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평화, 국제·한반도·국내의 3중 전략 절실[정전 70년 한반도 영구 평화를 향해]

기자 2023. 9. 25. 20: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⑮ 한반도 평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
1992년 1월14일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한 공동선언문’ 교환, 2007년 9월27일 제6차 2단계 6자회담 전체회의 개막, 2002년 6월22일 한·일 월드컵 4강에 오른 한국 선수들 세러머니, 1988년 10월2일 서울올림픽 폐막식(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국제적으론 미·중 갈등과 미·중 협조, 둘 모두를 활용해야
그 요체는 양국의 패권경쟁이 한반도로 전이되는 걸 막는 것이다
또한 한·조 관계의 관점에서 장기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핵심은 세 가지로, 전쟁 방지와 비핵화 그리고 민주화와 개방화다
한국사회서 최악의 갈등은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폭발한다
따라서 평화의 첫출발은 내부 통합과 평화, 지속성과 연속성이다

개인과 공동체 모두 평화는 인간 실존의 가장 절실한 근본요소다. 지금 우리에게 한반도 항구평화를 위한 경로와 선택은 아직 남아있는 것일까? 아니,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은 오늘의 상황에서 과연 항구평화를 말해도 되는 것일까? 두 제국인 미국과 중국은 갈등이 심화됐고, 조선의 핵무장은 강화되고 있으며, 조·중·러 연대는 부활하고, 나아가 한·미·일 대(對) 조·중·러 대결구도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의 조선과의 관계와 대화는 장기간 단절되어 있다. 한국과 미국의 조선을 향한 정책의 지속성과 일관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핵문제를 포함하여 조선정책을 둘러싸고, 가장 중요한 행위자인 한국 사회는 극단적인 진영갈등을 노정하고 있다.

어느 한 요소도 한반도 항구평화에 유리하지 않다. 하나같이 불리하다. 정전 70년의 오늘, 항구평화를 향한 우리의 냉엄한 객관적 자화상이자 현실이다. 참으로 지난한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정전 이후 70년 동안 ‘최선의 평화’를 구축하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동시에 ‘최악의 전쟁’ 재발을 막는 데는 성공해왔음을. 그리하여 우리는 ‘전쟁 재발의 부재’와 ‘적극적 평화의 부재’라는 ‘두 부재’의 길항적 공존 사이에서, 안전·안정과 갈등·적대가 함께 빚어내는 생산적 역할에 힘입어 산업화·민주화·정보화·세계화라는 커다란 성취를 이룩한 바 있다.

경계국 한국에 외교와 경제는 하나

한국은 절대 경계국가다. 따라서 항구평화를 위해 먼저 ‘밖’을 날카롭게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그중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미·중관계다. 현대 세계사가 보여주었듯 미국과 중국은 둘의 관계 개선과 국익을 위해 남베트남·일본·소련을 차례대로 희생·제어·붕괴시킨 미필적 협력의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전술했듯 한국전쟁을 제외하고는 두 나라는 직접 충돌한 적이 없다. 미·중의 관계 개선 시도 이후 50년간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미·중 협조체제로 주요한 전쟁이 아예 없었다. 냉전시대와 탈냉전시대를 관통하는 미·중 협조체제 시기 동안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에 빠져들었고 소련은 붕괴하였다.

일본과 소련의 정반대 사례에서 보듯 국제질서에서 가치와 이익은 늘 유동한다. 세계 이념전쟁인 한국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세계 반도체전쟁의 중심에 서 있는 경계국가 한국에 외교와 경제는 사실 하나다. 외교는 경제의 전제이며 가치는 이익의 표지다. 국가의 생존과 성장, 즉 자기보존은 안전과 식량 둘 모두를 필수요소로 하듯 국익을 해치는 가치, 경제와 유리된 외교는 존재할 수 없다. 가치를 이념으로, 외교를 진영으로 접근하면 더욱 위험하다. 따라서 미·중 갈등과 협력 시기 모두에 걸쳐 안보와 경제를 크게 발전시킨 경험을 갖는 한국은 오늘의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말을 바꾸면 우리는 미·중 갈등과 미·중 협조, 둘 모두를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요체는 미·중 자체의 패권경쟁과 갈등 사안이 한반도와 한국으로 전이되는 경로와 가능성을 차단하는 지혜와 능력이다. 둘을 분리하지 않는다면 전방 초소에 위치하는 한반도가 미·중 대결의 한복판으로 끌려들어갈 수 있다. 중·일 대결 시기의 불법 강점, 미·소 대결 시기의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혹독한 대가를 유념할 때, 미·중 대결 시기에 같은 공식의 도래는 반드시 막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반대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중의 상이한 정책은 한국 주도로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의 우리는 그럴 위상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미 약소국·중진국·중견국의 범주를 넘어선 한국은 더 이상 국제대결의 각축장·화약고·소용돌이만은 아니다. 한반도 평화에 관한 한 주도적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실 국내총생산, 제조업, 첨단산업, 무역, 군사력, 국방비, 전자정부 및 정보통신발전지표, 과학기술 특허의 세계 순위에서 거의 모두 10위 안에 진입한 한국은 이미 선진국임이 분명하다. G7·G9 초청이 어색하지 않은 국력이다. 자신들의 평화 건설을 주도해야 할 위치와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소명과 책임과 지혜다.

