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를 가다] 용암지대 땅바닥에서 고드름 솟는 얼음동굴
미바튼Myvaton 주변에는 여러 개의 칼데라Caldera가 있다. 화산폭발이 있었던 산꼭대기에 있는 원형 홀Hole이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성산일출봉도 같은 칼데라다.
잔잔한 호수에 비친 반달 형태의 산 그림자가 이채롭다. 평화롭게 유영하는 미바튼호수의 백조들을 감상하며 거닐 때, 반쯤 잘려나간 산과 마주쳤다. 마치 칼로 베어낸 듯 뚝 잘려나갔다. 그 반조각의 단면은 검은 화산재에 덮여 시커멓다. 가까이 다가가니 경사진 면에는 용암 무더기가 있었다. 조각난 산을 돌아서 능선에 오르니 푹 꺼진 둥근 형태의 칼데라가 있었다. 중심에도 둥근 원형의 형상이 있었고, 그 둘레를 더 큰 원형이 감싸고 있었다.
미바튼호수 주변 수십 개 칼데라
이런 종류의 칼데라는 미바튼호수 주변에 수십 개가 흩어져 있어 이 지역이 지각변동이 매우 심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칼데라에서 바라본 뚝 잘려나간 산 반조각과 경사면에 버티고 있는 용암이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잔잔한 미바튼호수와 그 뒤로 형성돼 있는 미바튼호수 마을이 격렬한 지각변동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평화로워 보인다.
아이슬란드 북쪽, 미바튼 지역은 빙하지대가 아니라 화산지대다. 그래서 얼음동굴에 들어간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바튼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10여 명의 탐방객을 태운 차량은 물을 건너고 넓은 들판을 지나 달린다. 아무리 보아도 빙하나 눈은 보이지 않는데 얼음동굴이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주변엔 용암지대와 분화구가 이곳저곳 형성되어 있어서 차량 접근이 쉽지 않다. 차량은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속도를 낮춰 전진한다. 왼쪽은 용암지대, 오른쪽은 분화구의 산능선이다. 특히 산능선은 모래, 자갈로 이루어져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차에서 내려야 했다. 지금부터는 용암지대를 걸어서 가야 한다. 15~2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가이드는 얼음동굴 속에서 신을 장화를 들고 용암지대로 들어가 걷기 시작한다. 오래전에 형성된 용암지대. 쪼개진 '용암엉덩이 바위'가 피로를 씻어준다. 넓은 용암지대의 용암과 용암 사이에 피어난 노란 들꽃이 이 황량한 땅에도 생명체가 쉼쉬고 있음을 알게 한다.
용암지대를 벗어났을 때, 평지에 깊은 홀이 나타났고 다가가서 보니 굴 속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얼음동굴로 가는 입구였다. 미바튼 지역이 북쪽에 있어서, 겨울엔 몹시 춥기 때문에 동굴 안에 있던 물이 모두 얼어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 준비해 간 헬멧과 랜턴, 고무장화를 신고 보니 꼭 광산에 들어가는 광부 같았다.
동굴 입구에는 물이 있어서 장화 없이는 통과할 수 없었다. 랜턴을 켜고 굴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는 일반 동굴과 다르지 않았다. 얼마쯤 들어가니 서서 전진하기엔 너무 좁은 조그마한 구멍이 있었다. 엎드려야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 앞서간 사람에게 카메라를 건네준 후, 낮은 포복으로 간신히 구멍을 통과했다.
좁은 구멍을 통과하자 큰 동굴이 기다리고 있는데, 한쪽은 얼음벽, 반대쪽은 용암 동굴이었다. 얼음이 덜 덮인 얼음벽에서 탐방객들이 얼음을 떼어내며 신기한 듯 바라본다. 아이슬란드의 북쪽에선 얼음을 구경하기가 꽤 어렵기 때문이다. 동굴바닥도 얼음이어서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랜턴 끈 후 들린 태고의 소리
고무장화의 바닥에 징이 붙어 있어서, 얼음판 위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았다. 벽면이 얼어붙은 동굴을 지나자, 바닥에서 불쑥 솟은 커다란 고드름이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고드름은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며 형성되는데, 이곳 고드름은 모두 밑에서 위로 자라나는 고드름이었다. 고드름 밭이 나온다. 큰 고드름과 작은 고드름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종종 고드름이 위에서 밑으로 자라나는 것도 있었다. 얼음바닥과 천장바위 사이의 간격이 좁아 고드름이 서로 닿아 연결되어 있거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특수한 경우의 고드름 같았다. 가이드는 손으로 만지지 말란다. 무너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동굴 안으로 계속 전진하자, 꽤 넓은 홀이 나타났다. 이곳 동굴 안에는 몇 개의 다른 홀이 있다고 한다. 이 홀에는 물이 흘러내리면서 얼어붙은 얼음폭포와 벽면에 공자 모습의 얼음이 있었고, 두 눈이 해골 모양인 얼음덩어리도 있었다.
갑자기 가이드가 랜턴을 끄라고 한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을 깨는 것이 있었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물소리였다. 그 소리가 마치, 천년의 새벽을 깨는 소리 같았다. 문득 어느 곳에서 밝은 불빛이 들어온다. 가이드가 붉은 불빛을 얼음 고드름 속에 넣었던 것이다. 어두웠던 주변이 빨간 불빛의 고드름으로 밝아지고 있었다.
마침 고드름 밭에 부러진 고드름이 있었다. 가이드는 그 부러진 고드름을 붙이려 한다. 반 토막 고드름은 과연 붙을 수 있을까…. 다행히 부러진 고드름을 위에 얹히니 붙었다. 때는 8월, 고드름이 녹아 흐르는데 흐르는 물이 아교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동굴 속에는 천장에 붙은 얼음, 벽면에 붙은 얼음, 바닥에 솟아오른 고드름이 앙상블을 이루며 얼음동굴 속의 세계를 수놓고 있었다. 동굴 속 기념촬영 후, 이젠 바깥으로 나오는 길. 경사진 얼음 위엔 10m 길이의 로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로프를 잡고 한 명씩 천천히 올라야 한다. 이제 얼음동굴 탐방을 마치고 바깥세상으로 나온다. 뻥 뚫린 하늘을 보면서 밝은 세상의 값어치를 알았다. 온난화가 더욱 심해지면 이곳 얼음동굴의 얼음도 모두 녹아 없어지리라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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