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을 살리는 힘, 정치의 인내와 격려

신동우 나노 회장 2023. 9. 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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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성공한 제조 기업인 대부분은 그 성공의 원인을 매출액 대비 파격적인 연구비를 투자한 것이라 언급한다. 국내외 연구소와 대학 그리고 기업에서 오랫동안 기술 개발을 해온 필자는 연구 인력의 성장과 역량에 맞는 적정한 연구비를 장기간 투자해야 양질의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냈다. 연구비의 급격한 증액은 낭비를 초래하고, 급격한 감액은 연구 인력의 역량을 훼손한다.

신동우 나노 회장케임브리지대 이학 박사, 현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이사장, 현 한양대 특훈교수, 현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2019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처음으로 20조원을 넘긴 후 급격히 증액해 2023년 30조원을 넘겼다. 그러나 2024년 국가 R&D 예산은 올해보다 16.6%가 줄어든 25.9조원으로 책정됐다. 1991년 이후 33년 만의 삭감이다. 실제 온전히 R&D에 투입되는 예산의 감소 폭 체감은 30% 이상이다. 그간 국가 R&D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목표를 최단기간 내 최저 연구비로 달성하는 경쟁이었다. 연간 약 7만 건 이상의 국가 연구 과제를 수행해 1% 미만의 연구 실패율을 보고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혁신 기술을 내놓지는 못했다.

제조 기업의 경우 기술 개발은 크게 두 가지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거나 기존 제품을 값싸게 만드는 것이다. 후자를 생산 기술이라고 한다. 국가 R&D 예산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대학교수와 출연연구소 박사는 이 생산 기술에 약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본인들이 그런 생산 현장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부, 석·박사, 박사후과정을 거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논문을 얼마나 유명한 학술지에 싣는가에 매진했다.

우리나라 대표 산업인 건설, 자동차, 조선,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가전 등 경쟁력은 대학교수나 연구소 박사들의 기여보다는 현장 근로자와 현장 엔지니어의 열정과 총명함의 기여가 크다. 다른 한편에서 이공계 박사 학위 소지자는 기업 연구소에서 출연 연구소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대학으로 옮겨가기 위해 논문에 집중했다.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박사 학위자 세계 1위고, 지난 20년간 박사 학위자 증가율도 세계 1위다.

기업이 어떤 궤적을 따라 성장했는지에 따라 R&D의 중요도가 달라진다.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한 기업은 R&D를 기업의 핵심 역량으로 여기지 않는다. 새로 인수한 기업의 고위 임원은 자금 조달에 능한 외부 인사가 주로 차지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발생한 낮은 애사심은 높은 연봉으로 쉽게 덮으려 하지만 외부 자금 조달이 막히면 독이 된다. 반면 R&D를 통해서 기업을 성장시킨 회사는 R&D에 성과를 낸 인력이 고위 임원으로 발탁된다. 이런 예측 가능한 내부 인사는 연봉 잔치를 하지 않고서도 높은 애사심을 유지할 수 있다.

미국국립과학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소기업은 연구비 10만달러당 기술 혁신 건수가 중간 규모 기업의 4배, 대기업의 24배로 나타났다. 기업의 규모가 작을수록 연구비에 비해 연구 성과가 큰 것은 규모가 작을수록 연구원의 열정을 도출하는 데 유리한 이유도 있다. 연구 목표를 먼저 정하고 탁월한 학력의 사람을 뽑아 투입하면 작은 어려움에 부딪혀도 이런저런 이유로 개발이 중단된다. 그러나 리더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연구팀을 구성해 리더에게 재량권을 주고 지도력을 발휘하게 하면 웬만한 어려움은 소리 없이 극복해 간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초우량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과다한 연구비 투자가 필요 조건은 아니다. 최근 인도의 ‘찬드라얀 3호’가 세계에서 첫 번째로 달의 남극에 착륙했다. 찬드라얀 3호 개발에 투입된 총비용은 7500만달러(약 1002억원)로, 이는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의 2021년 한 해 달 탐사 비용 8억5000만달러(약 1조1364억원)의 10% 미만이다. 인도는 1972년 세계 최초로 정부 조직으로 우주청을 설립했다. 그간 연구비의 절대 액수는 미미했지만, 연구비를 점진적으로 증액하면서 50년간 일관된 연구 목표에 꾸준히 투자했다. 연구 인력의 능력이 향상될 때까지 기다려야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과학자는 약하다. 정치의 인내와 격려만이 과학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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