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구조대 없던 모로코 지진 현장
지난 11일 대지진으로 쑥대밭이 된 모로코의 한 산골에 갔다. 산사태로 망가진 산길을 한 시간 넘게 달려가 보니 가옥의 절반은 무너지고, 주민 3분의 1이 죽거나 다친 상태였다. 현장 자체도 참혹했지만, 지진 후 3일간 벌어진 상황이 더 기가 막혔다. 주민들은 “외부 도움이 없어 이웃과 가족들이 직접 시신을 발굴해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부상자들은 앰뷸런스가 아닌 트럭과 버스에 실려 산 아래 도시로 옮겨졌다. 식수와 음식, 텐트 같은 구호 물품도 인근 마을의 도움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어디서도 정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마라케시에서 만난 외신 기자들은 “다른 피해 지역의 상황도 비슷하다”고 했다. 사상자의 약 90%가 이들 산골에서 발생했지만, 모로코 정부의 초기 구조 및 구호 노력은 미온적이었다. 첫 며칠간은 상당수 피해 현장이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였다. 정부가 본격적인 구조에 뛰어든 것은 해외 언론이 “정부 구조대는 어디 있느냐”는 비판을 잇달아 쏟아낸 이후였다. 모로코 정부는 이런 와중에도 이해 못 할 행보를 이어갔다. 구조대와 구호 물자를 급파하겠다는 해외 각국의 요청을 거절하는가 하면, 사망자가 3000명에 육박한 14일 이후엔 피해 규모 집계와 발표를 돌연 중단하기도 했다.
모로코는 ‘무늬만 국가’인 나라가 아니다. 경제력으로 따지면 국내총생산(GDP) 기준 전 세계 58위로 상위 30%에 든다. 아프리카에선 나이지리아, 이집트, 남아프리카공화국, 알제리에 이어 다섯째다. 마라케시 같은 도회지엔 전기와 수도, 인터넷, 병원 등 현대적 기반 시설이 거의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공무원과 경찰은 아랍어와 프랑스어, 영어까지 구사했다. 차선과 신호등이 부족해 무질서한 도로만 빼면 여느 중진국 못지않았다. 이런 나라가 왜 지진 발생 초기에 두 손을 놓고 있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외신 기자들은 “결국 정치의 문제”라며 개탄했다. 모로코는 의회와 총리가 있지만 실제로는 무함마드 6세 국왕이 통치하는 나라다. 국왕은 군대와 종교를 장악하고 있으며, 의회를 해산하고 직접 총리를 맡을 수 있다. 특정 정당이 의회 의석의 20% 이상을 갖는 것도 금지된다. 이렇게 막강한 권력의 국왕을 측근들이 둘러싸 ‘인의 장막’을 치고,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모로코 출신인 한 프랑스 매체 기자는 “이 나라 정부의 목표는 군주제 유지”라며 “재난 대비가 제대로 이뤄졌겠느냐”고 했다. 비단 모로코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21세기에도 이런 나라가 수두룩하다는게 전쟁과 재난의 시대를 다시 맞이한 이 세계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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