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그샷으로 범죄 해결 안 된다
[시민편집인의 눈]
[열린편집위원의 눈] 이윤소 |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장
부산지방경찰청은 지난 6월1일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를 받는 정아무개씨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다음날 정씨는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모두 가린 채 포토라인에 섰다. 정씨처럼 얼굴을 가릴 경우 경찰이 공개한 신분증 사진만으로는 현재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며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의 실효성 논란을 부추기는 기사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같은 날 한 유튜브 채널은 경찰이 공개하지 않은 폭행 피의자의 신상을 폭로했다. 이후 7월26일 흉기를 휘둘러 4명의 사상자를 낸 조아무개씨, 8월7일 차를 몰아 보행자를 향해 돌진하고 흉기를 휘둘러 14명의 사상자를 낸 최아무개씨, 8월23일 성폭력 살인을 저지른 최아무개씨 등의 신상공개가 결정됐고 다수 언론은 ‘속보’ 타이틀을 걸고 피의자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달 12일 특정중대범죄사건 피의자의 ‘머그샷’(범죄자 구금 과정에서 찍는 신원 식별용 얼굴 사진)을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법안은 신상공개 대상 범죄를 확대하고, 피의자나 피고인의 30일 이내 모습을 공개하고 필요한 경우 강제 촬영도 가능하게 했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연말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국민생각함’을 통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95.5%가 머그샷 공개에 찬성했단다.
여기에 찬성하는 언론도 많을 것이다. 피의자의 신상정보가 공개될 때마다 속보 경쟁이 벌어졌고, 심지어 일부 언론은 경찰이 공개 결정을 하기 이전에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도 했다. 피의자의 신상정보는 이른바 ‘잘 팔리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머그샷 공개가 시행되면 더 많은 피의자의 얼굴을 언론에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 신상공개를 할 때마다 언론이 반드시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도 이유와 기준을 가지고 이를 보도할지 결정해야 한다. 알 권리 보장이나 범죄예방 목적은 언론이 신상공개를 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시민이 알아야 할 것은 피의자의 얼굴이나 이름이 아니며, 신상공개로 범죄가 예방된다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한겨레는 공인이 아닌 이상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2019년 전 남편을 살해한 고아무개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을 때에도 ‘고아무개씨’라고 표현했다. 2020년 3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가해자 조아무개씨에 대해서는 실명보도를 했는데, 실명보도의 이유를 <a>지면에서 밝혔다. 2020년 5월부터는 개정·시행된 ‘한겨레미디어 범죄수사 및 재판 취재보도 시행세칙’에 따라 신상공개 대상자의 실명은 보도하지만 얼굴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2023년 경찰이 신상공개를 한 피의자는 실명은 밝히고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고 있는데 한겨레만 이런 원칙을 지켜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 짐작된다. 머그샷 공개가 결정되면 원칙을 다시 논의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한겨레에서 머그샷 보도를 보고 싶지 않다. 머그샷을 공개하고, 엄벌주의 정책을 펼친다고 해서 사회가 안전하게 변화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은 사회 구성원의 불안감을 가중시킬 뿐이다. 범죄자 개인에 집중하는 정책으로는 범죄를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없다. 이미 검거된 피의자의 머그샷을 공개하는 것은 범죄자를 향한 분노만을 증폭시키고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도록 만든다. 언론은 이러한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법과 제도의 한계를 찾아 보완할 수 있는 방향의 보도를 해나가야 한다. 강력범죄를 유발하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찾고 이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열린편집위원의 눈’은 열린편집위원 7명이 번갈아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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