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마블]자동차 소부장 글로벌 '히든 챔피언' 목표 '율촌'
기술력, 가격 경쟁력 바탕으로 글로벌시장 부품 강소기업 도약
폴란드 공장 설립 추진…아시아·북미 넘어 유럽시장 진출 박차
'블루칩(blue chip)'은 주식시장에서 수익성·성장성·안정성을 고루 갖춘 대형 우량주를 뜻합니다. '놀라운(marvel)' 성장 잠재력으로 블루칩을 꿈꾸는 다양한 기업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원석기업과 기업 성장을 위한 뒷이야기도 함께 다룹니다. '블루칩을 향해가는 놀라운 기업들의 이야기' [블루마블]
글로벌 완성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시장에서 자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히든 챔피언'을 꿈꾸는 국내 기업이 있다. 자동차 부품, 건설기계 등에 사용하는 인발 강관(파이프) 제조 전문기업 '율촌'의 이야기다.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처음 사용한 단어인 '히든 챔피언'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전문분야에서 특화된 경쟁력으로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작지만 강한 우량 강소기업을 뜻한다.
율촌은 이름이 잘 알려진 기업은 아니지만, 자동차용 부품을 중심으로 14개국에 80개 고객사를 두고 있다. 1, 2차 벤더를 거쳐 토요타, 테슬라, 혼다, 닛산, GM, 포드, 현대차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가 최종 고객사로 매출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거둬들인다. 국내 금속 소재업계 내에서 매출 규모 2위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강소기업으로 세계시장을 무대로 영역을 확장 중이다.
현재는 북미시장 현지 진출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유럽시장 거점 마련에 나서고 있다. 아시아, 북미, 유럽 등 세계 완성차시장 3대 거점에 생산기지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비즈워치 [블루마블]에서는 율촌 이흥해 대표를 만나 K-소부장 기업이 글로벌 히든 챔피언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과 성공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다품종 소량 제품생산…멕시코 진출로 성장 동력 마련
율촌은 자동차 부품, 광산채굴용 장비, 산업기계, 가구 등에 사용하는 인발 강관 제조업체다. '인발'은 강철 파이프를 보다 작은 치수의 금형에 통과시켜 원하는 모양과 크기로 제조하는 기술이다.
1986년 창사 이후 37년간 노하우와 데이터를 축적해 핵심기술인 △정밀이형관 기술 △극소탈탄 열처리 기술 등을 확보했다. 현재 20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대구경부터 초정밀 소구경까지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한 경쟁력을 갖췄다. 중소기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별도 기술연구소를 마련해 기술력 확보에 힘써온 결과다.
이에 더해 개별공정으로 진행하던 후공정 작업을 자동화해 제품 결함은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 작업자 안정성을 높이고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한 인발 전공정 자동화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력을 갖춰 세계시장에 진출하기까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율촌은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비로소 성장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
이흥해 율촌 대표는 "인발강관 분야 내수시장은 단가 경쟁이 심하고 시장규모가 작아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면서 "사업확장을 위해서는 수출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고 당시 일본을 첫 수출국가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일본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다는 이점도 있지만 세계 1위의 완성차업체를 두고 있어 높은 수준의 품질을 요구한다"면서 "우리가 이들의 눈높이를 충족해 일본의 수출 벽을 넘어서면 향후 수출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그 판단은 옳았다. 2003년 시화공단 이전 후 본격적인 수출시장 공략에 나선 율촌은 2004년 일본 자동차 부품업체 세이부(Seivu)에 19만6548달러 어치를 수출했다. 작은 규모지만 해외 진출의 첫 포문을 연 동시에 글로벌 경쟁력 확보의 단초가 됐다.
이흥해 대표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게 기술력을 요구하는 시장이 일본과 독일이어서 이곳만 뚫으면 세계 자동차 시장 어디든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3년 만에 일본 기업이 요구하는 품질 수준을 맞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계 1위 완성차업체인 일본 토요타의 벽을 넘어선 것이다. 토요타는 지금도 율촌 자동차부품 수출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율촌은 이를 계기로 2007년부터 미국 수출길에 나섰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도 고객사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원동력이 됐다.
높은 품질과 가격경쟁력으로 미국 수출기업들이 늘었지만, 운송과 통관 등이 쉽지 않았다. 늘어나는 시장 수요를 안정적으로 감당하기 위해 현지 진출 필요성을 느꼈고 이렇게 탄생한 것이 북미시장을 책임지고 있는 '멕시코법인'이다.
멕시코법인은 당시 국내 인발강관 업체 중에서는 해외에 생산시설을 마련한 최초 사례였다. 2014년 법인 설립 후 2017년부터 생산을 시작했는데 고객이 요구하는 고품질의 제품과 신속한 납기 대응으로 경쟁력을 갖췄다.
원료제품 조달을 위해 철판을 관형으로 만드는 조관 생산 기술도 확보했으며, 현재는 율촌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이흥해 대표는 "현지에서 제품을 공급하면 운송시간과 원가를 절감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더 높일 수 있다"면서 "인건비가 높아 미국에 인접한 멕시코에 자리 잡았는데 멕시코 내 자동차부품사와 완성차 공장들이 늘어나고 있어 성공적인 안착이 진행 중이다"고 평가했다.
현재 멕시코에는 총 43개 완성차업체가 진출해 있으며 세계 100대 자동차부품 업체의 90% 이상이 진출해 있다.