전통시대와 근대 이후 한국의 평화는 항상 세계를 읽는 안목과 시야로부터 나왔다. 경계와 교량은 기회이자 창이며, 여러 문화와 문명을 녹여 하나로 빚어내는 용광로이자 도가니다. 이곳에서 대립하는 요소들은 융합을 거쳐 늘 새것이 되었다. 많은 외부 관찰자들은 한국인들이 어떻게 작은 한옥 안에서 세계와 세계문제를 꿰뚫고 있었는지 주목한 바 있다. 그리고 여러 종교와 문명, 가치와 문물들을 어떻게 자기들 안에서 종합하고 통합하여 독자적인 독특한 양태와 경지로 발전시켜 왔는지를 간파한 바 있다. 지금 한국의 물질 발전과 역량이 유사 이래 가장 절정인 시점에 안전과 안정, 평화와 평안을 위한 자기 철학과 방략을 만들어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조선 핵문제의 해결은 그 중심에 선다. 핵무장을 추구하는 자들 이상으로 혼신의 노력과 일관성을 견지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절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먼저는 국제관계다. 한반도 항구평화를 위해, 그리고 조선이 핵개발에 전력을 집중한 요인에 비추어, 한·중 수교, 한·러 수교에 상응하는 미국과 일본의 조선과의 국교정상화는 여전히 유효한, 한반도 전쟁 억제와 비핵평화와 독립공존을 위한 열려 있는 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상호 격렬한 전쟁과 적대를 경험했던 미·소, 미·중, 미·독, 미·일, 미·베트남 사이의 수교 전례에 비추어, 탈냉전과 조선의 핵무장 사이 시기에 미국과 조선 간 수교의 실패는 한반도 비핵평화에 중대한 실기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탈냉전 초기와 유엔 동시 가입 시기를 포함하여, 특히 조선이 아직 비핵국가이던 때부터 이 절호의 기회들을 누차 놓쳐온 바 있다. 한·중-한·소 수교 당시 조선의 고립상황을 맞아 유일 제국 미국이 주도하는 완전한 국제적 체제 보장과 핵·ICBM 개발의 중단처럼 유효한 교환재도 없었다. 경제와 안보의 교환이 아닌, 안보와 안보, 즉 기능주의가 아닌 현실주의가 해법이었다. 물론, 현재는 지난하나, 그렇다고 해서 남아있는 길을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다.

한·미 동맹과 비확산체제를 유념할 때, 또 궁극적인 한반도 항구평화 목표와 전략을 고려할 때 한국의 자체 핵무장, 전술핵 재반입, 핵잠재력 확보, 나토식 핵공유 경로가 사실상 모두 불가능한 현실적 조건에서, 우리는 한·미 핵우산 및 확장억제의 단기적인 강화와 함께 - 한국의 관점에서 미국의 확장억제 약화와 자체 핵개발은 응당 고려 가능한 교환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환 구상을 현재의 미국은 갖고 있지 않다. - 장기적인 비핵평화의 목표를 결코 포기해서도 안 된다. 이때 단기와 장기 접근과 목표를 꼭 분리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항구적인 한반도 비핵평화의 길이 이 둘을 어떻게 지혜롭게 결합할 것인지에 달려 있음은 강조할 필요도 없다.

