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국제지속가능성기준, 가볍게 봐선 안 된다

2023. 9. 2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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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단일기준 멀지 않아
탄소중립·녹색기회 위해
美는 민간자본 동원 선언
대세 못읽으면 위기 직면
민관ESG정책協 서둘러야

내일 런던에서 회계기준제정기구 국제포럼(IFASS)이 열린다. 필자는 수요일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토론회에 참석한다.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된 유일무이한 대한민국의 선택은 국제사회 관심사다. 독일, 일본, 유럽연합, 영국과 나란히 올 한 해 지속가능성보고 기준을 만들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이거 예정대로 하는겁니까?'에 대해 답한다.

2021년 금융위원회는 2025년부터 지속가능성보고의 단계적 도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21일 로드맵(이행계획표)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기업의 준비 부족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전달되어 연기되었다. 9월 7일 금융위원회는 관계부처 합동 회의에서 (1)시행 시기를 2026년으로 1년 유예하고 (2)자산 2조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거래소 공시로 시작하며 (3)S2 기후 기준서 중심으로 보고하고 (4)한국 기업의 현실을 충분히 감안한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기준을 사용한다는 큰 방향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로드맵 발표는 올해 말 미국의 발표를 지켜보고 신중히 이뤄질 전망이다. 필자의 수요일 패널 토론 개요다.

8월 17일 지속가능성보고 국제 세미나를 열어 미국, 유럽, 일본, 호주의 입장을 파악했다. 9월의 런던 토론을 준비하며 기업 경영진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 그룹과 소통했다. 이 과정에서 느낀 몇 가지 소회를 공유한다.

첫째, 지속가능성, 특히 기후 이슈는 개별 기업에 도전적 과제이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완전한 선진국 진입을 위한 최종 관문이다. 지난주 20일 제78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대통령은 기후 격차 해소를 위해 녹색기후기금(GCF) 3억달러 공여 등 공적개발원조는 물론, 빠른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무탄소에너지(CFE) 오픈 플랫폼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기업들은 기후 문제를 단지 법적 책임, 위험요소로 회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업 기회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둘째, 지속가능성보고는 금융투자자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금융권과 투자업계는 남의 일이다. 회계 기준을 만드는 입장에서 "누가 회계 정보로 투자하냐?"는 금융권 친구들의 농이 야속하다. 지속가능성 정보도 이렇게 될까 두렵다. 미국은 지난주 19일 재무부가 9개의 '넷제로 금융과 투자 원칙'을 발표했다. 탄소중립 달성, 기후영향 해결, 녹색기회 포착을 위한 민간자본 동원 선언이다. 우리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셋째, 그 정치적 색채로 인해 미국에서 지속가능성 기준 채택이 쉽지 않고, 따라서 세계적 도입이 미뤄질 것이라는 관측은 엉터리다. 유럽, 미국, ISSB가 각자의 기준을 가지고 주도권 경쟁 중이라는 주장도 소설이다. 과거 국제회계 기준이 전 세계 단일 기준이 되지 못한 것은 미국의 우월한 자국 기준 때문이었다. 이번에 미국이 자국 기준을 못 만들면, 전 세계 상대 미국 기업들은 국제 기준을 쓸 수밖에 없다. 단일 기준이 가속화된다. 역설적이다.

KSSB를 대표해 두 가지를 약속드린다. 긴밀한 소통으로, 기업이 납득하고, 투자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는 고품질 기준을 만들 것이다. 우리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국제 기준을 모든 기업에 막무가내로 강요하는 글로벌 호구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대세를 읽지 못하고 막연한 불안감으로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고, 일하는 척하며 시간을 낭비하지는 말자. 지속가능성판 잼버리 사태를 피해야 한다. 인력 양성, 검증 및 공시 제도의 법정화, 관련 법률 체계 정비가 시급하다. 하반기에 소집되지 않은 민관 합동 ESG 정책협의회 개최를 서둘러야 할 이유다.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장·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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