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을 어떻게 기억할까
[서울 말고]
[서울 말고] 김유빈 | ㈔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이사
몇 해 전 전국에서 활동가들이 모였을 때였다. 서로의 지역을 이야기하는 시간에 한 분께서 광주 518번 시내버스 이야기를 꺼내셨다. 나는 너무 일상적으로 접하는 일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이내 어깨를 한껏 올리고 228번, 419번, 1187번(무등산 높이) 버스도 있다며 자랑했다. 그 버스번호를 내가 제안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뿐 아닐 것이다. 518이라는 숫자가 광주사람들에게 주는 자부심은 굉장하다. 그러나 이 숫자에 퍼진 혐오는 더 굉장할지도 모른다. 불과 한 달 전, 타지역에 거주하는 동생이 택시 기사님이 5·18이 북한 간첩 소행이라 주장한다며 도움을 청해왔다. 동생은 결국 기사님의 ‘만물 간첩설’에 전라도 사투리를 숨기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혐오와 맞닥뜨리는 경험담은 매해 듣고 있다. 이러한 혐오를 들을 때마다 분노하고 발만 구를 뿐 달리 해결 방안을 찾기 어려워 무기력해질 때도 있다. 이 무기력감이 지역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반복되는 상황의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까지 든 생각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숭배와 혐오가 서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혐오세력뿐만 아니라 무작정 숭배하는 세력에도 함께 분노한다. 그들이 숭배하는 대상은 1980년 5월 그 당시의 ‘광주’만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5·18민주화운동과 광주는 같은 의미가 되는데 이 과정에서 도시의 다양한 이야기는 지워지고 하나의 담론, 광주는 곧 5·18민주화운동이라는 목소리만 남는다.
광주는 5·18민주화운동이라는 담론도 다양한 목소리가 발화되지 않는다. 지역사회 내에서도 숭배의 목소리가 강화되기 때문인데 나는 이 점이 매우 서럽기도 하다.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억울한 죽음을 온전히 슬퍼할 시간 없이 5·18의 당위를 확보하고 피해자가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숭배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물론 희생자들이 국가폭력 앞에 굴하지 않았고 민주주의 발전의 큰 이정표였다는 사실은 마땅히 위대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민주라는 거대 담론 외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이다.
이는 나만의 문제의식이 아니지만 공론화되거나 치열하게 논의되지 못했고 결국 곪아 터지고 있다. 지금 광주는 5·18 공법단체와 5·18유관기관, 시민사회 등의 내부 분열과 갈등이 격화되어 법정공방까지 이어지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를 해결해보고자 행정, 의회, 오월 단체, 5·18유관기관, 시민사회 등이 공론장을 열고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하는데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 갈등을 봉합하고 도모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5·18민주화운동 비경험세대들은 사실 꽤 꾸준하게 이전부터 오월을 기억하는 다양한 방법을 표출해왔다. 내가 활동하는 단체는 비경험세대 청년 10인의 이야기를 엮은 책 ‘포스트 5·18’을 출간했는데 김형중 문학평론가님이 써주신 서평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세대에 의해 전유되거나 도전받지 않은 모든 것은 기록물보관소에 저장되는 것으로 생을 마치게 마련이다”라는 평에 공감하며 5·18민주화운동도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도전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덧붙여 그것이 꼭 긍정적인 경험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를 부르는 실패의 경험이라고 할지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지역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담론이 이야기되는 풍부한 도시 광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과정에 무작정의 숭배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518이라는 숫자가 혐오를 넘어 언제나 자부심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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