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상의가 없애달라는 규제목록, 관료들은 숙독하길 [사설]

2023. 9. 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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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개 유럽 기업이 가입한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가 최근 '규제 백서'를 발간했다. 127페이지에 달하는 이번 백서에는 자동차, 에너지, 환경, 금융, 헬스케어 등 17개 산업군에 걸쳐 100개 규제 완화 건의 내용이 빼곡하게 담겼다.

전기차 배터리에 대해서는 사전인증 제도를 개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유럽에서 이미 승인을 받았는데 한국에서 또 사전인증을 받으라는 것은 중복 규제라는 지적이다. 해상풍력의 경우 인허가 과정을 일원화해 달라는 주문이 담겼다. ECCK는 국회에 계류 중인 풍력발전촉진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법안 이름까지 명시했다. 온라인을 통해 위스키나 와인을 살 수 없다는 규정도 선진국에선 보기 드문 규제로 지목됐다. 청소년들이 인터넷으로 술을 주문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인데, 한국 전통주는 허가하면서 위스키나 와인은 안 된다는 논리는 차별이자 규제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백서는 지난해 한국 정부에 건의했던 96개 사항을 △수용 △미수용 △장기검토 등 3개 항목으로 구분해 꼼꼼하게 평가했다. 필립 반 후프 ECCK 회장은 간담회에서 "권고 사항 중 40%가 수용돼 감사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60%는 여전히 1년 이상 건의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외투 기업의 한국 직접투자(FDI)는 올 상반기 170억9000만달러를 기록해 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미·중 공급망 갈등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서 이탈하면서 반사 이득을 누린 효과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흐름이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한국은 경직된 노동시장에 대한 개혁이 더디고 경쟁국에 비해 여전히 높은 법인세율로 인해 투자 환경이 상대적으로 좋지 못한 국가로 분류된다. 결국 답은 현장에 있다. 정부 관료들은 이번 백서를 매년 발간되는 연례행사로 치부하지 말라. 그 대신 꼼꼼하게 숙독한 뒤 현장 실태 점검과 규제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외투 기업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 정부의 규제 완화 의지를 지켜보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금을 유치할 절호의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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