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의 금서기행, 나쁜 책] 中소설가 팡팡의 '우한일기'
'금서기행, 나쁜 책'은 현대의 금서를 둘러보는 지적 여정입니다. 네이버·다음 합산 페이지 뷰 209만회를 기록한 아이리스 장 '난징의 강간' 편, 보도 다음 날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515계단 상승해 베스트셀러 10위에 진입했던 비엣 타인 응우옌 '동조자' 편 등 독자의 성원을 받은 온라인 연재 인기 코너입니다. 매월 1회 '금서기행, 나쁜 책'을 매일경제신문 지면에도 소개합니다. 지면에 소개할 책은 코로나19 시대의 중국 금서 '우한일기'입니다. 아래 QR코드를 촬영하면 기자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마스크 안 쓴 얼굴을 자주 봅니다. 두려움이 이렇듯 진정됐으니 망각의 속도는 참 빠릅니다. 공포의 그 시작점에 2020년 1월 23일 도시 전체가 봉쇄됐던 중국 우한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 작가는 '중국의 양심'으로 불렸습니다. 소설가 팡팡(方方)입니다. 그는 봉쇄 기간 동안 총 60편의 일기를 인터넷에 올렸는데 코로나19 초기 시민들의 두려움을 세밀하게 묘사한 글이었습니다. 팡팡의 글엔 성역이 없었습니다. 그는 중국 후베이성 공무원의 '거짓말과 무능'까지 싸잡아 지적합니다.
논란이 커지자 중국 검열당국은 팡팡의 글을 삭제했습니다. 그러나 우한 네티즌은 팡팡의 '지워진 일기'를 댓글로 복사하고 붙이는 '댓글 릴레이'로 그를 옹호합니다. 훗날 팡팡의 일기는 전 세계 15개국에 출간됐지만 정작 중국에선 금서입니다. 우한 봉쇄가 오래전 풀렸어도 팡팡 작가 개인에 대한 '봉쇄'는 아직 미해제 상태입니다.
아빠가 격리되자 아이가 아사했다
팡팡은 1955년생 중국 난징 출생으로,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이주한 우한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팡팡은 4년에 단 1명에게 수여하는 루쉰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중국의 대표 작가였습니다. 코로나19라는 단어도 없던 그때, 정체불명의 폐렴 환자가 속출하자 우한에 '봉쇄' 조치가 내려집니다. 거리는 도시 건설 이래 처음으로 텅 비었고 병상은 고열과 인후통 환자로 가득했습니다. 팡팡은 감염된 자들의 도시 풍경을 웨이보와 위챗에 올립니다.
아빠가 증상으로 격리되는 바람에 5일 만에 아사한 뇌성마비 아이, 엄마 시신이 담긴 운구차 뒤에서 절규하는 딸, 방호장비를 지급받지 못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일가족 전원이 사망한 간호사 등 눈뜨고 보기 힘든 참극이 빼곡했습니다.
"가끔 어떤 음성이 들린다. 대체 어디에서 아이가 이렇게 목이 쉬도록 우는 건지 모르겠다. '엄마, 날 버리지 마.' 그 소리를 들은 모든 엄마들은 온몸이 떨려오고 만다."(246쪽, 봉쇄 38일 차)
팡팡의 글엔 따스한 희망, 뾰족한 원망이 공존했습니다. 우한으로 달려온 전국 수만 명의 의료진은 머리를 자르거나 삭발한 상태였습니다. 진료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선량한 시민들은 20명 단위로 식료품을 사다주는 '장보기 그룹'을 조직하는 등 지혜를 모읍니다. 동시에 팡팡의 글은 이기적인 일부 중국인을 발견합니다. 기증 명목으로 물품을 공짜로 모아 인터넷에 내다 팔고, 확진자는 이웃집 대문에 침을 묻히는 기행을 벌였습니다. 목숨을 담보로 대문을 나선 자원봉사자에게 맥주캔을 '몇 짝씩' 주문하는 사람까지 목격됩니다. 시내 마스크 가격도 폭등했습니다. 우한의 한 약국은 마스크 한 장당 35위안을 받았습니다. 1위안을 180원으로 환산하면 '1장당 약 6000원'인 초고가였습니다. 스물다섯 장 한 묶음은 875위안(약 15만원). 그런데 작은 마트에 가보니, 같은 마스크를 10위안(약 1800원)에 팔고 있네요.
