게 권한다. 한 달에 38만∼76만원을 받으며 가사노동자로 일해보시라.

서울=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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