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보다 약한 나라'… 냉엄한 현실 직면한 캐나다

김태훈 2023. 9. 2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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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정부의 인권탄압 의혹 제기했지만
동맹국들, 문제 안 삼고 건성으로 대응
전문가 "서방, 캐나다보다 인도 눈치 봐"

인도와 외교적 마찰을 빚는 캐나다가 곤경에 처한 기색이 역력하다. 맹방인 줄 알았던 ‘파이브아이즈’ 동료 국가들의 반응이 너무 싸늘해서다. 파이브아이즈란 영어권 5개국(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정보공유 협의체로 국제사회에서 가장 끈끈한 결속력을 자랑해왔다.

일각에선 인구 수에서 중국을 제친 데다 경제력과 군사력, 우주 등 과학기술 역량도 나날이 부상하는 인도가 서방 국가들의 러브콜을 한몸에 받는 것과 비교할 때 국제사회에서 캐나다의 위상은 훨씬 더 약하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인도가 의장국을 맡아 뉴델리에서 열린 올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왼쪽)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곁을 지나고 있다. AP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은 ‘세계 무대에서 고립된 한 주를 보내며 냉엄한 현실에 직면한 트뤼도’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 14일 하원 연설에서 인도 정부의 자국민 암살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이 시큰둥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트뤼도 총리는 “올해 6월 캐나다 국적의 시크교도 분리주의 운동단체 지도자 하디프 싱 니자르가 밴쿠버 외곽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의 배후에 인도 정부가 있다”고 주장하며 그동안 확보한 물증을 제시했다. 캐나다 정부는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자국에 주재하던 정보담당 인도 외교관을 추방했다.

2020년 니자르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던 인도 정부는 즉각 의혹을 부인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면서 캐나다 외교관 맞추방과 캐나다 국민에 대한 비자(사증) 발급 중단으로 맞섰다. 양국 간 갈등이 확산하며 그동안 진행 중이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중단됐다.

BBC는 “트뤼도 총리의 발표 내용은 대단한 폭발력을 지닌 것임에도 동맹국들의 반응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며 “적어도 캐나다가 기대한 완전한 지지에 크게 못 미쳤다”고 평가했다. 영국은 “캐나다 정부의 발표 내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만 했다. 인도 정부를 비난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거나 하진 않았다. 호주 정부 역시 우려를 표명하는 선에 머물렀다.

캐나다 입장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미국의 태도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분노의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유엔총회 연설에서 인도가 경제 분야에서 그간 이뤄 온 성과를 칭찬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왼쪽)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사진은 2018년 2월 인도 뉴델리를 방문한 트뤼도 총리가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 나선 모습. AFP연합뉴스
사정이 이렇자 기자간담회 때 트뤼도 총리를 향해 “캐나다의 동맹국은 대체 어디에 있느냐”는 모욕적인 질문이 나왔다. 다른 기자는 트뤼도 총리를 향해 “적어도 지금까지 총리는 혼자뿐인 것 같다”고 우려 섞인 한마디를 건넸다. 캐나다 국내에서 ‘미국이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확산하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나서 “우리는 책임소재를 확인하고 싶다”며 “우리의 인도 친구들이 그 조사에 협조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긴 했다. 하지만 블링컨 장관도 ‘미국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답변하기 않았다.

BBC는 인도 인구가 캐나다의 35배에 달한다는 점, 인도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기록 중인 점 등을 언급하며 “적어도 대중의 눈에는 캐나다가 인도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에서 따돌림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국제정치에서 캐나다가 처한 환경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미국 싱크탱크 윌슨센터 캐나다 연구소의 사비에르 델가도는 BBC에 “미국, 영국 등 주요 서방 국가들은 인도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략을 세워왔다”며 “이제 와서 갑자기 이 전략을 내던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에서 인도와 캐나다의 존재감 격차 그리고 캐나다 국력의 한계가 뚜렷이 드러났다는 설명도 나온다. 캐나다는 분명히 신뢰할 만한 서방 동맹의 일원이지만 그 자체로 세계적 강대국은 아니란 것이다. 같은 연구소의 크리스토퍼 샌즈는 “캐나다가 갖고 있지 못한 힘과 돈을 인도는 갖고 있다는 것이 결정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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