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국제협력, 하루아침에 안돼…제대로 준비 않으면 돈 낭비"
정부가 2024년 연구개발(R&D) 예산안을 대폭 감축하며 동시에 국제협력 투자에 집중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신성철 과학기술협력대사는 24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개최된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2023 서울'에 참석해 "준비없는 국제 협력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2년 11월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외교활동을 펼치는 외교부 '과학기술협력대사'로 임명된 신성철 대사는 고체물리학자다. 나노 세계의 자기장인 스핀을 사용해 전자회로를 구현하는 '나노스핀닉스' 분야를 개척, 한국인 최초로 미국물리학회 석학회원으로 선정된 것으로 잘 알려졌다.
제16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시절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와의 국제 연구협력 계약가 관련해 2018년 10월 과기정통부의 강도높은 감사를 받고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신 대사는 24일 동아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총지출(GDP) 대비 R&D 비중을 5%로 늘려야 한다고 초기부터 주장해왔다"며 최근 정부가 과학기술계 주요 연구개발 R&D 예산의 13. 9%를 삭감하기로 결정한 건에 대해 "연구비가 잘못 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줄여야 하지만, 전체적인 연구비 삭감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2022년과 2023년 한국의 GDP 대비 R&D 예산은 4.9%로 신 대사가 언급한 GDP 대비 5%에 육박했다. 2019년 4.4%에서 3년 새 0.5% 늘었다. 그러나 이번 예산 삭감안으로 2024년엔 다시 3.9%로 추락하게 된다.
정부는 2024년 R&D 예산안을 축소하면서 국제협력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신 대사는 "국제 협력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준비없는 국제 협력은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 연구 수준에선 세계 일류 연구기관과의 상호교류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들은 단순한 연구비 투자가 아닌 연구에 실질적이고 상호보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 파트너를 원한다는 것이다.
신 대사는 "해외 연구기관에서 이미 신뢰를 쌓은 한인 연구자들을 통해 국제 네트워크를 쌓아가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의 접근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국립보건원(NIH),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등 연구자 개개인의 네트워크를 통한 접근이 어려운 연구기관에 대해선 정부가 직접 나서서 협력을 주도하는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국제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 협력 예산을 늘리면서 무작정 '국제 협력을 늘리라'고 압박을 넣는다면 2~3년이 지나 돈만 낭비하고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그 비판은 과학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 대사는 향후 스위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 유럽의 과학기술 강소국과의 공동 연구를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최근 스위스와 한국의 양자기술 관련 과학자들이 기술 교류를 위한 협약을 체결한 것이 한 예라면서, "규모는 작지만 연구 추진력이 높은 이들 국가와 기술의 상용화 비율이 높은 한국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세계 유수의 연구자가 한국에서 연구하게 하기 위해선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특출나게 뛰어난 분야를 개발, 박사후연구원들이 국내 연구소로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국내에 거대 연구 시설을 건설해야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중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1000명을 중국으로 데리고 온다는 '천인계획'을 세웠는데, 국적에 관계없이 높은 연봉을 제시하고 유연한 연구 시스템을 제공하는 게 핵심"이라며 "한국도 해외 인력을 국내로 유입시키기 위해 유연한 연구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고 밝혔다.
[박건희 기자 wiss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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