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개 식용 논란`, 이제 끝냅시다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1취(趣) 1예(藝)'는 있어야 삶의 질이 윤택해진다고 얘기하면서 애견을 키워보라고 권한다. 6·25전쟁이 막 끝났을 무렵 부친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건너가 거기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혼자 있다 보니 개가 좋은 친구가 됐고, 사람과 동물 간에도 심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1997년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개뿐만 아니라 동물이 사람과 공존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동물을 키우다보면 말 못하는 동물의 심리를 읽어야 하기 때문에 남을 생각하는 것이 저절로 몸에 밴다"며 "어미로부터 새끼를 받아내고 키우는 과정에서도 생명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고 반려동물의 장점을 설명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개를 잡아먹는 야만국'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국제사회에 확산할 때도 이 선대회장이 나섰다. 세계동물보호협회(WSPA)와 국제동물복지기금(IFAW)이 항의 시위를 계획하고 한국 상품 불매운동 광고를 게재하면서 한국의 개 식용 문화를 비판하자, 이 선대회장은 IFAW 임원진을 서울로 초청했다. 집에서 반려견과 함께 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애완견 연구센터, 안내견학교 등을 견학시키며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는 데 일조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르면서 환경과 동물권에 대한 인식은 확산됐지만 여전히 개 식용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손흥민 선수를 비롯해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은 "개고기나 먹어라"와 같은 개 식용 소재의 혐오 표현으로 조롱을 받곤 한다.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한류로 우리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 아직까지 개 식용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국가 이미지와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국내에서 1500만명을 넘어섰다.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감에 대체육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시대가 됐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2030년에는 대체육이 전 세계 육류시장의 30%, 2040년에는 60%를 차지해 기존 육류 시장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개 식용이 시대 착오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해마다 높아지는 이유다.
동물보호단체인 한국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이 조사기관 닐슨아이큐코리아와 진행한 '2023 개고기 소비 및 태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86.3%가 '과거 개 식용 여부와 관계없이 앞으로 개를 먹지 않겠다'고 했다. 68%는 '개농장의 개든 반려견이든 똑같이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7%는 개식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데 찬성했다.
개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식용가축에 해당하지 않는다. 축산물 위생관리법상 식용 목적 동물에서 1978년에 제외됐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인정하는 식품 원료도 아니다. 하지만 개의 '가축' 규정을 두고 축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축산법에는 소·말·양과 같은 가축으로 분류된 탓에 개가 법적으로 가축인지 반려동물인지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개 식용 산업을 막을 수 있는 법은 없기에 일부 도축장에서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개고기의 가공·유통이 이뤄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전류 쇠꼬챙이 등을 이용해 개를 죽이는 동물 학대도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정치권이 뜻을 모았다. 여야는 최근 '개 식용 금지' 입법화에 공감하고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적극적으로 개 식용 금지법 추진 의사를 밝혀온 국민의힘은 당론으로 추진한다고 했고,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앞서 지난달 여야 의원 44명은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초당적 의원 모임'을 발족한 바 있다.
개식용 산업 종사자들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며 반려견과 식용견을 각각 분리해 법제화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는 상황이라 정부가 이들의 업종 전환을 돕는 게 더 현실적이다. 피해 농가와 상인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입법에 앞선 당면 과제다. 구체적인 대응책을 수립해 실효성 있는 법안으로 완성되길 기대한다. e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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