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대한민국 정치를 탄핵한다

그야말로 ‘탄핵공화국’이다. 대화와 협치는 실종되고, 사법부의 판단에 의존하는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9월 21일 헌정사상 현직 검사에 대한 첫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정치평론가가 아닌 법조인으로서 사건 기록을 보지도 않고 탄핵 인용 여부에 대해 섣불리 예측하고 싶지 않다. 다만 탄핵이 정쟁의 도구로 남발되면서 사회가 분열돼 갈등하고, 공동체 갈등 해소의 최후 보루로서 기능해야 할 사법부가 정치 대결의 수렁에 빠져드는 현 상황이 우려스럽다.
탄핵은 일반 사법 절차에 따라 소추하거나 징계 절차로써 파면하기 어려운 고위 공무원의 직무 집행 과정에서의 헌법이나 법률 위반에 대해 국회가 소추해 처벌하거나 파면하는 제도다.
영국에서 왕의 측근의 권력 남용이나 위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 의회에 부여한 권한에서 기원하며, 미국 제헌헌법에 영향을 미쳤고 사실상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만 실제 사용되는 제도다.
우리의 탄핵이 ‘국회의 소추와 헌법재판소의 심판’으로 진행되는 것과 달리 미국은 ‘하원의 소추와 상원의 심판’이라는 정치적 절차로 진행된다.
일본 역시 하원인 중의원과 상원인 참의원이 합동해 소추위원회와 탄핵재판소를 구성해 정치적으로 해결한다.
우리 역사상 첫 탄핵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승만 전 대통령이라고 한다. 1925년 3월 23일 지금의 국회에 해당하는 임시정부 의정원의 탄핵 의결로 대통령직에서 면직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으로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처음으로 탄핵 소추됐다가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으로 복귀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7년 헌법재판소의 인용 결정으로 파면됐다.
탄핵은 선거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통령과 그 측근의 권한을 아주 예외적으로 박탈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탄핵은 문재인 전 대통령 정부과 윤석열 현 대통령 정부를 거치면서 걸핏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정치판에서 거론되고 있다.
누가 잘못했느냐를 따져볼 필요도 없이 사태를 이렇게 만든 책임은 여야 모두에 있다. 정치적인 노력을 다하지 않은 채 대통령을 탄핵의 장으로 끌어들인 것은 지금 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도 지금처럼 여소야대의 정국이었다. 무리한 탄핵안 가결에 대한 후폭풍은 2004년 열린 제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등 야당의 참패로 이어졌다.
한 발 물러나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느낌이 든다. 윤석열 대통령 정부의 정책이나 국정 운영이 국민의 기대와 꽤 차이가 있다는 것은 여론조사 결과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시종일관 탄핵을 거론하면서 다수 의석으로 이를 강행하는 야당에 대한 지지율 역시 대동소이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헌법 제66조 제1항은 탄핵 대상자를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과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검사는 헌법이 아니라 검찰청법 제37조에 의해 탄핵 대상자에 포함돼 있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위한 철저한 반성과 자정이 필요하지만 법관과 검사의 탄핵은 양날의 검과 같아 매우 신중해야 한다. 재판과 수사 결과에 불만이 있는 정치세력, 특히 다수 당은 탄핵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악순환은 선거 결과에 따라 여야에 의해 반복될 위험이 크고, 결국 수사와 재판의 공정을 해치게 된다.
막상 검사보다 훨씬 영향력이 막강한 국회의원은 탄핵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국회가 그 구성원을 탄핵하는 것은 자기 탄핵이 돼 모순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지만 법원이 비리 판사를 재판하는 것이나 헌법재판관을 탄핵대상에 포함시켜 놓은 헌법에 비춰볼 때 이론적으로는 국회의원도 탄핵 대상이 될 수 있다. 더욱이 국회는 소추의 권한만 있을 뿐이지, 최종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심판하므로 모순되지도 않는다.
우려스러운 것은 현재처럼 탄핵이 남용되면 이에 대한 대응으로 대통령의 국민투표 부의권도 남용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72조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에 대해 국회의 의결에 의하지 않고 직접 국민의 의사를 물어 결정할 수 있는 국민투표 부의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다. 지금처럼 대화와 협치 대신 분열과 갈등의 정치가 지속된다면 국민은 탄핵과 국민투표 부의권의 대결마저 지켜보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좌도, 우도 아닌 중간에서 살고 싶은 국민의 목소리가 낮아 보여도 번번이 권력의 향배는 중도 성향의 유권자가 정해주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해야 국가가 발전하는지 보다 본인의 당선을 우선하는 정치인들에게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일지 모르겠다.
이래저래 내년 4월 총선은 헌법재판소보다 신속하고 확실하게 국민이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정치인들을 선거로써 직접 탄핵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이찬희 변호사(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dingd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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