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시장에 현대차그룹 ‘진입 깜빡이’…“신뢰 간다” “생계 침해”
완성차 업체 ‘인증 간판’ 달고
주행 5년, 10만㎞ 미만 자사 차량
용인·양산 등서 내달부터 판매
향후 ‘중고차 포털’ 오픈 계획도
불신 컸던 소비자들 큰 기대감
업체들은 “어떻게 경쟁 되겠나”
지난 22일 경기 용인 기흥의 중고차 매매단지 ‘오토허브’에는 지하 4층부터 지하 1층까지 다양한 브랜드의 중고차들이 주차돼 있었다. 구역별로 중고차 매매상사 간판이 붙어 있는데 이마저 없으면 영락없는 대형매장 주차장처럼 보였다. 중소규모 업체들이 개인고객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이곳에 최근 현대차·기아도 중고차 매장 오픈을 준비 중이어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날 지하 3층에는 ‘현대 인증’ ‘기아 인증’ 간판 아래 현대차 캐스퍼·코나, 기아 스포티지·니로 등이 주차돼 있었다. 다음달 개점 예정으로, 아직은 빈 공간이 더 많았지만 이미 현대차·기아 차량이 족히 수백대는 돼 보였다. 대부분 출시된 지 1~2년 정도 된 모델로, 세차가 돼 있었고 흠집마다 노란 화살표가 붙어 있었다. 판매 준비가 끝난 중고차들이다.
현대차·기아 대리점에서 넘어온 자동차도 이곳에서 판매된다. 한쪽에는 흙먼지가 잔뜩 묻은 현대차 캐스퍼가 수십대 주차돼 있었는데 차량에는 ‘현대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현대차·기아에서 시승용으로 사용한 차량이다.
국내에 유통되는 중고차는 개인 소유자가 처분하기 위해 내놓거나, 렌털·캐피털 회사 등 법인이 오래된 리스용 차량 등을 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개인이 자동차 대리점에서 새 차를 구매하면서 자신이 타던 차량을 내놓으면, 대리점은 이를 오토허브 같은 곳에 입주한 매매상사에 팔거나 K카·KB차차차·헤이딜러 같은 온라인 중개플랫폼을 통해 판매한다. 매매상사 등은 수리 등 상품화 과정을 거쳐 시장에 내놓는다.
현대차·기아는 기존 중고차 시장에서 매매상사와 온라인 중개플랫폼 업체가 하던 역할을 맡겠다는 계획이다. 내달부터 경기 용인·경남 양산 등에서 주행이력 5년, 10만㎞ 미만의 자사 차량에 한해 200여개 항목의 품질검사를 통과한 차량만 선별해 ‘인증 중고차’로 판매할 예정이다.
매입은 기존 신차 대리점을 통해 대차 물량 위주로 진행하고, 대형 상품화센터를 통해 상품성을 높여 당분간 온라인을 통해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중고차 관련 정보를 수집·분석한 후 종합해서 보여주는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가칭 중고차연구소)’도 열 예정이다. 중고차 시장에 국내 최대 완성차 브랜드가 ‘메기’로 등장한 것이어서 업계와 소비자에게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일단 소비자들이 거는 기대는 크다. 이유진씨(30·가명)는 “자동차 제조업체가 직접 중고차를 수리·인증하고 판매까지 한다고 하니 믿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2021년 중고차 중개 플랫폼을 통해 중고로 구입한 자동차를 1년간 몰다가 지난해 9월 처분했다. 경기 부천·의정부, 인천 등을 돌며 발품 팔아 구입한 차량이었다. 하지만 구입하자마자 배터리 고장으로 시동이 걸리지 않아 배터리 교체 비용만 십수만원을 썼다.
이씨는 “당시 매매상사 직원이 나와 안전벨트를 당겨보고 변속기 오일 등을 체크하면서 ‘아무 문제없다’고 말했지만 결국 거짓이었다”며 “중고차는 구입해야 하는데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직원이 권하는 대로 차량을 사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이 2020년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소비자들은 중고차 시장을 불신하는 이유에 대해 ‘차량 상태를 믿을 수 없다(49.5%)’는 답이 최다였다. 허위 미끼 매물(25.3%), 낮은 가성비(11.1%), 판매자 불신(7.2%), 판매 후 피해보상 및 AS 불안(6.9%) 등을 이유로 든 이들도 많았다.
다만 차량 제조업체가 중고차 시장까지 뛰어든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중고차 매매업은 ‘생계형 업종’으로 지정돼 그동안 대기업들이 진출할 수 없었지만, 2019년 지정이 해제됐다. 이에 현대차·기아는 물론, KG모빌리티 등도 중고차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이날 오토허브에서 현대차 팰리세이드를 점검하던 한 매매상사 관계자는 “그동안 소비자 신뢰를 얻기 위해 여러 방책을 강구했지만, 불신의 눈은 여전하다”며 “현대차·기아가 이곳에 오면 어떻게 경쟁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의 팰리세이드에는 ‘무사고 확인’ ‘3개월/5000㎞ 보증’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중고차 플랫폼 업체들이 해당 차량을 진단한 뒤 상품성에 문제가 없음을 인증했다는 뜻이다. 그는 “앞으로는 현대차·기아가 판매하지 않는 5년 이상 저가형 중고차에서 승부를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에 현대차·기아도 상생협력 및 중고차시장 발전 방안을 내놨다. 현대차는 시장 점유율을 2024년 4월까지 2.9% 이내로 유지하고, 2025년 4월까지 4.1%를 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기아는 2024년 4월까지 2.1%, 2025년 4월까지 2.9% 수준을 유지키로 했다. 또 인증중고차 대상 이외의 물량은 기존 매매업계에 전량 공급하고, 중고차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교육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그럼에도 오토허브 내 다른 매매상사들이 현대차·기아를 보는 눈은 곱지 않았다.
게다가 현대차·기아는 계열사인 현대캐피탈을 통해 중고차를 구입하는 개인에게 할부금융도 제공할 계획이다. 오토월드에 입주한 다른 매매상사들도 중소 제휴업체 4곳을 통해 할부금융을 제공하지만, 혜택 등에서 현대차·기아와 경쟁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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