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산업, 보조금 아닌 자생력이 필요하다

한겨레 2023. 9. 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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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지난달 16일 서울 시내 한 전기차 충전소에서 충전 중인 전기차들. 연합뉴스

[왜냐면] 김용현 | 한국폴리텍대 부산캠퍼스 전기자동차과 교수

추석이 다가온다. 정겨운 우리 옛이야기에서 비롯한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선비에게 주모가 싸준 음식에서 유래됐지만, 지금은 이와 별개로 ‘값이 싼 물건은 그만한 가치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지금 전기차 시장 최대 이슈는 싼값에 차를 만드는 것이다. 그 중심에 저가형 배터리가 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 비와이디(BYD)는 자국산 배터리 장착으로 올 상반기 세계 전기차 시장 1위를 차지했고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 심지어 지난해 국내 전기버스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 점유율이 42%까지 상승했다. 저렴한 가격을 실현한 주인공은 인산철 배터리다. 차량 성능도 향상돼 국산 전기버스와 큰 차이가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위기를 극복한 중국 전기차 산업은 품질과 가격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더욱이 중국은 자국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축소하고 있다. 돈을 더 이상 지원해주지 않아도 싸고 좋은 전기차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테슬라까지 저가형 배터리를 앞세워 가격 전쟁에 합류했다. 전 세계 1, 2위를 다투는 전기차 기업이 가격 경쟁력을 놓고 붙었다.

국내 자동차 회사는 처지가 좋지 않다. 아직까지 가격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이를 타개하는 방법은 자동차 품질 개선이나 배터리 생산 다변화다. 그러나 이는 많은 희생과 시간을 요구한다. 반면 정부의 도움을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최근 자동차 기업은 정부에 보조금 혜택을 더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품질 개선을 이뤄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방법보다는 쉬운 방법을 택했다. 덜 팔리고 있는 전기차를 어떻게 해서든 세금으로 메워 싸게 팔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국내 자동차 회사에 유리한 것도 사실이다. 정비를 위한 직영 서비스센터가 없거나 인산철 배터리처럼 에너지 밀도가 낮은 전기차의 보조금 혜택을 줄이는 정책은 수입 전기차에게 보이지 않는 벽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정부가 보조금 정책으로 전기차 산업을 보호하려 든다면 장기적 발전을 위한 체질 개선이 어렵다. 보조금 혜택을 과감히 수입차에도 열어야 한다.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기술 폭을 넓혀 기업의 품질 개선을 유도해야 한다. 이는 자생력을 높여 국제 시장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더불어 자동차 회사와 배터리 기업은 뼈를 깎는 심정으로 가격을 낮춰야 한다. 하도급 업체를 때려잡는 것이 아니라 생존 가능한 자동차를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 중국은 자국 전기차 생산 업체에 밀어줬던 자금을 과감히 끊었다. 관련 업체의 줄도산과 폐업이 이어졌으나 이를 통해 전기차 산업의 체질 개선을 이뤄냈으며, 지금의 경쟁력 있는 업체로 발전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 보조금으로 국내 자동차 산업을 보호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올해 국세가 덜 걷혀 힘든 상황에서 정부 자금을 얼마큼 투입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결국 마지막에는 가격과 품질 싸움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전기차 산업의 승자가 결정 날 것이다.

어려운 숙제지만 자동차 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과 가격 모두 만족해야 한다. 소비자는 이 둘을 만족하는 지점에서 지갑을 연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선택받지 못하면 시장에서 사라지고 만다.

지금 국내 전기차 생산은 안팎으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미국과 프랑스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고 있으며, 중국은 저가형 배터리를 필두로 한국 시장까지 공략하고 있다.

과거 내연기관 시절 국내 자동차 산업이 정부 보호 아래 성장했다면, 이제는 스스로의 역량으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이탈리아의 자동차 기업 피아트는 관세 장벽으로 30년 이상 보호받아 왔다. 경쟁자 없는 자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했으나 품질 개선 등에 대한 노력 부족으로 끝내는 인수합병되는 수모를 겪었다. 자생력을 키우지 않으면 언젠가는 도태되고 만다.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싸고 맛도 있는 비지떡처럼 품질과 가격을 모두 만족하는 전기차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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