한·조, 두 주권국가로 정립해야

오늘의 시점에서 한반도 항구평화를 위한 결정적인 요건의 하나는 한국과 조선이 두 주권국가로서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립하는 일이다. 현실에서 한국과 조선은 이미 서로 다른 두 주권국가이다. 두 국민국가 형성 이전의 단일 민족·문화·언어·혈통에 기반한 민족주의와 민족통일은 현재 가능하지 않다. 국가·정체·주권·헌법이 우선이다. 한국과 조선은 현재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서로 적대적이며, 관계와 대화가 단절되어 있다. 한국인이 자유로이 갈 수 없는 유일한 나라도 조선이다. 특히 조선이 핵무장을 고수·강화함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말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허위이자 호도이다. 강조컨대 핵을 포기하면서 통일을 추구할 조선도 아니지만, 핵을 보유한 조선과 통일할 한국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선은 우리민족제일주의를 넘어 우리국가제일주의를 말하고 있다.

특히 청년세대는 통일 대신 독립공존과 평화를 지향한다. 그들은 민주화 이후 출생한 세대다. 자유·인권·민주주의·세계화·정보화를 향유한 그들에게 하나의 민족이라는 이유로 독재와 세습과 전체주의 체제와 통일과 통합을 추구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연방과 연합? 역시 불가능하다. 인류의 역사와 지혜에 따르면 체제와 가치(이념)와 정체가 같지 않으면, 민족과 문화와 혈통의 동질성과 동일성으로는 연방과 연합은 성공하지 못한다. 오히려 종족과 혈통,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체제와 가치, 정체와 제도가 같으면 연방과 연합은 성공하였다.

한반도 항구평화를 위해서는 분단공존·독립공존·주권공존을 통해 두 국가로 장기간 존속하는 가운데, 상호 위협하고 간섭하고 비난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따로 가면 된다. 조선에 대한 주권 인정과 독립공존은 극단적인 보수주의와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관점에서는 모두 수용이 어려운 경로일 것이다. 전자에게는 타도와 절멸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후자에게는 한 민족이자 통일 상대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둘 모두 현실의 부인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한국전쟁을 통해 우리는 통일폭력이 분단폭력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목도한 바 있다. 통일을 위한 비극이 분단으로 인한 비극보다 더욱 클 수 있다는 점도 깨달았다.

따라서 조선을 상대하는 문제에 관한 한 한반도 항구평화의 과제는 남북관계를 넘어 한·조관계의 관점에서 장기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핵심은 세 가지다. 제1은 전쟁의 방지, 제2는 비핵화, 제3은 민주화와 개방화다. 셋 모두 긴 시간이 걸릴 과제다. 조선에 대한 강경정책을 통해 대화와 협력조차 불가능한 적대와 대결을 불사하는 정부들이 거꾸로 통일을 적극 언명하고, 반대로 남북관계 개선에 집중하는 정부들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조선의 변화와 개혁을 방치하는 오랜 모순적 접근은, 분단공존·독립공존의 접근방식을 통해 모두 지양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잘못된 두 접근으로 인해 국제문제로서 한반도 항구평화 문제는 계속 공전하였기 때문이다.

한반도 항구평화는 세계 속의 한반도 문제와 한국을 인식하는 데에 길이 있다. 한국에서 민족주의의 발흥은 근대로의 진입 초기부터 강점 시기를 거쳐, 분단과 전쟁의 부정적 유산이 강렬했던 시기까지만 강력했다. 예외상황 속의 예외적 산물이었다. 그 시기를 제외하면 한국민을 움직인 근본 사유구조와 행동지반은 세계 최고와 보편주의에 대한 열망과 추구였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을 세계 최고 문명 및 보편가치와 견주거나 일치시키려 하였고, 그 도저하고 감연한 도전이 독자주권과 주체성의 지속과 유지, 한국 문명의 보편성과 독특성을 함께 향유하게 한 제1 요인이었다. 종족적 정체성이 아니었다.

평화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한반도 문제는 항상 동아시아 문제요 세계 문제였다. 한반도 평화는 우리 자신의 평화이자 동아시아 평화이고 세계 평화이다. 한국 시민인 동시에 아시아인이자 세계 시민으로서의 의무요 책임인 것이다. 이 말은 추상적 언명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이다. 우리 자신의 평화를 지키지 못할 때 우리와 동아시아와 세계가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한국전쟁은 분명하게 보여주지 않았는가. 한국전쟁 당시 한국은 크나큰 상처를 입은 동시에 세계를 구했다. 세계의 자유를 구했고 민주주의를 구했고 자유세계를 구했다. 동시에 자신과 세계 수많은 청년들이 여기에서 죽어갔다. 자기를 지키지 못하면 남도 죽이는 것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내부 분열의 치명적 우매함 반복

