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수술실 CCTV
2014년 말,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 수술실에서 환자가 누워 있는데도 의료진이 생일파티를 하고 장난치는 사진들이 인터넷에 퍼져 공분을 샀다. 병원 직원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에는 촛불 켠 케이크를 들고 다니거나 ‘셀카’를 찍고 일회용 수술장갑을 말리는 모습까지 나왔다. 수술실 안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환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난 계기였다. 국회는 2015년 초 전국 수술실의 CCTV 설치 의무화법을 처음 발의했다.
법제화는 의료계가 의사·환자 사생활 침해, 의료진 위축 등을 이유로 반대해 번번이 무산됐다. 하지만 그렇게 6년 넘게 지체되는 사이에도 수술실 사고와 불법 행위가 잇따랐다. 2016년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 중 과다출혈로 사망한 ‘권대희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8년에는 부산 정형외과에서 의료기기 영업사원에게 수술을 맡긴 사실이 적발됐고, 2021년에는 인천·광주 병원에서 행정직원·간호조무사가 대리수술에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2019년에는 마취 상태의 환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대형 병원 인턴 의사가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개정 의료법이 25일부터 시행됐다. 2021년 8월 국회 통과 후 2년 유예기간을 지내고 발효된 것이다. 첫 발의로부터는 8년여 만이다. 수술실 CCTV 자료에서 찾아낸 수술 관계자들의 행적을 법정에 증거로 제출해 오랜 소송 끝에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의료진 실형을 끌어낸 권씨 어머니 등 ‘피해자’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법제화 찬성 여론이 80% 이상인 점도 작용했다. 환자 인권 보호와 의료사고 방지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는 공감대가 세상의 변화를 이끈 것이다.
의료계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지난 5일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의료인 인격권과 직업수행의 자유 등 기본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환자 안전 확보 또한 중요한 일이다. 수술실 CCTV 설치는 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감시한다는 취지가 아니다. 환자에 위해를 가하는 불법·비윤리적 의료 행위를 근절할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다. 의사보다 CCTV를 믿어야 하는 현실을 바로잡는 숙제도 의료계 몫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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