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 Now] 진보도시 샌프란시스코의 정치 물갈이
범죄와 비리 온상 전락하자
시민들 주축 정치개혁 시작
투표로 검사장 등 몰아내고
민생 주장 후보에 힘실어줘
韓 정당보다 정책 주목해야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진보정치의 성지다. 성소수자를 뜻하는 LGBT가 모여 거리 행진을 하는 '프라이드(Pride)' 행사와 LGBT를 뜻하는 무지개 깃발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됐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제1터미널은 정치인 하비 밀크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는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되면서 미국 역사상 최초로 동성애자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당선이 됐다. 샌프란시스코는 민주당의 거물정치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정치적인 뿌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85%의 압도적인 득표를 얻었다. 당연히 시장부터 시작해 시의원까지 모두 민주당이다.
그런 샌프란시스코에서 지금 정치개혁이 벌어지고 있다. 30년 이상 진보가 집권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시의회는 급진적인 정치인들이 장악했다. 인권을 이유로 경찰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주택 건설을 막아 부동산 가격을 올렸다. 교육을 평준화시키고, 기업을 악마화했다. 넘쳐 나는 노숙자와 길거리의 마약중독자는 미국에서 민주당이 집권한 도시마다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샌프란시스코는 그중에서도 최악의 상황이다. 시민들은 그 원인을 이념에 경도돼 비현실적인 정책만을 펼치는 정치인들에게 돌리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진보성향의 비영리단체들에 예산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비영리단체의 대표가 사적으로 예산을 사용했던 것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정치개혁을 주도하는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아시아계 주민들과 테크기업 종사자들이다. 교육과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과 평등과 보존만을 내세우는 진보정치인들이 충돌한 것이다. 기본적인 치안마저 불안한 샌프란시스코에서 관광객과 기업이 떠나면서 시민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지난해 주민투표를 통해 교육위원과 시 검찰총장을 몰아냈다. 내년 시의원 선거에서는 급진 성향의 시의원들을 낙선시킬 계획이다. 상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시민들의 민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후보들을 당선시킨다는 것이다. 미국도 정치적으로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지나치게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인 정치인들이 힘을 얻는 상황에서, 중도적인 성향의 정치인이 선발되는 샌프란시스코의 정치개혁은 희망적으로 보인다.
이런 정치개혁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아이러니하게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선거가 민주당 당원끼리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과 사람을 보고 투표할 수 있게 되면서 온건하고 상식적인 이들이 선출되는 것이다.
지금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지는 일이 한국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양극화되고 민생보다는 이념이, 중도층보다는 팬클럽이 정당을 뒤흔든다. 상식적인 시민들이 주도하는 정치개혁과 함께 정치제도의 변화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이덕주 실리콘밸리 특파원 mrdjlee@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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