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수학교과서 등 수학책 4천권 수집한 이 사람
“10월5일 ‘교과서의 날’…수학 교과서에도 관심을”
“우리나라는 서기 1910년에, 왜적에게 빼앗겼다. 그 후 오랫동안 자주독립을 얻기 위하여, 죽기를 맹세하고 싸워 왔었다. 그 가운데에서 유명한 것은, 서력 1919년 3월1일에 일어난 삼일 운동이다. 그 후 서기 1945년에 해방이 되었다. 이것은 단기로는 각각 몇 년이냐? 해방을 위하여 싸운 것은, 몇 해 동안이냐? 삼일 운동이 일어난 해는 지금으로부터 몇 해 전이냐?”
해방 다음 해인 1946년 10월12일 군정청 문교부가 펴낸 초등학교 5학년용 수학교과서 ‘초등셈본’의 일부 내용이다. 해방 직후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당시 수학교과서는 국어·국사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학에 일찌감치 흥미를 잃고 수학공부를 포기하는 학생을 일컫는 ‘수포자’가 쏟아져 나온다. 수학교과서와 수학교육 방식에 문제는 없을까?
김영구(64) 수학교과서연구소장은 “수학 교육의 출발이 잘못됐다. 수학이라는 학문은 실용적 필요 때문에 생겨나고 발전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도 실용학문으로서 수학의 첫걸음을 떼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영구 소장을 만나러 24일 경남 의령군 가례면 자굴산 기슭에 있는 ‘수학교과서연구소’를 찾았다.
30년 동안 학원 강사하며 번 돈으로
원나라 ‘산학계몽’ 1660년 필사본 등
조선~최근 수학책 4천여권 수집
“일제땐 수학이 한글 접하는 창구”
교과서명 산술→셈본→산수→수학
1994년 연구소 열고 학자들과 공유
“교육 공공기관이 연구소 맡아줬으면”
김영구 소장은 대학에서 수학교육을 전공하고, 경남 마산(현재 창원시)의 입시학원에서 30여년 동안 수학을 가르쳤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수학교과서 박물관을 세워서 후대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수학교과서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골동품상과 경매사이트를 샅샅이 훑으며, 버는 돈을 몽땅 수학교과서 구입에 사용했다. 1994년 경남 함안군 군북면에 수학교과서연구소를 처음 열었다가, 201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연구소라고 하지만 책을 보관한 공간의 내부면적은 20여㎡에 불과하다. 책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항상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책장에는 1660년 조선 중후반부터 2000년까지 340년 동안의 교과서·참고서 등 수학책 4천여권이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해방에서 6·25전쟁까지, 6·25전쟁 이후부터 2000년까지 등 크게 4개 시기로 구분해 진열돼 있다. 모든 책은 나프탈렌을 넣은 비닐봉지에 담겨 있다.
가장 오래된 책은 1책3권으로 구성된 ‘산학계몽’이다. 원래 중국 원나라 수학자 주세걸이 쓴 것인데, 연구소가 소장한 것은 1660년 전주부윤 김시진이 필사한 중간본이다. 이 외에도 1900년 우리 정부가 처음으로 펴낸 수학교과서인 ‘산술신서’, 1908년 6월30일 감리교가 펴낸 국한문혼용 ‘대수학교과서’, 일제강점기이던 1934년 10월30일 경기도가 농촌 미취학자에게 기초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 발행한 ‘농촌산술서’ 등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책이 수두룩하다. 해방 2년 뒤인 1947년 9월 경북 예천군 예천공립초급중학교(현재 경북도립대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던 채홍종 교사가 공부하고 싶지만 책을 구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직접 손글씨로 쓰고 등사기로 인쇄해서 펴낸 수학참고서 ‘초급 1년의 수학’ 등 교과서가 아닌 수학책도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4년 1월15일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초등과산수’를 보면, 육군소년지원병의 나이는 만 13살 이상 14살 미만이었으며, 체격은 키 143㎝ 몸무게 35㎏ 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다음 해인 1946년 10월12일 군정청 문교부가 ‘초등셈본’ 초판을 발행했는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9월10일 문교부가 ‘초등셈본’ 재판을 발행한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수학교과서 이름이 일제강점기에는 ‘산술’, 해방 이후 1955년 초반까지는 ‘셈본’, 1955년 중반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는 ‘산수’, 1995~1997년 이후엔 ‘수학’ 등 시대별로 바뀐 것도 알 수 있다. 6·25전쟁 기간에 나온 교과서의 종이 색깔은 짙은 갈색인데, 유엔 한국 재건위원회(운크라)가 기증한 종이로 인쇄한 것이었다. 천연색으로 인쇄된 수학교과서는 1955년 처음으로 나왔다.
그런데 김영구 소장은 해마다 10월5일 ‘교과서의 날’을 맞을 때마다 섭섭함을 느낀다.
해방 이후 교과서 발간은 1945년 11월6일 ‘한글 첫걸음’, 1945년 12월30일 ‘초등 국어교본’, 1948년 10월5일 ‘초등 국어 1-1(바둑이와 철수)’ 등 국어교과서 중심으로 이뤄졌다. ‘교과서의 날’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문교부가 처음으로 발간한 국어교과서인 ‘초등 국어 1-1(바둑이와 철수)’ 발간일인 10월5일로 정해졌다. 이 과정에서 수학교과서의 가치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김 소장은 “일제강점기에 수학교과서는 학생들이 한글을 접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했다. 그래서 조선어학회 활동을 했던 김원우 선생이 1923년 ‘산학전서’를 쓰는 등 한글학자가 수학교과서를 내기도 했다. 또 해방 직후는 물론 6·25 전쟁 중에도 수학교과서를 발행해 수학을 가르치려고 애썼다. 국어·국사교과서가 물론 중요하지만, 수학교과서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제 혼자 힘으로 수학교과서연구소를 계속 운영하는 것은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수학교과서라고 하지만 이를 연구하려면 역사·문학·일본어·한문 등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다. 전국적으로 산불이 잦아지고 대형화되는 추세라서, 자굴산에 산불이 날까 봐 항상 불안하다. 그래서 지난 2021년 ‘산학계몽’ 등 고서 4종의 국가지정문화재 등록을 우선 신청했는데, 국가 차원의 문화재로 지정하기에는 미흡하다며 부결됐다.
“경상남도교육청 등 교육 관련 공공기관이 수학교과서연구소에 관심을 갖고 맡아줬으면 좋겠어요.”
김영구 소장은 “서울 등 전국에서 수학 관련 연구자들이 수시로 방문하지만,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찾을 뿐 전체를 관리·보존·전시·연구하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글·사진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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