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조상 음덕 오래 기억하는 나무
추석 차례상을 비롯한 모든 제사상에는 반드시 밤을 올려야 한다. 이유가 있다. 밤나무의 씨앗인 밤을 땅에 심으면 새싹을 돋운 뒤에 껍질이 썩지 않고 줄기에 남아 있다. 심지어 백년 동안이나 남아 있다고까지 하지만 이는 과장이고, 실제로 3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옛사람들은 이 같은 밤의 특징을 보고 자신을 낳아준 부모의 은공을 오래 기억하는 씨앗이라고 생각하고, 제사 때에 밤을 올린 것이다.
밤나무 열매인 밤송이에는 억센 가시가 솟아나오는 탓에 나무 그늘이 아무리 좋아도 정자나무로 키우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에도 심지 않았다. 그러나 특별히 밤나무를 마을 한가운데에 심어 키운 오래된 밤나무가 있다. 퇴계 이황의 친형인 온계 이해(李瀣·1496~1550)가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가던 경북 안동 온혜리 온계종택 앞 마을 길에 서 있는 ‘안동 온혜리 밤나무’다.
마을 사람들이 밤나무를 심은 건 오래전 보금자리를 틀 때부터였다. 지네 모양을 한 마을 앞산이 사람살이에 삿된 기운을 뿜어낸다고 생각한 마을 사람들은 지네가 근접하지 않는 밤나무를 마을 곳곳에 심어 지네의 기운을 막으려 했다고 전한다.
마을의 안녕을 위해 여러 그루의 밤나무를 심어 키웠지만, 비교적 수명이 짧은 거개의 밤나무는 세월 흐르며 모두 스러지고 ‘안동 온혜리 밤나무’만 외로이 남아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마을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높이 12m, 줄기둘레 1.8m로 다소 왜소해 보이기는 해도 밤나무 가운데에서는 큰 나무에 속한다.
안동 온혜리 밤나무는 이해가 손수 심어 키운 나무로 알려졌는데, 그는 고향을 떠나 벼슬살이 하는 동안에 “떠나오기 전에 심은 나무가 많이 컸을 텐데, 나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네”라는 글을 남겼을 정도로 애정을 가졌던 나무다. 차례상에 올릴 밤을 치며 옛 사람살이의 무늬와 향기를 기억해야 할 한가위 즈음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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