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방한” 꺼낸 시진핑…정작 발표문에는 빠져, 왜?

한덕수 국무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면담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중국 총리 회담 이후 약 보름 만에 또다시 한덕수 국무총리와 시진핑 국가주석이 만나면서 한중관계가 서서히 회복 국면으로 진입하는 분위기다.

23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열린 한 총리와 시 주석의 회담에서는 ‘이웃’이란 키워드가 강조됐다.

이날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브리핑에서 이번 항저우 한중 회담의 에피소드를 한가지 전했다. 회담 전 환영 오찬에서 시 주석은 한 총리와 나란히 입장했다. 시 주석이 “언제 도착했냐”고 물었고 한 총리가 “오늘 아침에 왔다”고 답했다. 시 주석은 “비행기로 3시간이면 오냐”고 되물었다. 한 총리가 “비행시간은 1시간 반 정도 밖에 안 걸린다”고 말하자 시 주석은 “정말 한중 양국은 가까운 나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회담 모두발언에서도 한 총리는 “이웃 국가로서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각별한 안부를 전달해 드린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어 양국간 정상급 회담이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한 총리는 “작년 발리 지톤티에서 양국 정상회담이 있었고 최근 (윤 대통령과)리창 총리 회담에 이은 오늘 면담을 뜻깊게 생각한다”며 “고위급 교류 소통은 한중 관계 발전에 대한 양국의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 측 발표문에 따르면 시 주석도 평소 자주 사용하는 ‘이사갈 수 없는 가까운 이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한중 관계에 의미를 부여했다.

시 주석은 이날 “이사 갈 수 없는 가까운 이웃이자 떼려야 뗄 수 없는 협력 동반자”라며 “안정적이고 실질적인 중한 관계는 양국과 양국 인민의 공동이익에 부합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한국과 함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시대에 발맞춰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한일중 정상회의에 대해서도 시 주석은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개최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데 대해 높이 평가하고 적절한 시기에 정상회의 개최를 환영한다고 했다. 한 총리는 내주 개최되는 한일중 고위급회의(SOM), 이어지는 3국 외교장관 회의에 이어 조속히 정상회의가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한국 외교부는 시 주석이 먼저 방한 얘기를 꺼낸 점을 강조했다. 장 1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가 먼저 거론하기 전에 시 주석이 먼저 말을 꺼냈고 본인의 방한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시 주석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7월 국빈 방문을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지 않았다.

다만 우리 정부 발표와는 달리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한 총리 면담 결과 발표문에는 시 주석 방한 계획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아 양국 공표 내용에 ‘온도차’가 느껴진다.

시 주석의 방한 문제는 10월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제3차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회의에서 추가적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한중 관계가 일부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이번 일대일로 정상회의에 한국 정부가 고위급 인사를 파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과거 1차 정상회의때는 당시 박병석 민주당 의원이 한국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고 2차 정상회의에는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한국 정부에서 고위급 인사가 일대일로 정상회의에 참석해 중국 지도부를 만날 경우 자연스럽게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총리와 시 주석은 또 양국간 경제협력이 양국 관계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하고 산업협력과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 한중 FTA 후속 협상 등에 있어서 협력해 나가면서 문화·인적교류를 증진해 나가기로 했다.

시 주석은 특히 양국의 경제 관계에 대해 “중한 경제는 밀접하고 산업망과 공급망이 깊이 융합돼 양국이 상호 이익 협력을 심화해야 계속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14억명 이상의 인구가 현대화에 진입했다. 거대한 시장을 더 개방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날 회담에서는 북러 정상회담이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 민감한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고 장 1차관은 설명했다.

시 주석과 한 총리의 회담이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마무리된 것은 중국이 전략적으로 한국을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의 대중 포위망이 계속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국과의 관계 강화 필요성이 더욱 긴요해졌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밀착하는 북한을 고려한 행보라는 지적도 있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왕따’나 다름 없는 러시아, 북한과 한몸으로 엮이는 것을 내심 불편해하는 모습이 있다”며 “북러 정상회담 이후 중국으로서는 북한을 바로보는 시선이 더욱 복잡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