그는 시민들에게 질서와 양심을 호소했습니다. 팡팡 작가도 자신이 쓰는 글이 인간의 공포와 선악의 양면을 다루는, 중국을 넘어 인류사적 가치를 지닌 역병의 문학적 기록이 되리라고는 스스로 알지 못했습니다.
도시 우한을 '살해'한 여덟 글자
팡팡은 관료들의 거짓말과 무능, 불합리와 부조리를 매섭게 질타했습니다. 당초 후베이성 정부는 처음 우한에서 미상의 폐렴 환자가 다수 발생하자 다음 말로 시민을 진정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人不傳人 可控可防(인불전인 가공가방·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
저 여덟 글자 때문에 초기 우한 내 의료진이 사망했습니다. 팡팡은 그해 3월 개최 예정이던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일명 '양회')를 앞두고 후베이성 정부가 부정적 소식을 통제했던 결과라고 목소리를 냅니다.
그러나 팡팡처럼 정부에 반(反)하는 반체제적 주장은 '음모'로 간주됐습니다. 후베이성 당국은 팡팡의 글을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팡팡의 일기는 올릴 때마다 블라인드(글 가리기) 처리됐고, 계정도 정지됐습니다. 팡팡에게 동조하는 문인과 의사도 정보당국에 고발조치를 당합니다. 그사이, 정책 실패와 사실 은폐로 사퇴하거나 지탄받아야 마땅한 당국과 병원 관료들은 되레 '코로나19 극복의 영웅'으로 둔갑합니다. 비닐팩 안의 시신이 아직 따스한데, 환호의 팡파르부터 울린 것이지요.
"중국인은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고 참회하는 마음도 거의 없으며, 심지어 죄책감도 잘 느끼지 않는다. 어찌 이리도 당당하게 자화자찬할 수가 있는가?"(59쪽, 봉쇄 10일 차)
팡팡은 중국 관료들의 형식주의까지 고발합니다.
"당 간부가 시찰을 나온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도열해 있는데, 공무원뿐만 아니라 의료진도 있으며 환자까지 서 있었다. '공산당이 없다면 새로운 중국도 없다'(중국 선전가요)를 불렀다. 대체 언제쯤에야 사람들이 동원되어 노래 부르고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121쪽, 봉쇄 21일 차)
팡팡의 일기는 '우한일기'란 제목으로 미국 유명 출판사인 하퍼 콜린스에서 출간됐고 독일, 스페인, 영국, 프랑스, 일본, 베트남, 한국 등 15개국에서 번역 출간됐습니다. '우한일기'는 봉쇄된 도시 우한에서 인간의 자유와 양심을 지키고 합리적 이성을 촉구했던 긴박한 문학적 기록이었습니다. 그러나 '우한일기'는 중국에선 출간되지 못했고 팡팡은 중국 극좌파에게 "매국노"로 몰려 위협받습니다. 팡팡의 이름은 단번에 지워져 버렸습니다.
공장의 짐꾼 잡역부, 루쉰賞 받기까지
팡팡은 20대 시절 4년간 공장 잡역부 짐꾼으로 생계를 이었습니다. 스물넷 다소 늦은 나이에 우한대에 입학했고 삶을 시(詩)로 노래했습니다. 소설가로 명성이 높은 팡팡의 저서는 현재까지 100권입니다. 팡팡은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 후베이성 작가협회장을 지낼 정도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공장 말단 직원이던 그가 국가 권위의 루쉰문학상까지 수상했으니 그야말로 최고 지성의 입지전적 인물이지요. 그러나 팡팡은 현실의 감투 대신 작가적 양심을 택했고 독자들과 시민들 곁에 섰습니다.
사실 그의 책이 금서로 지정된 건 '우한일기'가 처음이 아닙니다. 2017년 그의 소설 '롼마이(연매·軟埋)'는 중국의 또 다른 유명 문학상인 루야오문학상을 받았는데, 중국 정부는 이 책을 수상과 동시에 금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롼마이'는 전 재산을 잃은 지주 집안 출신의 남편과 그의 온 가족이 목숨을 끊는 걸 목격하고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노파의 이야기입니다. 중국 정부는 '롼마이'가 '1950년대 중국 공산당 토지개혁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금서로 지정합니다.
