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윤석열 외교’ 앞에 선 ‘진보 외교’의 경쟁력

박민희 2023. 9. 2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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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23일 오후 항저우 시후 국빈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회담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박민희ㅣ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 대통령’ 이미지 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일 ‘과거사’를 지우면서 한-일 관계 급속 밀착으로 한·미·일 ‘준동맹화’의 첫발을 디뎠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주요 7개국(G7), 유엔 총회 등에서 ‘자유의 투사’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왜 외교를 앞세울까. 우선, 정부가 경제 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현실로부터 여론의 시선을 돌리려 한다. 수출 부진과 산업 경쟁력 약화, 세수 부족, 민생 위기가 깊어질수록 ‘결단력 있는 외교 대통령’ 이미지를 강조하는 데 더욱 힘을 쏟고 있다. 한편으로는 외교 안보를 역사·이념 전쟁과 연결시켜 야당과 진보 세력을 “친북·친중·반일·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도 분명하다. 동시에, ‘한·미·일 관계를 강화하니, 중국도 한국에 공을 들인다’는 성과를 내보이려 한다. 윤 대통령이 리창 중국 총리와 회담한 데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가 23일 항저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면담했다. 한·중·일 정상회담을 거쳐 시진핑 주석의 방한 등으로 이어가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당연히, 강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9·19 공동선언 5주년을 맞아 “‘안보와 경제는 보수 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벗어날 때”라며, 윤석열 정부의 “구시대적이고 대결적인 냉전 이념”을 강하게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가 여론을 설득하지 않고 한·미·일 일변도 외교로 질주하면서, 한반도를 미-중 군사적 갈등의 최전선에 서게 했다. 극우 국방장관 후보자 지명 등은 상황을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 하지만 ‘안보는 보수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벗어나려면, ‘진보의 외교’도 급속하게 변하고 있는 국제질서를 깊이 분석해,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북핵 문제와 중국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2018년 9월,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을 한 역사적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할 뿐 아니라, 전술핵으로 한국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면서 핵·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북-러 밀착과 위험한 ‘무기-군사기술’ 거래의 신호를 발신했다.

북한의 변화는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밀착 외교보다 훨씬 앞서서 시작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북한은 핵 개발을 지렛대로 한 미국과 통 큰 협상으로 경제·안보 문제를 풀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고, 2018~2019년 남북, 북·미 정상 외교는 그것을 실현시킬 듯 보였다.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뒤, 북한은 미국과의 거래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한국의 중재자 역할에 극도의 불신과 분노를 드러냈다. 그 결과, 핵 위협 가속화의 길로 더욱 질주하게 되었다. 한국을 겨냥한 북한의 전술핵 위협과 군사훈련이 거듭되는 동안, 민주당은 이에 대해 제대로 입장을 내지 않았다. 2018~2019년 북한과의 정상 외교 과정과 실패의 원인을 정확하게 복기하고, 기존의 틀로는 북핵 문제를 풀기 어려워진 현실을 인정한 위에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최근 러시아 방문에서 보듯, 북핵 위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무력 점령 가능성과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고 위험하다. 중국과 세계체계를 연구해온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연결된 위기’에서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그로 인한 국제질서의 혼란, 중국 ‘사회주의’의 변화가 한반도에 미치는 의미를 정교하게 살피고 대응할 것을 제안한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뒤 강력한 권위주의로 누적된 모순을 봉합하려는 시도가 나타났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워 대만 통일을 반드시 완수해야 할 과제로 추진하면서, 동아시아의 질서를 흔드는 진원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런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균형외교’는 ‘의지의 과잉’에 그칠 수밖에 없다. 북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을 어떻게 설득하고 압박할 것인가, 동아시아 평화를 지키고 중국을 배제하지 않는 평등한 질서를 만들려면 어떤 ‘합종연횡’이 필요한가, 중국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진보의 답’을 내놓아야 한다.

윤석열 외교를 우려한다면, 그것을 넘어서는 진보 외교의 경쟁력으로 여론을 설득해야 한다. 가장 어두운 정치의 시간에, 쇄신의 노력만이 희망의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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