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공방만 있고 감동은 없는 우주항공청 설립

이종현 기자 2023. 9. 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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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청 설립을 위한 국회 논의가 추석 연휴 뒤로 미뤄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에 우주항공청까지 휩쓸리는 형국이다. 이대로면 올해 안에 우주항공청을 출범한다는 정부 계획은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뉴스페이스 시대를 선언하고, 한국 최초의 달 탐사선인 다누리와 누리호의 성공으로 전 국민의 우주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하지만 우주 개발의 컨트롤타워가 될 우주항공청 설립이 표류하면서 어렵사리 모은 국민들의 관심과 열망도 점점 흩어지고 있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능력과 준비 부족은 말할 것도 없고, 법안의 키를 쥐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무성의함도 혀를 차게 만든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이달 초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우주항공청 특별법 논의에 착수했다. 세 차례 열린 안조위에서 여야 의원들과 과기정통부 공무원들은 우주항공청의 위상과 조직 등을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 하지만 안조위 의사록을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감동과 동기부여다.

뉴스페이스 시대를 말하고, 우주경제를 내세우지만 여전히 인류에게 우주는 미지의 영역이자 도전의 영역이다. 경제 논리만을 앞세우면 우주에 대한 투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후발주자인 한국은 더욱 그렇다. 수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가며 미국과 중국, 인도와 일본이 이미 다다른 달과 화성에 메이드 인 코리아의 로켓과 탐사선을 보내자고 할 거면 국민들을 설득할 논리가 있어야 한다.

국민들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하면서 우주청이 나은지, 우주전략본부가 나은지, 우주처가 나은지 떠들어 봐야 의미가 없다. 우주청을 대전에 둘 지, 사천에 둘 지를 놓고 대전과 사천이 지역구인 여야 의원이 주고 받는 대화를 보면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온다.

차라리 드라마가 낫다는 생각도 든다. 미국의 정치 드라마인 ‘웨스트 윙’의 다섯 번째 시즌에는 화성 탐사에 회의적이었던 백악관 보좌관 조쉬 라이먼이 미 항공우주국(NASA) 직원의 설득에 마음을 돌리고 예산을 투입하기로 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우주에 관심이 1도 없던 조쉬 라이먼의 마음을 돌린 건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었다. 오래 전에 무일푼으로 죽은 미국의 블루스 가수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이야기였다.

블라인드 윌리 존슨은 일곱 살때 계모가 눈에 뿌린 양잿물에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던 블라인드 윌리 존슨은 불에 탄 집의 폐허에서 젖은 신문지를 덮고 자다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 제대로 된 빛을 보지 못하고 산 블라인드 윌리 존슨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지금 태양계를 떠나 지구에서 가장 먼 우주를 여행하고 있다. NASA가 1977년에 발사한 보이저 1호에 실린 ‘보이저 골든 레코드’에는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노래 ‘Dark Was The Night, Cold Was The Ground’가 담겨 있다.

조쉬 라이먼은 NASA의 화성 탐사에 예산 투입을 결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국가고 우리의 발달한 기술로 스마트 폭탄과 암살 드론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세상 모두가 우리를 싫어하겠죠. 하지만 우리는 발달한 기술로 다른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인류를 고양시킬 수 있는 일 말입니다. 다른 행성에 지구를 대표하는 사람을 보낼 수도 있고, 화성에 세계 최초로 인류를 보낼 수도 있어요.”

우주는 이런 영역이다. 지구에서 모든 걸 잃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고, 80억명에 달하는 지구상의 모두가 같은 염원을 가지게 만드는 공간이기도 하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가고 노예 제도의 야만성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별 세계의 비밀을 캔다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이 질문을 던진 건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낙시만드로스였다. 질문을 받은 건 피타고라스였다. 도대체 우주를 왜 탐구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역사가 길다. 인류는 아직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우주항공청을 만들고 우리의 손으로 만든 로켓과 탐사선으로 달과 화성을 가겠다는 결심은 이 질문에 대한 우리만의 답을 찾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대답이 그저 돈이나 경제일 수만은 없다.

우주항공청을 만들기로 한 결정, 그리고 우주항공청을 설립하는 과정까지. 이 모두가 대답을 찾는 과정이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는 하나의 감동이자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왜 지금의 우주항공청 설립 논의가 국민들의 외면을 받는지, 왜 제대로 된 뉴스 하나 찾아보기 힘든지, 정부와 국회가 너무 늦지 않게 깨닫기를 바란다.

[이종현 과학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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