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삶의 현장' 시장은 살아남을까

황형규 기자(hwang21@mk.co.kr) 2023. 9. 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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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밀어낸 대형 할인마트도
온라인 몰에 밀려나는 시대
우리 이웃의 삶이 녹아있는
동네 시장 설자리는 어디에

학창 시절 선생님 한 분은 "공부하기 싫으면 가까운 시장 한번 가보라"고 충고하곤 하셨다. 요즘도 시장에 가면 불쑥 떠오르는 걸 보면, 당시엔 꽤나 인상적인 충고로 들렸던 모양이다.

시장을 둘러봐야 할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셨지만 "알고 보면 공부가 제일 편하다"는 학업 채찍질을 위한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교실이 지겨울 때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보고 나면 긴 말 하지 않아도 깨닫는 것이 있을 거라는 의미로 기억한다.

쉰 목소리로 "싸다 싸"를 연신 외치는 아저씨, 옹기종기 모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아주머니들…. 시장은 동네 어르신들의 삶이 차곡차곡 새겨진 공간이었다. 번듯한 백화점이나 할인마트를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지저분하다거나 불편하다는 기억조차 없었다. 알고 보면 '불편'처럼 상대적인 단어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경제가 급성장하고 곳곳이 개발되면서 시장은 빠르게 동네에서 멀어졌다. 시장이 있던 자리는 백화점과 할인마트가 차지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온갖 지원에도 동네 시장에는 발길이 하나둘씩 끊겼다. 리모델링을 끝내고 현대적 전통시장으로 탈바꿈한 곳도 명성을 되찾는 건 불가능했다.

전통적으로 명절을 앞둔 시장은 '실물 경기'를 파악해보려는 열린 취재 공간이었다. 지난주 추석을 앞두고 서울의 몇몇 전통시장을 둘러본 취재기자들의 기사엔 '힘들다'를 넘어 '삭막하다'는 표현이 담겼다. 상인들의 목소리에는 명절 대목을 앞둔 설렘과 기대 대신 한숨과 근심이 가득했다.

일 년 내내 구조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동네 시장은 실물 경기 진단을 위해 달려가야 할 현장으로서 역할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고가 선물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백화점과 대비를 이뤄 '소비 양극화' 현상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위상이 추락했다.

'물건을 사고파는 기능'이라면 백화점과 할인마트조차 온라인 쇼핑몰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동네 시장을 밀어내고 자신만만하게 들어섰던 전국 할인마트 중에도 불과 십수 년 만에 사라진 곳이 부지기수다. 식당부터 문화센터, 놀이기구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초대형 쇼핑몰만이 살아남았다.

경제 논리로만 놓고 보면 동네 시장은 분명 살아남기 버거운 시대다. 정보기술(IT)만큼이나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혁신을 요구하는 유통 무한경쟁을 전통 시장에 따라잡으라고 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우리 이웃의 '삶의 현장'인 동네 시장이 거대한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과 함께 어떤 형태로든 공존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현상을 요즘 곳곳에서 목격한다.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이 즐비한 곳보다 아기자기한 동네 가게가 몰린 핫플에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에서 획일성보다 다양성에 높은 점수를 주는 소비 트렌트가 엿보인다. 전통시장에서 미래를 찾아보겠다는 젊은 도전자들도 늘었다. 허름한 시장과 골목에 자리 잡은 노포에 대한 격려와 관심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예산시장 열기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엿볼 수 있다. 단순히 맛과 유명세만 따져 그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초대형 백화점에서는 보기 힘든 삶의 현장과 스토리를 함께 응원하고 있다고 본다.

개발 고도 성장기에는 해외에서 본 번듯하고 거대한 초대형 쇼핑몰에 열광했지만, 이미 선진국에 진입한 시대에는 오히려 주변의 작은 곳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 것은 아닐까. 일본, 유럽의 좁고 아기자기한 골목 가게와 광장의 시장이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스며들었듯이 말이다.

이번 추석 연휴 여유가 있다면 주변의 골목 가게나 동네 시장을 한번 둘러보길 바란다. 그리고 응원할 가게가 보인다면 지갑을 한번 열어보길 권한다.

[황형규 컨슈머마켓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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