평화는 안에서 시작하여 밖에서 완성된다. 경계국가는, 안이 갈라진다면, 본시 서로 다른 이해를 갖는 밖은 더욱 집요하게 안을 갈라치고 통째로 넘보려 달려든다. 안의 통합, 안의 평화가 밖과의 공존과 평화의 필수 선결요소인 까닭이다. 안의 평안과 평화, 통합과 공존이 밖과의 그것의 제1 절대 요건이라는 점을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는 끝내 한반도 항구평화의 적정 조건을 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정전 70주년을 넘으며 우리와 동아시아와 세계를 향한 평화디자인을 제출할 수 있을 것이다. 내부에서 분열하고 적대하면서 외부에 맞서 안전과 평화를 수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여, 한반도 항구평화의 주체적 형성과 정착을 위한, 밖의 요인에 대한 대면방식에 관한 한, 한국 사회의 한 위험한 반복 현상을 통절한 심정으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문제의 원인은 외부에서 발생하나 최악의 갈등은 한국 사회 내부에서 폭발한다는 점이다. 평화에 가장 자해적인 이런 치명적 우매함은 종종 반복되었다. 침략 준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하고 있는데, 침략 여부를 둘러싼 최악의 갈등은 조선 내부에서 일어났다. 한말의 친청파·친일파·친러파·친미파 사이의 갈등은 또 어떠한가. 국제인식과 노선의 갈등을 넘어 외국과 연결된 내부 세력의 타도가 본질이었다.

현대의 분단과 전쟁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직 세계 냉전이 격화되기 훨씬 전에 한반도에서는 찬탁과 반탁, 친공과 반공, 좌파와 우파의 증오와 생사 대결이 세계 어느 곳보다 격렬하게 벌어졌다. 오늘날 조선의 핵문제나 일본 원전 오염수 문제에 대한 대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왜 밖의 중대 문제에 대해 안의 의견을 타협하지 못하는가? 무엇을 위해 이런 몽매함을 반복하는가? 몽매가 아니라, 안(의 목적)을 위해 밖(의 위협)을 활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 즉 밖과의 평화를 위해 안을 통합할 수만 있다면, 한국 주도의 한반도 항구평화는 머지않을 것이다.

한국전쟁은 개별 전쟁으로는 가장 많은 대륙과, 가장 많은 나라와, 가장 많은 종교와, 가장 많은 종족과 함께한 전쟁이었다. 서울 올림픽은 갈라진 두 진영이 다시 전부 참여한 제전이었다. 서울 올림픽 직후 동구(東歐)가 흔들리고 냉전의 밑동이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한·일 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이웃 나라끼리 함께 개최하여 최고의 성공을 거둔 축제였다. 오래도록 이곳 한반도에 오면 이질 요소들은 하나로 융합하고 섞였다. 그러나 안에서는 심각하게 갈라지고 다투었다. 한국과 조선도 과거에는 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둘이 되자 이념 하나 때문에 한국전쟁에서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죽기살기로 싸웠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가 민주공화국을 수립한 이유는 안과 밖, 개인과 공동체 모두의 평안과 평화를 위해서다. 항구평화는 진영과 정부가 아닌 전체 공화국과 국민의 의사 반영, 즉 국정의 통합과 연속성이 아니고는 달성될 수 없다. 공화국의 평화는 전체 사회와 전체 나라의 평화다. 왕과 지도자 개인의 평화(구상)도 아니요, 한 정부와 한 진영의 평화도 아니다. 자기 나라의 평화와 유럽의 평화를 유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동서 대립을 넘어 세계평화 안출에 기여한 나라들의 내부 타협과 통합, 그를 통한 평화방략의 통합성과 지속성과 항속성을 깊이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전후 최악의 파괴 상태에서 선진국까지 한걸음에 내달은 우리가 못 이룰 것은 없다. 거듭 간절히 호소하건대, 항구평화의 첫출발은 내부의 통합과 평화, 지속성과 연속성이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과, 자녀의 자녀들과, 자녀의 자녀의 자녀들까지 평화로울 수 있다면 그것이 항구평화다. 그 이후 세대는 우리보다 더 나은 지혜로 항구평화를 이어갈 것이다. 여기까지 이룬 우리다. 항구평화의 깃발을 끝내 내려서는 안 될 증거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뜻과 땀을 모으자. 영원한 평화의 나라를 위해.

■필자 박명림 교수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 4·3(석사)에 이어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박사)로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래 평화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현상 연구에 천착해왔다. 정치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전쟁과 평화, 생명과 인간, 그리고 국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

<시리즈 끝>

박명림 연세대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