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꿈틀거리다
꿈틀거리다
꿈이 있으면 꿈틀거린다
꿈틀거린다,라는 말 안에
토마토 어금니를 꽉 깨물고
꿈이라는 말이 의젓하게 먼저 와 있지 않은가
소금 맞은 지렁이같이 꿈틀꿈틀
매미도 껍질을 찢고 꿈틀꿈틀 생살로 나오는데
어느 아픈 날 밤중에
가슴에서 심장이 꿈틀꿈틀할 때도
괜찮아
꿈이 있으니까 꿈틀꿈틀하는 거야
꿈꾸는 것은 아픈 것
토마토 어금니를 꽉 깨물고
꿈틀꿈틀
바닥을 네발로 기어가는 인간의 마지막 마음
김승희(1952~)
시인은 ‘꿈틀거린다’는 말 앞에 ‘꿈’이 와 있다고 쓴다. ‘꿈틀거린다’고 발음하는 순간 지렁이 한 마리가 머릿속을 지나간다. 나도 지렁이처럼 바닥에 배를 대고 꿈틀거려 본다. 물에 잠긴 집 밖으로 나와 죽는 지렁이의 마음에 다가가 본다. 꿈틀꿈틀 가고 있다는 현재가 미래의 지렁이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꿈’은 마음의 거울에 비친 빛들의 현현일 것이다. 현실이 투영된 잠 속의 꿈은 쉽게 부서지고 굴절되지만, 신념으로 뭉쳐진 꿈들은 쉽게 부서지지 않고 내일을 만든다. 비루한 현실에서 다른 세계로 한 발자국 옮겨 가려는 ‘꿈’, 그 ‘꿈’을 시인은 ‘인간의 마지막 마음’이라고 노래한다.
우리가 서로를 환대하고 어깨를 내어주는 것, 그것은 점점 나락으로, 반목의 구렁텅이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현실을 견디는 방법이다. 우리의 꿈이, 열망하던 기차가 늦게 도착하더라도, 기다리던 사람이 아직 돌아오지 않더라도. 힘을 내요. 힘을! 아직은 괜찮아요. 괜찮아! 위로하며.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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