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정창원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 “기술 유출 처벌 강화는 양날의 칼…범죄 성립 기준 높아질 수도”
기술 유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날로 커지면서 사법부와 입법부, 행정부가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그간 기술 유출 범죄의 형량과 실형률이 낮았던 만큼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추진 중인 한편, 양형 기준 상향을 위한 논의도 활발하다.
산업스파이에 대한 처벌 강화는 물론 필수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 검찰 수사와 재판은 모두 기술 유출이 이뤄진 뒤에 따라오는 사후 절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사건의 성격상 피해 기업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도 부족하다.
기술 유출 사건의 수사 검사나 피해 기업의 변호사들은 이런 문제점을 피부로 느낀다. 법무법인 세종의 정창원(사법연수원 39기) 변호사는 “현행 사법제도에는 기술 유출 사건의 특수성을 반영한 피해자 보호 장치가 없다”며 “피해 기업이 유출된 기술의 가치를 설명할 기회는 차단된 반면, 피고인(기술을 유출한 쪽)은 그 가치를 마음껏 폄훼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했다.
정 변호사는 변리사 출신의 기술 유출 전문 변호사다. 기술 유출 피해 기업들을 대리한다. 그중에는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대기업들도 있다. 이들의 피해 사실을 재판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이다. 그는 특허청의 산업경쟁방지법 제도개선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며 기술 유출 관련 제도 개선에 힘쓰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즘 기술 유출 범죄 유형은 과거에 비해 무엇이 달라졌나.
“과거의 기술 유출 사건들은 직원들이 이직·전직·창업을 하며 기술 자료를 반출하는 형태로 발생했다면, 최근 범죄의 형태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해외 업체들이 국내 대기업의 협력 업체에 접촉해 거래를 미끼로 대기업 기술을 빼내는 식이다. 다른 하나는 해외 업체들이 기술 유출을 목적으로 창업한 회사에 자금을 대는 방식이다. 전문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화’했다. 빼낸 기술 자료를 가공해 자신들의 것인 양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검찰 수사에서 적발되지 않는 이유다. 이메일 등을 압수 수색할 때 해당 기술 이름으로 검색해도 발견되지 않는 식이다. 유출된 기술 정보를 특정하고 분류하는 일 자체가 어려워진 것이다. 해외 서버 이메일을 사용하거나 중요한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고 정보를 교환하는 등 다양한 수법이 동원된다.”
대기업들은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고강도 보안 시스템을 구축했다는데, 중소·중견기업들은 어떤가.
“협력 업체인 중소·중견기업은 기술 보안에 투자하기 어렵다. 비용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제품 양산을 위해 대기업으로부터 받는 정보를 제대로 지키기가 쉽지 않다. 협력 업체를 통한 기술 유출이 자주 이뤄지면 대기업이 그 업체를 ‘보안 취약점’으로 인식해 계약을 끊고, 제품 양산 등을 내재화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 반도체 소재 중소기업들이 발전한 가장 큰 이유는 세계적인 대기업의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관계가 끊기는 순간,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은 순식간에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악순환인 셈이다.”
기술 유출은 보통 형사 절차로 진행되는데, 피해 기업이 직접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건 어려운가.
“민사소송법상 증거 조사 제도는 기술 유출 사건에서 효과적이지 않다. 법원이 문서 제출 명령을 하려면, 피해 회사(원고)가 직접 상대방(유출 의심 회사·피고)의 문서 이름과 그 문서를 실제 갖고 있다는 사실까지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피해 회사들은 정확히 어떤 자료가 유출된 것인지 당장 알 수 없다. 또 피해 기업이 소장을 통해 특정 기술에 대한 사용금지를 구하면, 소장이 송달되는 즉시 ‘피해 회사가 범죄 행위를 알았고, 법적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다. 증거 인멸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기술 유출 관련 민사에서는 증거 부족으로 청구 취지가 특정되지 않아 피해 기업이 지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민사소송으로 진행하는 건 ‘필패’다.”
결국 피해 기업은 형사 절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건가.
“시작은 그렇다. 하지만 형사 절차에도 한계는 있다. 보통 형사 절차는 피해 기업에 필요한 ‘유출 기술 추가 사용금지’ 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보다 과거 범죄를 처벌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기술을 유출한 기업이 형사 재판을 통해 처벌받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품 사용금지 같은 처분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형사 절차는 피해 기업에 가해자 처벌 외의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그래서 형사 절차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민사소송을 제기한다. 기소 후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별도로 민사로 ‘영업 비밀에 대한 사용금지’를 구하는 형태다. 하지만 이 절차도 민사를 통해 확보한 증거를 갖고 재판을 진행하는 게 아닌, 검찰 수사로 확보된 증거를 민사 재판으로 가져와 쓰는 것이어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형사사건에서 확보된 증거를 민사 재판으로 가져오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는 검찰이 확보한 증거를 볼 수 없다. 공소 제기 이후에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목적으로 수사 기록 일부를 받을 수 있지만, 검찰은 그 범위를 엄격히 제한한다. 법원을 통해 확보할 수도 있다. 다만 재판이 진행되더라도 증거가 바로 법원에 제출되는 게 아니다. 피고인이 검찰의 증거를 동의해야 하며, 동의하지 않을 시 증인신문 등 모든 절차가 완료돼야만 받을 수 있다. 디스커버리(증거 개시 제도·본격 소송 전 당사자들이 증거 자료를 청구하고 교환하는 절차)제도가 없어 생기는 문제다.”
그러면 피해 기업은 재판에서 직접 자기 목소리를 낼 방법이 없는 건가.
“피해 기업 입장에서는 유출된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해야만 한다. 하지만 형사소송규칙상 피해자가 범죄의 성립 여부와 관련된 진술을 할 수 있는 건 증인신문뿐이다. 기술의 중요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면 결국 법원은 엄한 형을 정하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고, 낮은 양형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기술 유출 사건에 관한 법적 절차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디스커버리제도를 통해 이뤄진다. 법률 대리인들이 상호 간 증거 조사에 합의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영장에 기재된 범죄 사실에 한정해서 관련 있는 내용만 확인할 수 있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 ‘위법 수집 증거’가 된다. 그러다 보니 기술 유출 이슈가 생긴 기업들이 우리나라보다는 미국에서 재판받길 선호한다.”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의 도입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디스커버리제도는 기술 유출이 아닌 특허 사건을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지만, 이 제도가 전문가 감정에서 더 나아가 실제로 기술 유출의 핵심 증거를 확보하는 데 있어 유효한 수단이 될지는 의문이다.”
국회에서도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입법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국회는 기술 유출로 인한 국부 유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다만 해결책이 ‘처벌 규정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이는 양날의 검이다. 처벌 규정이 강화되면 경각심은 높아질 수 있겠지만, 법정형이 엄격하게 규정되면 심리를 더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으며 범죄 성립 판단 기준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기술 유출 사건의 특수성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형사·민사소송법을 개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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