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내일 시행인데…의사·환자 모두가 불만 왜?

박정렬 기자 2023. 9. 24. 14: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원=뉴스1) 김영운 기자 =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수술실 안에 외부 네트워크와 연결되지 않은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를 설치해 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합의 처리한 2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수술실에서 병원관계자들이 CCTV를 점검하고 있다.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해당 개정안은 오는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25일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될 예정이다. 2021.8.23/뉴스1


내일(25일)부터 전신·수면마취로 의식이 없는 환자를 수술하는 의료기관은 수술실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 운영해야 한다. 대리 수술이나 수술실 내 성폭력 등 불법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제도 시행을 코앞에 두고도 의료계와 환자 단체가 각기 다른 이유로 반발하고 있어 실효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의료계가 헌법소원까지 제기한 상황이라 제도 안착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2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수술실 내 불법행위 예방을 위해 오는 25일부터 의료기관 내 수술실 CCTV 설치와 운영이 의무화된다.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하는 경우 수술 장면을 촬영해야 하고, 의료기관이 거부하고자 할 땐 해당 사유를 설명하고 이를 기록·보관해야 한다. 촬영한 영상은 범죄 수사·재판이나 의료분쟁 조정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은 "수술실 내 불법행위 예방이라는 입법 취지를 잘 달성할 수 있도록 의료 현장과 소통을 통해 제도 안착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의사 '잠재적 범죄자' 취급…필수 의료 타격 불가피
수술실 CCTV 의무 설치 내용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은 지난 2021년 8월 국회를 통과했다. 당시에도 법안심사소위에서 5번에 걸쳐 내용을 수정했을 정도로 특히 의료계의 반발이 상당했다. 의료인의 진료행위를 위축시켜 방어 진료를 부르고 이는 결국 환자 피해로 돌아온다는 논리다. 의료계 양대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과 대한병원협회(병협)은 법안 시행을 20일 앞둔 지난 5일, 해당 조항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과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며 또다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윤동섭 대한병원협회장(사진 왼쪽에서 두번째)와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사진 왼쪽에서 세번째)가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개정 의료법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서와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내보이고 있다./사진=대한의사협회

이필수 의협 회장은 헌법소원 청구를 앞두고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CCTV 촬영은 의사 고유의 수술 술기나 노하우를 노출시키고, 불가피하게 환자의 신체를 접촉하는 것임에도 성범죄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다"며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함으로써 의사와 환자와의 신뢰 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함께 자리한 윤동섭 병협회장 역시 "환자들도 밝히고 싶지 않은 자신의 건강과 신체에 관한 정보가 녹화돼 인격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침해가 발생할 수 있고 해킹 범죄로 수술받는 모습 등 민감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서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 의료 과목에 대한 각종 지원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에 수술실 CCTV 의무 설치는 오히려 필수 의료 붕괴를 더욱 가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자 "촬영, 열람에 예외나 제한 조항 너무 많아"
의료계는 물론 환자 단체도 권리 행사에 어려움이 따른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개정 의료법에 따르면 △응급 환자 수술 △위험도 높은 수술 △전공의 수련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은 의료기관이 촬영을 거부할 수 있는데, 전공의(레지던트·인턴) 수련을 담당하는 대학병원이나 응급·고난도 수술 비중이 높은 대형 병원이 대부분 해당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수술을 책임지는 의사 등 병원 측에 환자나 보호자가 촬영을 '요청'해야 하는 점도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치료상 불이익을 입지 않을까 불안해 환자 입장에서 쉽게 촬영을 요구하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촬영한 영상을 이용하는 것도 제약이 많다는 게 환자 단체의 주장이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암시민연대 등 8개 단체가 소속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혹시라도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한 경우 장례를 치르는 기간을 고려해야 하고, 이를 판단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반영해야 하지만 영상정보 보관기간을 30일로 짧게 정한 것 역시 환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하다"고 비판했다.


다만, 환자 단체는 일단 수술실 CCTV 설치 자체는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수년간의 사회적 논의 끝에 신설된 조항인 만큼, 우선 시행한 뒤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본다. 오히려 지난 2년간 협의체를 통해 시행규칙을 포함해 수술실 CCTV 운영방안을 마련해 온 의협, 병협이 이제 와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은 '비상식적'이라는 게 환자단체의 시각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의협·병협의 '위헌 소송'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2015년 어린이집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한 영유아보호법도 원장, 보육교사 등이 나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지만 2년 뒤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난 바 있다. 안전사고나 아동학대 적발 등 입법 목적이 정당하고 열람이 제한적이라 직업수행의 자유나 사생활 보호 등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한 의료계 인사는 "법률가라면 수술실 CCTV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라며 "정부와 시행방안을 상의하며 법안에 정당성을 부여해오다 이제야 헌법 소원을 제기하는 건 정치적 계산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