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쿠팡, 전치 2주 직원에 “언론 누설 금지” 각서 내밀었다
사고 한달 뒤에야 산업재해조사표 제출
‘유통 1위 기업’ 쿠팡이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다친 일용직 노동자(헬퍼)에게 산재신청 대신 공상처리를 유도하고, “회사의 귀책사유가 없으며, (사고 사실을) 언론이나 에스엔에스(SNS) 등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확인서에 날인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 내 안전불감증으로 발생한 사고임에도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24일 제보자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가 운영하는 물류센터인 일산2캠프에서 물건을 분류하는 야간 헬퍼로 일했던 김아무개(32)씨는 지난 8월 중순 분류한 물건을 쌓아 운반하는 대형 롤테이너 발판이 떨어져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재빠르게 피해 다리에 상처를 입는 것에 그쳤으나, 자칫 대형 사고를 부를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는 게 김씨 설명이다.
사고의 원인은 롤테이너 발판의 잠금장치가 고장나 풀린 탓이었다. 김씨는 “롤테이너는 안전을 위해 발판 잠금장치를 항상 잠그는 게 원칙인데, 관리자나 직전 사용자가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라며 “이 점에 대해서는 조장과 그 윗선 관리자에게 전달했으며 이들도 안전관리가 미흡했음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후 벌어졌다. 제대로 된 상비약도 없어 혼자 상처 소독을 대강 한 김씨는 별다른 후속 조처에 대한 안내를 받지 못했다. 다친 당일 나머지 업무 시간을 채우고서야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조퇴, 병원진료, 산재신청 등에 대한 관리자의 언급이 없었던 탓이다. 김씨는 전치 2주의 진단을 받았다.
이후 캠프 관리자는 치료비에 관해 묻는 김씨에게 “산업재해 신청을 할 순 있지만 사고 후에도 계속 일을 해서 인정이 안 될 수도 있다. 회사에서 치료비를 보상하는 방법(공상처리)도 있으니 선택을 하라”고 말했다는 게 김씨 주장이다. 결국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말에 김씨는 회사로부터 치료비를 받기로 했다.
그러나 이후 회사 쪽은 ‘흉터 치료는 치료비를 지급할 수 없다’고 통보했고, 병원·약국 영수증과 진단서를 제출했음에도 치료비 실비 지급은 지연됐다. 김씨가 항의하자 쿠팡 물류센터 안전관리담당은 ‘확인서’에 날인을 해야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회사 쪽이 내민 확인서에는 ‘본 사건에 대하여 회사의 귀책사유가 있다고 간주되거나 해석되지 않는다’ ‘날인 이후 관련 내용을 언론이나 에스엔에스 등 외부에 누설하거나 공개하지 않는다’ ‘확인서 내용을 위반하면 (받은) 돈을 회사에 반환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김씨는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외부에 알려질까 쉬쉬하기만 하는 쿠팡 태도에 화가 났다. 관리자가 ‘확인서는 통상적으로 받는 양식’이라고 말한 점으로 미뤄 보면,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다치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일을 겪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쿠팡 쪽은 사고 발생 한 달 만인 지난 15일 지방노동청에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3일 이상 요양이 필요한 재해가 사업장에서 발생할 경우, 한 달 이내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권동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노무사는 “전치 2주 진단이면 산재신청은 물론 휴업급여를 받을 수도 있는데, 쿠팡은 노동자에게 이런 권리를 박탈한 것으로 보인다”며 “쿠팡이 요구한 확인서는 산재를 은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노동자를 겁박하는 행위로, 근래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황당한 사례다”라고 짚었다.
이에 대해 쿠팡 쪽은 “회사는 관련 법률에 따라 경미한 부상에 대해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공상 처리를 유도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산재 신청 절차를 상시적으로 안내하고 있으며, 회사가 근로자의 산재 신청을 막을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합리한 내용의 확인서를 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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