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윤석열 대통령[전성인의 난세직필](18)
지난 9월 2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사실 표결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대표가 단식 중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내는 순간, 그의 정치생명은 (적어도 상당기간 동안) 끝났다. 검찰이 한두 번의 우여곡절에 가던 길을 멈출 리 없고, 정치생명이 다한 ‘부결 호소인’을 당대표로 두고 총선을 치르려는 국회의원도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섰던 이 대표는 스스로 자멸의 길로 들어섰다.
그럼 윤석열 대통령은? 그의 정치적 맞수인 윤 대통령은 승리했는가? 전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대표 다음 차례로 벼랑 끝에 선 사람은 윤 대통령 본인이다. 물리적 권력에 대한 대통령의 장악이 강화되고, 권력의 짜릿한 손맛이 승리에 대한 환각을 주입할수록 대통령과 국민 간의 거리는 더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최근의 상황은 ‘통제되지 않는 권력의 방자함’을 절감하게 한다. 조자룡 헌 칼 쓰듯 이곳저곳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감사원의 무모함은 너무 일차원적이어서 소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국민권익위원회, 금융감독원을 향했던 감사원 감사 결과는 사실상 빈손이었다. 최근에는 통계조작을 이유로 전 정부 인사 상당수를 굴비 엮듯 엮었지만, 과연 그 실상이 ‘국기문란’에 해당할 정도라고 느끼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맘에 안 드는 일부 언론에 대한 장악 시도는 무모함을 넘어 불법성과 위헌성의 소지마저 느껴진다.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한 해임과 후임 임명은 모두 법원에서 일단 제동이 걸렸다. 김만배씨와의 인터뷰를 요약해 보도한 뉴스타파의 보도가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끼칠 부적절한 목적이 있었는지는 향후 더 따져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이를 인용 보도한 언론에까지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지나친 것이다. 언론의 자유가 헌법적 권리라는 점에서 이런 시도는 위헌적이기까지 하다.
권력을 이렇게 써서는 안 된다. 그 점은 아마도 윤 대통령과 그 측근 검사 출신 정치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본인들이 한때 자의적인 권력 행사 때문에 고초를 겪지 않았는가?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판사 사찰’이라는 어마어마한 이유로 2개월의 직무집행 정지를 겪었다. 물론 법원이 여기에 제동을 걸어서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시절 ‘검언 유착’ 프레임에 걸려 부산, 진천 등지를 떠돌아야 했다. 한동훈 장관 역시 최종적으로 법원에 의해 피의자 신분을 벗어났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면서 그때까지 심정적으로 문 대통령을 지지해왔던 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나도 분노했다. 검찰개혁이 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그것이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정당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영미법에는 정의와 형평 그리고 양심의 관점에서 판결을 내리는 법정이 있다. 형평법을 집행하는 형평법정이다. 그 법정에는 ‘깨끗한 손의 원칙(clean hands doctrine)’이라는 것이 있다. 형평법정에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사람은 그 자신이 불법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란 그래야 한다. 정의를 집행하는 구체적 수단인 권력도 그래야 한다.
물론 세상이 이처럼 고고한 이상처럼 굴러갈 수는 없다. 그렇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은 하다못해 ‘정의로운 척’이라도 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한동훈 장관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왜냐하면 본인이 자신의 입으로 그런 말을 했으니까.
2020년 7월 21일, 다수의 언론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차장 검사 사이에 있었던 대화의 녹취록 전문을 보도했다. 이 녹취록은 그해 2월 1일 이 기자가 동료 후배 기자와 함께 한 차장을 방문해 나누었던 대화를 수록한 것이다. 이 녹취록의 중간쯤에 다음과 같은 한 차장의 말이 나온다. “(중략) 사회가 모든 게 다 완벽하고 공정할 순 없어. 그런 사회는 없다고.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면 국민이 볼 때 공정한 척이라도 하고, 공정해 보이게라도 해야 해.”
녹취록의 전후 문맥에 의하면 이 말은 아마도 ‘범죄 혐의가 있는 권력자에 대한 수사를 억지로 뭉개려고 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정성의 훼손은 있는 범죄를 뭉개는 데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없는 범죄를 만들어내거나 작은 혐의를 큰 범죄로 뻥튀기하는 데서도 얼마든지 발생한다.
윤 대통령은 지금 공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정한 척도 못 하는’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해병대 고 채모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대통령실의 수사 외압 논란은 정확하게 과거 한 차장이 지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위 인용문 바로 뒤에 나오는 녹취록을 보자. “그 뜻이 뭐냐? 일단 걸리면 가야 한다는 말이야. 그리고 그게 여러 가지 야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걸렸을 때, ‘아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성내는 식으로 나오면 안 되거든. 그렇게 되면 이게 정글의 법칙으로 가요.”
문재인 대통령이 내치와 외교에서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향후 역사가 평가할 문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왜 지난 대선에서 패배했는지는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부정과 불의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대장동 의혹과 같은 부정부패, 그리고 민주적일 것으로 기대했던 정권이 공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데서 오는 실망감과 경악.
이제 나는 문재인 대통령 말기의 모습을 벌써부터 윤석열 대통령에게서 본다. 물론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와 함께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을 보면서 내년 총선과 다가오는 대선에서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거라는 국민적 심판을 마주한 정치인들은 권력에 심취한 대통령보다 훨씬 더 국민 여론에 민감하고,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마도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보다 훨씬 더 빨리 정신을 차릴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은 지금 멈춰야 한다. 국민 편가르기에서 오는 작은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국민 모두를 끌어안는 커다란 결단을 내려야 한다. 협소하고 철 지난 인재풀에 안주하지 말고 폭넓게 인재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의 행사는 정의롭고 공정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끝은 매우 참담할 것이다. 추석 연휴가 국정운영의 분기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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