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성직자’ 개발하는 이란…사회 개혁 요구 부응인가, 더 강력한 탄압 신호탄인가

FT “AI 잠재력, 이란 종교 지도자 휩쓸어”
이란 성지 쿰에 대규모 AI 연구 단지 조성
이슬람 경전 분석·종교 칙령 검토에 적용
라이시 “히잡 착용은 이란의 법” 서방 비난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지난 13일(현지시간)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한 여성과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이 동시에 거리를 걷고 있다. EPA연합뉴스

보수적인 신정 권위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이란 정권이 최첨단 기술 첨병으로 불리는 인공지능(AI)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심지어 최고 종교 권위자의 칙령인 ‘파트와’ 발령에도 AI 기술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히잡 시위로 분출된 사회 개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과 함께 더 강력한 탄압의 신호탄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시간) “AI 잠재력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의 물결이 터번을 두른 이란 종교 지도자들까지 휩쓸었다”며 “그들은 방대한 이슬람 경전을 분석하고 종교 칙령을 내리는 데 AI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연구하고자 한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이란 정부는 수도 테헤란 남쪽에 있는 쿰에 대규모 AI 연구 단지를 조성하고 전폭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이란인들에게 쿰은 이슬람 교리를 깨우치고 일생 중 한 번은 반드시 찾아야 할 성스러운 도시다. 쿰에서 정부 지원을 받아 AI를 연구하고 있는 모하메드 고트비는 FT에 “AI가 고위 성직자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50일이 아닌 5시간 만에 파트와를 발령하는 데 도움이 되는 조력자는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란 정부가 이처럼 AI 개발에 팔을 걷어붙이게 된 계기는 지난해 이란 전역을 강타한 히잡 시위의 영향 때문이다. FT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겪으면서 이란 신정 지도부는 현대화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확인했다”며 “성직자들은 AI 기술이 이슬람 교리를 강화함과 동시에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트비는 “종교 지도자들은 국민에게 무엇이 선한 행위인지, 신 앞에서 어떻게 진실해야 하는지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만 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종교 통치엔 사회학과 심리학, 건강, 연예 등의 다양한 분야가 융합해야 하는데, AI가 그들에게 폭넓은 접근 방식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FT에 따르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지난 6월 “이슬람 공화국(이란)의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면서도 “적어도 AI 측면에선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국가가 되길 바란다”고 힘을 보탰다. 특히 하메네이는 중동 라이벌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비해 AI 기술력이 떨어진다고 언급하며 개발자들을 독려했다.

에브라임 라이시(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란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지난해 9월 반정부 시위 진압 도중 사망한 이란 보안군 가족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이란의 이러한 행보가 대중을 더 강력하게 탄압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란 정부는 히잡 시위 이후 대면 단속이 어려워지자 폐쇄회로(CC)TV와 AI 안면인식을 활용한 단속을 늘리고 있다. 이란 의회는 지난 20일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가혹한 처벌을 가하는 새로운 법안을 채택했는데, AI 기술을 활용한 단속 시스템 구축을 명문화했다. 미 CNN은 “대규모 시위에도 이란 정권이 히잡 착용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란 경고를 국민에게 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도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이슬람에 헌신하는 수십 개 국가가 있지만, 그들은 여성에게 무엇을 입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곳에 사는 수십억의 이슬람교도는 틀렸고, 이란만 옳다고 볼 수 있느냐’고 묻자 “(히잡 시위는) 거리에서 일어난 폭동일 뿐”이라며 “그들(시위대)은 지지를 얻지 못하고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그 무리엔 살인과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있었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또 “지난해 일어났던 일은 적들이 미디어를 통해 벌인 전쟁”이라며 “그 미디어는 유럽의 3개 국가와 미국에 본사를 둔, 하루 24시간 뉴스를 내보내는 네트워크로 테러의 전술과 화염병 제조법을 대놓고 교사했다”고 말했다. 진행자가 ‘이란 여성들은 그들의 권리가 침해됐다고 여긴다’라고 질문하자 “히잡 착용은 이란의 법이고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법이라면 모두 지켜야 한다”고 반박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