이 대표는 "과거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를 대체하는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가 2018년 체결한 무역협정으로 세금, 관세 등이 면제)를 통해 인접한 국가들에 수출 이점이 있으며 최근 자동차업계에 화두인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현지에서 생산하는 만큼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멕시코, 미국뿐 아니라 브라질 등 북남미 지역 진출에 지리적 이점을 갖추면서 2017년 40억원을 기록했던 율촌 멕시코법인의 매출은 2022년 397억원으로 성장했다. 전체 매출의 52.3% 규모다. 2016년 70%였던 수출 규모도 2022년 81%까지 끌어올렸다.
폴란드 추가 진출…글로벌 자동차 3대 거점 확보
멕시코법인 성공을 경험한 율촌은 다음 단계로 폴란드를 선택했다. 폴란드는 폴크스바겐, 피아트, 볼보 등 완성차업체들이 진출해 있어 연간 60만대 가량의 자동차를 생산한다. 특히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튀르키예 등 인접한 유럽국가들에 자동차를 수출하고 있어 유럽시장 공략에 중요한 교두보로 꼽힌다.
율촌은 지난해 브로츠와프(Wroclaw)에 폴란드법인을 설립했으며, 현재 토지매입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내년 공장 준공을 완료해 2025년 상반기부터 제품 양산과 판매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생산역량은 멕시코법인과 유사한 수준으로 조관 2만4000톤, 인발 1만8000톤을 예상하고 있다.
이흥해 대표는 "폴란드는 완성차업체 밀집 지역으로 유럽시장 수익확대를 위한 전략적인 위치로 독일 등 인접한 유럽시장 진출이 쉽고 포스코 PWPC도 인접해 원자재 수급도 용이하다"면서 "폴란드에 유럽시장 생산시설을 마련하면 완성차시장 3대 생산거점인 아시아(한국), 미주(멕시코), 유럽(폴란드)에 생산시설을 모두 확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율촌은 지난달 유안타제8호스팩과 합병하며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이 과정에서 조달한 자금(148억원)도 폴란드 생산공장 건설에 투입할 예정이다. 총 건설 금액은 243억원 규모로 나머지 자금은 자체자금과 차입금을 활용할 예정이다.
이흥해 대표는 "생산을 시작한다 해도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면 3~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해 2025년 매출액은 783억원 정도로 예상한다"면서 "다만 멕시코법인을 빠르게 수익전환, 안정화하며 운용역량을 쌓아온 만큼 폴란드법인도 빠른 기간 내 수익 안정화와 추가 고객사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기존 유럽시장 고객들은 한국에서 제품을 수급했던 만큼 물류비와 수급 시간이 오래 걸렸고 수급문제 해결을 위해 부품 창고비용 등을 별도로 들여야 했다"면서 "앞으로는 필요한 물량을 바로 수급할 수 있게 돼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고객사들이) 거래 규모를 확대할 것을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향후 폴란드법인 매출을 전체 매출의 3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한국을 거점으로한 아시아 시장을 30~40%, 미주시장 30%, 유럽시장 30%로 세계 완성차시장 3대 거점의 매출을 고르게 가져간다는 방침이다.
전기차 부품, 심리스 튜브 신사업 추가해 수익성 강화
율촌은 확고히 자리한 자동차부품(지난해 말 기준 전체 매출의 87.5%) 시장 외 신사업도 추진중이다. 산업 및 건설장비의 유압장치, 자동화설비, 농기계부품용 인발파이프 전방사업을 확대하고, 심리스(Seamless) 튜브와 전기차용 부스바 개발로 사업을 다변화해 수익성 강화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기존 생산 제품은 대부분 전기차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면서 "전기차용 부스바는 전기차 생산증가, 자동차 전동화와 동반 성장할 수 있어 신사업 가치가 크다고 보고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율촌은 이 분야의 후발주자이지만 기존 전기차용 부스바 생산업체 대부분이 생산공정을 자동화하지 않은 상태여서 공정 자동화로 불량률을 낮추고 생산비를 감축해 경쟁력과 성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전략이다.
심리스 튜브는 용접선 없이 막힌 봉 형태를 뚫어 파이프를 만드는 방법으로 기존 용접강관에 비해 고온 고압에 더 강하다. 율촌은 심리스 튜브 국산화 국책과제를 지난 3년간 진행해 왔으며 2026년 국산화를 통해 자체생산에 나서면 기존 중국산 수입을 대체하는 동시에 전방사업 확대도 용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흥해 대표는 "심리스튜브는 자동차 부품을 비롯해 중장비, 산업기계, 조선, 항공기, 원자력 부품 등 다양한 곳에 쓰여 자체 생산체계를 마련하면 제품군을 보다 다양화 하고 해외법인을 통해 추가적인 수익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적극적인 주주가치 제공과 주주환원에 대한 고민도 내비쳤다. 이흥해 대표는 "해외 거점 생산시설 마련을 완료하고 신규사업 두 가지가 추가되면 향후 성장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본다"면서 "히든 챔피언 목표에 한발 다가서는 한편, 꾸준한 성장과 증명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고 이를 환원활 수 있는 방법들도 적극 고민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인터뷰 관련 내용은 공시 내용과 회사가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했으며, 인터뷰의 모든 내용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투자 권유 또는 주식가치 상승이나 하락을 보장하는 의미를 담지 않습니다.
김미리내 (panni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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