"中극좌파, 문화대혁명을 그리워하다"
기사를 이쯤 작성했을 때 중국에서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몇 주 전 팡팡 작가에게 보냈던 이메일 인터뷰 요청서 답신입니다. 팡팡 작가는 극좌파의 신변 위협 등을 이유로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습니다만 '금서기행, 나쁜 책'의 취지에 공감한 한중 출판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연락이 닿았습니다. A4 용지 3장짜리 답변을 전합니다.
―2년간 소식을 듣지 못했다.
▷독자들이 내 소식을 듣지 못한 건 중국의 모든 주류 언론이 날 차단했기 때문이다. 우한 봉쇄가 끝난 이후 현재까지도 나에 대한 봉쇄는 해제되지 않고 있다. 난 중국 출판사나 문학잡지에서 어떤 작품도 출판하거나 발표할 수 없다. 새 장편소설을 출판사에 송부한 지 3년이 넘었는데 세상에 나오지 못했으니 작가 개인으로서의 내 공개 활동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금서 작가로서 제약이 많겠다.
▷공개 출판물엔 내 이름이 언급될 수 없다. 전업 작가에겐 끔찍한 일이다. 우한에서 60일간 전염병 상황을 기록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 당국이 이런 저속하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작가를 공격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한일기' 60편은 혼돈의 도시를 일깨운 글이었다.
▷우한 봉쇄 3일째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매일 기록할 생각은 없었고 제목도 없이 그냥 닥치는 대로 적었을 뿐이다. 일면식 없는 한 네티즌이 내 모든 기록을 모아 '팡팡 봉성(封城·후베이성 봉쇄를 뜻함) 일기'라고 명명했다. 매일 썼기에 나도 '일기'란 표현에 동의했다.
―후베이성 정부의 과오를 노골적으로 폭로했다.
▷어두운 면을 '폭로'한 것이 아니라 전염병의 실태와 퇴치 과정, 시민들의 생활을 객관적으로 기록했을 뿐이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었다. 60일간의 일기는 대략 10만자인데 비판은 전체의 5분의 1에 못 미친다.
―진실의 기록이 고통스럽진 않았는지.
▷내가 진실을 기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며칠 동안 너무나 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또 리원량 의사(우한 중신병원 의사로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알린 우한 시민들의 영웅, 코로나19로 사망)의 죽음까지 겹쳐 전례 없는 비통함과 극도의 분노를 느꼈다.
―지식인 이중톈 선생(중국 최고 지성으로 통하는 문화학자, 우한대 교수 역임)과의 책 속 대화가 흥미로웠다. "극좌와 극우는 본질적으로 같다"는 두 분 대화에 밑줄을 그었다.
▷중국에서 극우세력은 공식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도 거의 없다. 그러나 극좌파 세력은 강력하다. 중국에는 수많은 극좌파 사이트가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개혁개방을 반대한다. 극좌파는 문화대혁명(1966년부터 10년간 이어졌던 공산당의 사회 지식인 학살과 문화 말살 운동, 일명 문혁)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문혁 시대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해결 방법은 뭘까.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뿐만 아니라 '권력의 관점'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 즉 반체제 인사까지도 포용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인류에게 남긴 건 뭘까.
▷모두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 그러나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인간은 그 상처를 쉽게 은폐하고 또 망각한다.
선의를 기억하라, 죽음을 잊지 말라
'우한일기'는 죽음의 행렬 앞에서 '제도에 의한 죽음을 기억하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코로나 지옥도' 속에서 이 질병을 이겨내는 강력한 치료제는 바로 인간의 선(善)이었음을 '우한일기'는 전합니다. 김훈 작가는 이 책을 이렇게 추천했습니다. "희망은 선한 다수의 마음과 행동 속에 있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끝까지 선의(善意)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전염병은 머지않은 어느 날 또 우리의 평범했던 일상을 '봉쇄'하려 들 겁니다. 팡팡의 금서 '우한일기'가 중국인, 그중에서도 우한 시민의 기억만이 아닌, 세계사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겠지요. 아마 그때 팡팡 작가의 '우한일기'를 다시 펼치며, 우리 자신의 지친 표정을 거울처럼 발견하게 될 것만 같은 확정적인 예감이 듭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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