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진나라 병마용(兵馬俑)의 비밀] 진시황 군대의 전투력은 신발에서 나왔다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전문기자 2023. 9. 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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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안의 병마용갱에 있는 진시황의 병사들. 지금까지 갱도 3곳에서 모두 흙으로 빚어 구운 병사 인형 8000여 점과 전차 130대, 말 520점이 발굴됐다. 사진 위키미디어

2200년 전 진시황(秦始皇)이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는 데 병사들의 신발이 한몫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진나라 군사들이 놀랍도록 유연하고 잘 미끄러지지 않는 군화를 신었다는 것이다.

중국 쓰촨대의 진저우(Jin Zhou) 교수 연구진은 8월 24일 “진시황의 병마용(兵馬俑)에 조각된 신발을 근거로 당시 병사들이 신었던 신발을 복원해 오늘날 신발보다 더 유연하면서도 마찰력이 높아 잘 미끄러지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아직 정식 심사를 거치지는 않고, 논문 사전 공개사이트인 리서치 스퀘어(Research Square)에 발표됐다.

1 중국 쓰촨박물관에 있는 궁수상 05438호. 무릎을 굽히고 있어 신발 바닥을 알 수 있었다. 사진 중국 쓰촨대 2 진나라 병사들이 신었던 신발의 복원 공정. 모시 천을 여려 겹 붙여 밑창을 만들고, 바닥에 실을 마름모꼴로 바느질해 원형 자국을 만들었다. 사진 중국 쓰촨대

무릎 굽힌 궁수의 신발 밑창 분석

병마용은 흙을 구워 병사와 말 등의 모양으로 만든 인형이다. 1974년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농민이 우물을 파다가 처음 발견했다. 진시황릉에서 1㎞ 정도 떨어져 있어 진시황이 생전 거느린 군대를 흙 인형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사후 세계까지 군대를 몰고 간 셈이다. 지금까지 갱도 3곳에서 모두 병사 8000여 점과 전차 130대, 말 520점이 발굴됐다.

연구진은 병사 인형 중 궁수상 05438호를 분석했다. 이 병용은 오른쪽 무릎을 꿇고 있어 신발 바닥을 볼 수 있다. 조사 결과 병용의 신발은 발가락 끝이 구부러져 있고, 밑창 두께는 약 1.5㎝인 정사각형으로 확인됐다.

신발 바닥에는 원형 자국들이 나 있었다. 연구진은 바느질 자국이라고 추정했다. 원형 자국은 신발 앞쪽과 뒤꿈치에 촘촘하게 있었다. 신발 중간 부분은 앞뒤보다 얇았다는 의미다. 앞부분과 중간, 뒷부분은 8 대 13 대 6의 비율로 나뉘었다. 앞부분은 가로, 세로 바늘구멍이 각각 22개, 23개로 세 영역 중 가장 많았다. 중간 부분은 11개, 14개로 가장 적었다.

잘 구부러지고 마찰력도 높아

흙 인형의 신발은 인근 지역에서 출토된 진나라 시대 신발과 유사했다. 연구진은 전통 신발 제작 기술로 당시 병사들이 신었던 신을 복원했다. 먼저 모시로 만든 천을 여러 겹 붙여 밑창을 만들었다. 밑창의 위쪽과 아래쪽 3분의 1에 다이아몬드 형태로 바느질해서 흙 인형에서 보이는 신발 바닥의 원형 무늬를 재현했다.

연구진은 복원한 신발과 비슷한 형태의 현대 신발 2점을 비교했다. 먼저 복제 신발은 한쪽을 누르고 반대쪽을 들어 올리는 데 필요한 힘이 4.9뉴턴(N)으로 가장 유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신발들은 각각 7.2N, 8.5N이었다. 연구진은 복원 신발이 보행 중 구부러지기 쉬워 유연성이 더 우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복원 신발은 고무나 플라스틱 밑창을 사용한 오늘날 신발보다 젖은 상태에서 잘 미끄러지지 않았다. 물에 젖은 환경에서 밑창의 마찰력을 측정했더니 역시 복원 신발이 수평 방향과 뒤꿈치에서 모두 정적 마찰 계수가 가장 높았다.

진나라 병사들은 가볍고 유연한 신발로 민첩하게 이동하고 거친 전투 환경에서 잘 미끄러지지 않아 상대를 압도한 셈이다. 연구진은 “복원 신발이 실제 진나라 병사들이 신었던 것과 같다면 전투 능력을 높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병마용갱에서 발굴된 청동검의 전체 모습(왼쪽)과 손잡이 부분(오른쪽). 2200년이 지난 지금도 부식 없이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 사이언티픽 리포트

지금도 날카로운 청동검의 비밀

과학자들은 침묵의 군대가 수천 년 동안 지켜온 비밀을 계속 밝혀냈다. 지난 201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마르코스 마르티논-토레스(Marcos Martinón-Torres) 교수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병마용이 들고 있는 청동검이 2200년 동안 녹슬지 않은 비결을 밝혀냈다. 청동검에 주석이 많이 들어갔고 무덤 토양이 산화에 강한 알칼리성이란 것이다.

사람들은 병마용의 청동 무기를 두고 2200년 전 중국 장인들이 엄청난 도금 기술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40여 년 전 청동검을 과학 장비로 분석했더니 크롬이 검출됐다. 과학자들은 기원전 3세기 중국 장인들이 녹을 먹는 크롬 도금을 했다고 추측했다. 금속 표면에 생긴 산화크롬 층은 녹에 대한 보호막이 된다. 금속에 크롬을 코팅해 부식을 막는 기술은 20세기 초에 개발됐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크롬 도금설을 반박했다. 먼저 크롬은 청동 무기 464개 중 37개 무기에만 있었다. 도금했다면 모든 무기에서 크롬이 나와야 한다. 대신 연구진은 크롬이 옻칠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크롬은 칼의 손잡이처럼 옻칠했다고 예상하는 곳에서 나왔다. 연구진은 “옻칠은 병마용에 색을 칠하기 전에 바탕칠로 사용됐다”며 “칼 손잡이나 창의 봉처럼 지금은 썪어 없어진 나무 부품에 칠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크롬은 녹을 막기 위한 도금이 아니라 나무 부품에 칠한 옻칠의 부산물이란 것이다.

주석과 알칼리성 토양이 부식 막아

연구진은 청동검이 지금도 날카로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크롬 도금이 아니라 주석 성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구리보다 내구성이 훨씬 좋다. 또 입자가 작고 산화에 강한 알칼리성 토양도 청동검의 부식을 막는 데 한몫했다.

연구진은 병마용의 토양과 영국의 토양에 각각 청동을 넣고 섭씨 60도, 습도 80%에서 부식 상태를 비교했다. 실험 결과, 중국 토양보다 영국 토양에서 청동의 부식이 더 심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병마용 무덤 자체가 부식을 막는 비밀 무기였던 셈이다. 논문 공동 저자인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고고학연구소의 리시우천(Li Xiuzhen) 박사는 “자연적 토양 조건에다 주석 함량이 높고 당시의 담금질 기법까지 결합해 청동 무기를 지금까지 보존한 것”이라면서도 “진나라 시대 때 비법이 개발됐을 가능성은 여전히 있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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