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구환 교수의 정치 프리즘] 합리적 무지

원구환 2023. 9. 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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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무지란 투표 통해 이득이
없다면 굳이 비용·시간 소비 않으려
하는 행동, 젊은세대에서 많아
시장에서는 원하지 않는 상품
선택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다른 사람 선택 중요치 않아
정치시장에서는 원치 않는 선택이
집단의 결과로서 자신을 규율
개인 선택 모여 집단의 선택 되고,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쳐
참여해도 이득 되지 않는다는
합리적 무지 때문 투표율 하락
정치시장에서 개인-집단의 선택
일치시키기 위해 투표율 높여야
원구환 한남대 행정학과 교수

우리는 시장이라는 곳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판다. 시장은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서로 원하는 것을 교환하는 곳이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자급하는 삶이라면 교환 자체도 필요 없지만 말이다. 교환할 때 중요한 것이 선택과 가격이다. 가격이 비싸면 소비자는 선택을 줄이고, 공급자는 늘리는 경향이 있다. 물론 명품처럼 비쌀수록 잘 팔리는 것도 있다. 싸든 비싸든 개인의 선택이 중요하고, 가격을 통해 교환하게 된다.

정부와 국민 간에도 선택과 교환이 이루어진다. 국민을 대신에 나라 살림살이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모든 국민이 국정 운영에 참여할 수 없기에 대리인을 선택한다. 국민을 위해 헌신할 사람을 선택하는 방법은 투표다. 투표는 시장에서의 가격과 같은 역할을 한다. 투표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이 집약되고 선택받은 정부가 시민을 위해 국정을 운영한다. 투표는 정치시장을 대변하는 중요한 사회제도다.

정치시장은 상품시장과 다른 점이 있다. 시장에서는 개인의 선택이 중요하지만, 정치시장에서는 집단의 선택이 중요하다. 시장에서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품을 선택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다른 사람의 선택이 중요치 않다. 그러나 정치시장에서는 자신이 원치 않는 선택이 집단의 결과로서 자신을 규율하게 된다. 개인의 선택이 모여 집단의 선택이 되고, 개인의 삶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개인의 선택을 전체의 뜻으로 집약할 수 있는 사회적 약속이 필요하다.

정치시장에서는 과반을 전체의 뜻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사회 약속이다. 만약에 만장일치로 결정한다면 어떤 것도 결정되지 않게 된다.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어떤 결정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약속으로 과반수 이상이라는 원칙을 정하지만, 그로 인해 불만이 생길 수 있다. 자신의 뜻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지킬 것을 약속한 바이지만, 개인적 불만까지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불만이 생기면 교환행위로서의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투표를 통해 자신에게 이득이 없다면 굳이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으려 한다. 이를 합리적 무지라 한다. 시장에서는 교환을 통해 자신에 이득이 되지만, 정치시장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국민들은 정기적으로 투표를 한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지방의회 의원 선거, 교육감 선거 등은 대표적이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을 제외하면 4년마다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를 한다. 내년 4월 10일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2026년에는 민선9기 지방선거, 2027년에는 21대 대통령 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투표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집단의 뜻이 되므로 참여가 중요하다. 불참도 하나의 권리이지만, 하나의 참여가 모여야 전체의 의사가 결정된다.

선거관리위원회 통계시스템에 의하면 20대 대통령 선거는 2022년 3월 9일에 있었다. 전국 투표율은 77.1%, 강원특별자치도는 76.1%였다. 21대 국회의원 선거(2020~2024년) 전국 투표율은 66.2%, 강원특별자치도는 66%였다. 민선 8기 지방선거는 2022년 6월 1일에 있었는데, 전국 투표율은 50.9%, 강원특별자치도 투표율은 57.8%였다. 투표율로만 보면 시민들의 관심도가 지방선거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사회적 약속인 투표제도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과반이 투표해야 유효하다는 규정이 없다. 예로 전체 100명의 유권자 중에서 30명이 참여하여 16명이 찬성한다면 그 결과가 전체의 뜻이 된다. 나머지 84명의 선택은 사라지게 된다. 둘째, 무투표 당선이라는 제도가 있다. 선거구에 후보자 1명만 출마한 경우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후보자가 1명일 경우에는 투표를 거치지 않고 선거일에 당선이 확정된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않고 당선된다. 민선8기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519명으로 역대 지방선거에서 가장 많았다. 강원특별자치도에서도 기초의원 2명이 무투표 당선되었다. 셋째, 1개 선거구에서 1명만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이다. 예로 100명의 유권자 중에서 60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A, B, C 세 사람이 각각 20표씩 얻었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투표하지 않고 결정된다. 주민등록상 연령이 높은 사람이 당선된다. 그렇더라도 20표를 얻은 사람이 전체를 대변하게 된다. 대표성은 없고, 자신의 선택과 동떨어진 결과가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정치시장에서 개인과 집단의 선택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표율을 높여야 한다. 현재 도입된 대표적 제도가 수요일 선거다. 투표일을 공휴일로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다. 금요일로 하면 목요일 저녁부터 연휴가 되고, 목요일에 하면 금요일에 연차를 쓴다. 수요일이 그나마 투표율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지만, 공휴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한계다. 또한 투표율 제고를 위해 사전투표제도를 도입하였다. 선거 당일 투표가 어려운 사람들이 별도의 부재자 신고 없이 선거일 전 5일부터 2일간 전국 어느 사전투표소에서나 투표할 수 있다.

수요일 선거와 사전투표제만으로는 투표율 제고에 한계가 있다. 투표용지의 복권화 방안, 상품권 지급 방안은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있고, 온라인 전자투표는 시스템 구축 비용과 조작의 위험이 상존한다. 시간을 늘리고, 투표 방식을 바꿔도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투표율이 하락하는 것은 내가 참여해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합리적 무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가 좋은 사람을 선택해서 나 또한 이득이 된다면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다. 이득이 되는 투표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외국처럼 벌금을 부과하거나 여권 발급 등을 제한하는 의무투표제는 손해를 주는 방법이다. 이득이 되는 방안으로 공공시설 이용료 할인 또는 면제 등이 거론되지만, 참여해서 얻는 이익이 그리 크지 않다. 특히 합리적 무지는 젊은 세대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개인의 소중한 선택이 미래 기대이익을 창출할 수 있고, 미참여로 인한 불합리한 결과가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초래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이 사회적 이득이 되는 최상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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