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발전기의 ‘윙킬’ 막아라…조류 충돌 방지 시스템 고안

이정호 기자 2023. 9. 24.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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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레이더 활용 새 접근 탐지
회전속도 순간 감속으로 회피 도와
연 100만건 미국서 80% 감소 기대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 설치된 풍력 발전기에 충돌해 죽은 새. 미국에서만 한 해에 100만마리의 새가 풍력 발전기에 부딪쳐 죽는다. 미국 야생동물보호연합(NWF) 제공

풍력 발전기에 충돌해 죽는 새의 숫자를 지금보다 80% 줄일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됐다. 새가 접근하면 풍력 발전기에 장착된 회전날개의 속도가 자동으로 줄어 충돌을 회피하는 기술이다.

노르웨이 과학산업기술연구재단(SINTEF) 소속 연구진은 최근 풍력발전기에 충돌해 죽는 새를 지금보다 크게 감소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풍력발전기에 달린 회전날개에 새가 접근하는 것을 감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풍력발전기에 카메라와 레이더를 부착해 조류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최소 충돌 5초 전, 거리로 따지면 100~200m 전에 탐지한다.

그 뒤 풍력발전기에 달린 컴퓨터로 날개가 돌아가는 속도를 살짝 늦춘다. 날개 회전 속도가 떨어지면 새가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난다.

엘리베이터에 타려는 승객이 많을 때, 먼저 탄 승객이 ‘문 열림’ 버튼을 오랫동안 눌러 뒤따라 들어오는 승객들이 엘리베이터 문에 끼지 않고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돕는 일과 비슷하다. 연구진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한 결과, 이 기술을 쓰면 풍력발전기에 충돌해 죽는 새의 숫자를 지금보다 80%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현재 풍력발전기 때문에 죽는 새들은 매우 많다. 미국 조류보호협회(ABC)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연간 100만마리의 새가 풍력발전기에 충돌해 죽는다. 건물에 충돌해서 연 9억8000만마리의 새가 죽는 것과 비교하면 소수이지만,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다만 연구진의 이번 기술도 만능은 아니다. 새가 풍력발전기의 정면이 아니라 측면에서 날아오면 대처가 어렵다. 기존에 축적된 새의 전형적인 비행 패턴과 다르게 날아다니는 새도 감지하는 일이 까다롭다. 대표적인 경우가 비행 경험이 적은 어린 새들이다. 어린 새들의 변칙적인 움직임은 카메라가 포착해도 “이것은 새다”라고 컴퓨터가 단정하기 어렵게 한다.

많은 새들이 동시에 접근해도 대응이 쉽지 않다. 이럴 때에는 풍력발전기의 회전날개를 완전히 멈추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대형 풍력발전기를 멈추려면 최대 20초가 걸린다. 이미 상당수의 새들이 풍력발전기와 충돌한 뒤일 수 있다.

그럼에도 풍력발전기와 새의 충돌을 막을 대책이 사실상 전무한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이번 기술은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보고 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5년 내에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관련 업계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면 상용화 시기는 더 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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