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쓰고 "짠" 건배까지…포스트 말론, 3만명 홀린 맨몸의 전사 [리뷰]

김수영 2023. 9. 2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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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싱어송라이터 포스트 말론 첫 내한
지난 23일 고양 킨텍스서 개최
3만명 관객 동원·다양한 장르 소화
한국어 인사에 갓도 써 '최고의 무대매너'
사진=포스트 말론 인스타그램 캡처


첼로·바이올린의 감미로우면서도 격정적인 연주에 젖어들 때쯤 웅장하고 파워풀한 드럼·베이스·일렉 기타 사운드가 끼어들었다. 상의를 탈의한 맨몸의 아티스트는 그 안에서 묵직한 랩을 내뱉다가 돌연 분위기를 바꿔 부드럽게 노래했고, 때론 날카로운 고음을 질렀다. 3만여 관객의 혼을 쏙 빼놓은 미국의 래퍼이자 싱어송라이터 포스트 말론의 첫 내한 공연이다.

포스트 말론은 지난 23일 오후 7시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2015년 스무 살의 나이에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을 통해 선보인 '화이트 아이버슨(White Iverson)'이 빌보드 싱글 차트 14위까지 오르는 등 큰 인기를 얻으며 팝스타 반열에 선 포스트 말론의 첫 내한 공연. 그를 향한 기대감을 증명하듯 이번 공연은 예매 오픈과 동시에 3만석이 매진됐다.

공연은 약 20분 지연 시작했다. 관객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잠실주경기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감에 따라 주최 측인 라이브네이션코리아는 킨텍스를 대안으로 택했는데, 서울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져 공연 시작 시간인 7시에도 관객 입장이 끊이지 않았다. 19세 이상 관람가 공연이라 성인 인증 절차도 필요했다.

공연장이 암전된 건 7시 18분께. 장내가 어두워지자 관객들은 포스트 말론의 애칭인 '포스티'와 그의 본명인 '오스틴'을 연호했다.

첼로·바이올린으로 구성된 현악 4중주의 선율과 함께 막이 올랐다. 곧이어 밴드 사운드가 무대를 꽉 채웠고 그 안에서 포스트 말론이 등장했다. 무대에 선 포스트 말론은 블랙핑크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이 이질적인 모든 것들의 조합은 마치 예고편처럼 공연의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었다. 투박하고 자유로운 듯, 열정적이고 꽉 찬.

첫 곡 '베러 나우(Better Now)'부터 떼창이 터져 나왔다. 공연장 중앙부에 빼곡하게 들어선 스탠딩 관객들은 일제히 손을 번쩍 들고 자리에서 뛰며 포스트 말론을 맞이했다. 세련된 팝 스타일에 푹 빠져들려는 찰나 두 번째 곡인 '와우(Wow.)'가 시작됐다. 심플하지만 묵직한 베이스가 인상적인 힙합곡이다. 편안하게 흐르는 랩핑에 분위기는 금세 반전됐다. 포스트 말론이 가볍게 몸을 흔들자 폭발적인 환호가 나왔다.

오프닝 무대가 끝난 후 포스트 말론은 손으로 하트를 그려 보였다. 그는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 한국에서의 첫 공연인데 정말 고맙다"면서 "오늘이 최고의 밤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팝스타 포스트 말론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제공


오프닝에서부터 예고됐듯이 포스트 말론의 다채로운 음악 스펙트럼은 한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굿바이'를 조용히 감상하다가 이내 '아이 라이크 유(I Like You)'를 부르는 사랑스러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다 '테이크 왓 유 원트(Take What You Want)', '오버 나우(Over now)'의 강렬함에 감탄이 나왔다. 어느샌가 블랙핑크 티셔츠는 사라졌고, 포스트 말론은 상의를 탈의한 채로 열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무대 위 타오르는 불기둥은 그의 에너지와 똑 닮아 있었다.

초반부 일렉 기타를 멨던 포스트 말론은 '필링 휘트니(Feeling Whitney')를 부를 땐 맨몸에 어쿠스틱 기타를 걸쳤다. 앞선 분위기와는 또 다른 반전 장르, 부드럽게 고음을 소화하는 보컬이 뭉클함을 안겼다. 객석은 관객들이 밝힌 휴대폰 불빛으로 일렁이며 장관을 이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무대 매너였다. 곡이 끝날 때마다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는가 하면, 스태프를 향해 "맥주 좀 주세요. 제발"이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잔을 머리 위로 들며 여러 차례 "짠!"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공항에서 만난 팬을 무대 위로 올려 박수를 받기도 했다. 기타를 배우고 있다는 팬의 말을 지나치지 않고, 무대로 초대해 함께 '스테이(Stay)'를 완성한 것. 다소 미숙한 연주에도 포스트 말론은 천천히 호흡을 맞춰주는 배려를 보였다. 팬이 준비해온 갓을 머리에 써 감동을 안기기도 했다. 앙코르 무대에서는 대형 태극기가 펄럭였다.

사진=포스트 말론 틱톡 캡처


포스트 말론은 "지금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라고, 자신을 스스로 세상에 끊임없이 표현하라고 말하고 싶다"며 "여러분은 홀로 스스로 빛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어라. 멈추지 말고 당신의 삶을 살고, 꿈을 누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래, 랩에 센스 있는 무대 매너까지 그가 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한편 주최 측은 3만명의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킨텍스 제1전시장 4, 5홀을 통합해 야외 못지않은 대규모 면적을 구현해냈다. 음향이 좋지 않은 장소로 잘 알려져 있어서 팬들의 걱정이 있었지만 실내 음향 반사 제어, 잔향 제거를 위해 리버브 타임 리덕션(Reverb Time Reduction) 기술을 도입하고 흡음재를 보강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공간이 워낙 넓은 탓에 초반부에는 음향에 다소 아쉬운 느낌이 들었지만 갈수록 집중도가 높아졌다. 아티스트의 말소리도 비교적 또렷하게 들렸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교통 대란이 벌어졌다. 서울에서 온 관객들이 일제히 몰리며 급행 광역버스 대기 줄이 길게 늘어졌다. 귀가 걱정 탓에 앙코르를 보지 못하고 급히 빠져나가는 관객들도 많았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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