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일가족 5명 사망…문 앞엔 체납 고지서·추심 독촉장

이홍근 기자 2023. 9. 24. 21: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집 포함 3곳에서 각각 발견돼
집에 ‘채무로 가족 갈등’ 유서
금전 문제로 극단 선택 추정
경찰 “생활고 사망은 아니다”
적막 일가족 5명이 서울과 경기 김포 등 3곳에서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가족 중 3명이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송파구의 한 빌라 출입문에 경찰의 출입금지 테이프가 붙어 있다. 김창길 기자

일가족 5명이 수도권 3곳에서 각각 사망한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4일 이들 가족이 살았던 서울 송파구 소재 빌라 현관문엔 노란색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부서진 잠금장치 옆 우유통에는 카드 연체 채무금 추심을 알리는 고지서와 장기체납으로 도시가스가 곧 끊긴다는 안내서가 놓여있었다.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이 집에 살던 40대 여성 A씨는 전날 오전 7시29분쯤 다른 아파트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차량 블랙박스 분석 결과 A씨는 사망 전 김포의 한 호텔에서 초등학생 딸과 함께 투숙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이 호텔에 방문했을 당시 딸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경찰은 딸이 질식사한 사실로 미루어 A씨가 딸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구체적인 경위를 파악 중이다.

경찰은 A씨의 사망 사실을 알리려 유족에게 연락하다 남은 가족 세 명도 사망한 사실을 파악했다. A씨 남편이 연락을 받지 않자 경찰은 이들이 살던 빌라에 방문했고, 그곳에서 A씨 남편과 시누이, 시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은 이들이 A씨보다 앞선 지난 22일 오후에서 밤 사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신기록 조회 결과 A씨가 전날 오전까지 남편에게 연락을 시도한 것으로 보아 그때까지는 A씨가 남편의 사망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에 따르면 빌라에선 유서 두 장이 발견됐다. 각각 A씨 남편과 시누이가 쓴 유서로, 채권·채무 문제로 가족 간 갈등이 있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날 현장에선 남편 명의의 카드값 수십만원이 연체돼 채권추심업체가 다녀갔다는 방문록이 발견됐다. 도시가스 요금도 지난해 7월부터 연체돼 채무 금액이 187만원에 달했다. 다만 경찰은 “생활고로 인한 사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사망 며칠 전 송파구청에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이 가능한지 물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구에 살고 있던 A씨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최근 이 빌라로 전입한 뒤 송파구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구청은 이들의 차량 등 재산과 소득이 수급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A씨 일가가 금전 문제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지난 6월 2억7000만원대 사기 혐의로 고소당해 수사를 받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 중이던 터라 구체적인 혐의나 사실관계는 파악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외에도 A씨는 수억원대의 빚을 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정이 최근 가족들에게까지 드러나자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이웃 주민 B씨는 “A씨 부부가 2021년쯤 이사했고, 할머니(A씨 시어머니)는 보지 못했다”면서 “약 2주 전부터 문 앞에 폐기물 딱지를 붙여 가구를 내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남편과 시누이, 시어머니가 미리 극단적 선택을 준비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빌라는 오래전부터 A씨 친가가 소유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남편의 가족은 최근 살던 집 보증금을 빼 A씨에게 건네고 이 빌라로 주거를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역시 A씨의 친가 소유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사망 원인과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했다. 경찰은 A씨를 제외한 일가족 4명의 부검을 의뢰해 정확한 사인을 조사할 방침이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