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의 ‘겸직’과 클린스만의 ‘재택근무[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과거 독일 대표팀 감독 시절에도 자신의 집이 있는 미국에 자주 머물며 ‘재택근무 논란’을 일으켰던 그는 한국 축구대표팀을 맡은 뒤에는 더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올해 2월 말 선임된 클린스만 감독은 주로 미국에 머물며 활동해 왔다. 그가 한국에 머문 기간은 그동안 73일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 온 그는 최근 이 같은 비난을 의식한 듯 14일 선수단과 함께 귀국했지만 잠시 국내에 머물다 닷새 만인 19일 다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가 지휘봉을 잡은 뒤 거둔 성적은 1승 3무 2패. 뚜렷한 색깔과 성적을 보여주지 못한 데다 한국대표팀을 가벼이 여기는 듯한 모습이 겹치면서 팬들의 반응은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
그는 “미국에 머물면서도 한국대표팀에 대한 업무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가 미국에 머물면서 각종 국제행사에 참석하거나 방송 출연 등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의 말은 신뢰를 잃고 있는 상황이다.
축구계에서는 국가대표 감독 외에 다른 일을 겸하며 성과를 낸 드문 예가 있기는 하다. 대표적으로 한국대표팀을 맡아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구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을 들 수 있다. 그는 한국대표팀을 떠난 뒤 2005년 7월 호주대표팀 감독에 부임해 이듬해 7월까지 1년간 재임하며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치렀다. 이때 그는 월드컵 본선 직전인 2006년 6월 초까지 네덜란드 프로축구 PSV 에인트호번의 감독을 겸했다. 겸직하는 동안 그는 호주를 32년 만의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고, PSV 에인트호번을 2005∼2006시즌 네덜란드 프로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 이어 그는 월드컵 본선에서도 호주를 16강까지 진출시켰다.
당시 ‘히딩크 마법’이라는 표현이 세계에 유행했는데, 사실 그건 마법이 아니라 철저한 분석과 그에 따른 전술의 힘이었다. 본선 첫 경기에서 호주는 일본에 3-1로 역전승했다. 히딩크가 후반에 교체 투입한 선수들이 잇달아 골을 넣었다. 주변에서 마법 같은 용병술이라고 칭찬했지만 히딩크는 “일본이 후반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그에 따른 계획이 분명히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지고 있을 때를 대비한 선수 교체와 포메이션 변화를 반복 훈련했다. 자기 팀과 상대 팀의 특성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선수 개개인에 대한 장단점을 꿰고 있지 않으면 발휘하기 힘든 용병술이었다. 여기에 히딩크의 장기인 선수들의 영혼을 불태우게 하는 고도의 심리 처방까지 더해지면서 전술적, 정신적 용병술이 빛을 발했다. 이는 그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두 팀의 감독을 겸직하면서 실질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대비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음에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선수단을 파악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반면 클린스만 감독은 자기가 관리하는 선수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본인이 지향하는 축구나 대표팀 운영 방안에 대해서도 정밀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그 자신이 대표팀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시작하면서 선수들과의 정신적 교감도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선수들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보여주지 않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 혼을 불사르며 투지를 일으키기는 쉽지 않다. 이 같은 관심 및 열정 부족은 팀에 대한 부실한 분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마법 같은 용병술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일과 개인 생활을 병행하려는 그의 재택근무 방식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가 보여주는 행동과 결과로는 아직까지 그의 진정성과 열정을 느끼기 어렵다. 그를 둘러싼 재택근무 논란의 핵심은 결국 그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그의 불성실함이다.
아직까지는 부임 초기라 할 수 있기에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 자신이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그를 둘러싼 상황은 좀처럼 개선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클린스만 본인의 변화가 필요한 때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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