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성패, 데이터에 달렸다] 주먹구구 ESG 안 통한다… `발등의 불` 기업, 데이터관리 초비상

장우진 2023. 9. 2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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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바스프 '디지털 ESG시스템' 자체개발로 탄소발자국 계산
국내선 대기업도 보고서 내는 수준… 세계기준 턱없이 부족
중견·중소기업은 더 열악 'ESG 데이터' 마련까지 험난한 길

디지털 ESG 어디까지 왔나

세계 1위 화학 생산업체인 독일 바스프(BASF)는 지난해부터 생산하는 모든 생산 제품의 탄소발자국을 계산하는 자체 PCF(Product Carbon Footprints) 시스템을 개발해 주요 고객사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 회사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기관들이 글로벌 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을 부여하는 기업 중 하나로, 여기에는 디지털 ESG 시스템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에 비해 국내 기업들 대다수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디지털 ESG 데이터·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삼성과 SK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그나마 ESG 보고서를 내놓고 있지만, 바스프 등 세계 톱 수준 기업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20~21년 기준 가장 많은 국내 기업을 평가한 서스틴베스트를 기준으로 ESG 최종 점수가 가장 높았던 A기업의 경우 레피니티브와 무디스에서 15위, 서스테이널리틱스 25위,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61위, 한국ESG기준원(KCGS) 20위에 머물렀다.

세계 최고 수준의 ESG 등급을 받고 있는 바스프가 자랑하는 디지털 ESG 시스템인 PCF는 자사 공장을 운영하면서 나오는 탄소 배출량(스코프 1, 2) 외에도 공급사와 원자재 생산에서 나오는 배출량(스코프 3)까지 수집해 디지털로 관리하고 있다.

스코프 3을 충족하기 위해 2021년 700여개의 공급사로부터 회사 전체 탄소 배출량의 50%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받고 있으며, 공급사 이산화탄소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협력사들의 탄소배출량 저감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바스프는 이렇게 모아놓은 디지털 데이터를 고객사에도 제공한다. 디지털 ESG로 원재료, 공급사, 에너지원, 공장 등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 같은 제품이라도 탄소 배출량이 서로 다른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고객사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탄소 배출 저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제품을 고를 수 있다. 탄소중립 달성은 물론 ESG로 금전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수익 모델을 만든 것이다.

환경(E) 뿐 아니라 사회(S)에서도 글로벌 기업들은 디지털 ESG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스타벅스는 '빈 투 컵(Bean to Cup) 프로젝트'를 시행 중인데, 이는 모바일 웹에서 바코드를 스캔하면 원두의 생산과 유통 이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다.

스타벅스는 세계 38만 커피 농장의 인권 관련 데이터와 제조공장, 물류센터로 이어지는 유통경로 전반의 생산·물류 데이터를 연계했다. 소비자는 구매한 스타벅스의 원두가 인권 문제가 없는 커피 농장에서 생산됐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하이네켄의 경우 지배구조(G) 측면에서 내부감사에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와 이미지 문자 판독 기술인 OCR(Optical Character Recognition)을 도입해 시간과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 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에게는 아직 제대로 된 ESG 기준도 없는 상황이고, 디지털 전환도 일부 대기업들만 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21년 말에서야 K-ESG 가이드라인을 처음 제시했고, 올 초부터 기획재정부와 대한상공회의 등이 민·관 합동 ESG 협의체를 구성해 공시기준 등 표준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 때문에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내는 대기업들은 탄소배출량(스코프 1~3) 등 ESG 관련 항목을 표기하고 있지만, 기업·시점 별로 명확하게 비교·분석하기가 어렵다.

다수 자회사를 보유한 기업의 경우 관리해야 할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대상을 해외 자회사까지 확대할 경우 인도, 동남아, 중남미 등 ESG 인식·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에서의 데이터 집계 지연과 신뢰성 문제까지 발생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손석호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장은 "보고서는 공시 양식이 있어 공시 누락 등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ESG 공시는 국내 표준이 아직 없다"며 "공시 표준이 나온다면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고 공시 취지도 더욱 잘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와중에 ESG 공시가 의무화 될 경우 공시 항목이 느는 점도 부담이지만, 의무적으로 제3자 검증을 받아야 하는 비용 부담도 추가로 떠안게 된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들은 정부나 대기업의 지원 없이는 인력이나 비용 측면에서 사실상 대응할 방법이 없다.

중견·중소 협력사들의 열악한 상황에 주요 기업들은 금전적인 지원 뿐 아니라 컨설팅까지 적극 나서고 있지만, 워낙 협력사들이 많아 스코프 3 수준의 디지털 ESG 데이터를 마련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 기업 IR 담당자는 "국내 뿐 아니라 수십개의 해외 계열사, 여기에 협력사까지 다 취합해야 하는데, 그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검증까지 하려면 1년 내내 해도 모자를 판"이라고 말했다.

장우진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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