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시론] 과학기술 G5를 향한 국가전략기술 본격 육성
미·중 신냉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라는 냉혹한 국제환경 속에서 강대국의 패권 경쟁은 날로 가열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규제, 중국의 과학기술 자립자강 선언 등에서 보듯 핵심기술은 생존을 위한 국가의 전략적 무기가 됐다.
정부도 이러한 정세를 과학기술 정책에 반영해 지난해 '국가전략기술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뒷받침할 기반으로 3월21일 제정된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22일 시행, 지속가능한 전략기술 육성 생태계 조성의 추진체계가 본격 가동됐다.
특별법은 범부처 차원의 기본계획 수립과 연구개발(R&D) 우선 투자, 우수 R&D 성과의 사업화 등 국가전략기술을 전주기 차원에서 육성할 수 있는 법적 토대다. 전략기술의 체계적·지속적 육성을 통해 국가 과학기술 주권을 확립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별법 시행을 계기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범부처 과학기술 정책 조정자로서 본연의 역할을 보다 충실히 수행해 나가고자 한다.
법 절차에 따라 과기정통부는 12대 국가전략기술과 50개 세부 중점기술을 확정·고시하고, 국가전략기술 육성 기본계획 수립을 총괄한다. 기본계획에는 중장기 정책 목표와 R&D 투자방향, 인력양성과 국제협력 추진 등에 관한 내용이 담긴다. 그리고 전략기술에 관한 기획업무를 수행할 정책지원기관을 지정해 계획의 전문성과 신뢰성도 확보할 것이다. 정책지원기관은 4월 출범한 국가전략기술 특별위원회 산하 기술별 조정위원회 등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또, 정부는 파괴적 기술혁신을 선도할 최고급 R&D 인재가 국가의 전략적 자산임을 인식하고 인재를 집중 양성하기 위한 방안도 특별법에 담았다.
국가전략기술 육성방안에서 발표한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첨단 바이오, 인공지능, 차세대 통신 등 경제·산업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측면에서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기술이다. 기술 자립도를 높여 대외 경쟁력을 가져야 할 공급망·통상 분야, 미래 먹거리를 창출할 신산업 분야, 그리고 글로벌 기술 블록화에 대응하는 외교·안보 분야로 구분해 전문가 평가와 민관 합동 분석 과정을 통해 방안을 마련했다.
12대 전략기술 육성방안의 주요내용은 우선 부처별로 산재되어 있던 분야별 기술개발 전략을 하나로 모아 범부처 지침으로 전략 로드맵을 수립하도록 했다.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첨단 모빌리티 분야 로드맵은 이미 8월에 발표한 바 있고, 인공지능, 첨단바이오 등 나머지 분야도 신속히 완비해 나갈 예정이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사항은 분야별 중점기술과 국가적 임무를 명확히 제시하는 '임무중심형'으로 로드맵을 설계함으로써 로드맵과 R&D 투자방향이 연계되도록 했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정부는 전략 로드맵을 통해 국가 R&D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한정된 재원이 효율적으로 R&D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거세지는 기술패권 경쟁의 파고 속에서 나침반이 되어줄 전략기술별 로드맵은 정부가 혼자 마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 분야별 산·학·연 최고 전문가와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국가전략기술 특별위원회'가 그 중재자가 될 것이다. 민관이 각각의 역할을 분담하고 유기적으로 협력하면서 국가전략기술 육성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아울러 전략기술 로드맵에 따라 구성된 기술별 조정위원회는 분야별 기술전략을 기획하고 조정하는 싱크탱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위해 정부는 2024년 정부 R&D 예산에서 국가전략기술 분야는 올해보다 6% 확대된 약 5조원을, 전략기술·탄소중립 등 핵심 분야 인재 양성에는 14.5% 증가한 약 7500억원을 배정했다. 분야별로는 올해 대비 첨단바이오 예산이 16.1%, 양자가 20.1%, 우주가 11.5%로 증가했으며, 보스톤 바이오협력 프로젝트 등 세계 우수 연구그룹과의 협력과 인재 양성에 2조8000억원을 투입한다. 즉 국가 전략기술과 사람에 대한 집중 투자를 통해 국가 성장을 견인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R&D 투자규모는 세계 다섯 번째에 해당할 정도로 크게 증가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비중은 세계2위에 이른다. 세계적 수준에 걸맞게 양적 성장이 질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과기정통부는 연구자와 함께 R&D 시스템이 세계 최고, 세계 최초의 가능성에 투자할 수 있도록 혁신을 지속해 나가겠다. 현장에서 우리나라 혁신에 기여하고 있는 연구자분들이 더욱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건강한 연구생태계 조성에 필요한 정책적,재정적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
미래 글로벌 패권 구도가 기술 주권국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 자명한 상황이다.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선진국과 기술패권 대응 전략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우리는, 초격차 기술 전략으로 대체불가한 전략기술을 확보해 세계 기술 경쟁 무대를 주도해야 한다. 이를 위한 긴 호흡으로 미래 선도 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촘촘한 전략기술 육성 생태계를 조성해 진정한 기술 강국으로 대도약할 것이다.
주영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필자〉주영창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윤석열 정부 첫 과기혁신본부장으로 임명돼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주 본부장은 1965년생으로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금속 공학 박사를 취득하고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방문 과학자와 미국 AMD 수석 디바이스 엔지니어를 거쳐 1999년부터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2006년 미국 스탠퍼드대 방문교수를 지냈고, 2016년 미국 재료학회(MRS) 이사를 역임했다. 2017년에는 대학산업기술지원단(UNITEF) 단장을 지냈고, 2019년에는 기획재정부 소재부품장비경쟁력위원회 위원, 2020년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을 지냈다. 2022년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자격을 획득했다. 이같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가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고,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심의·조정과 성과평가 기능을 수행하는 과기혁신본부장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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